ADVERTISEMENT

[소년중앙] 기쁨은 무슨 색일까…라울 뒤피의 작품세계 통해 알아봤어요

중앙일보

입력

‘기쁨의 화가’, ‘기쁨을 색채로 표현한 화가’, 프랑스를 대표하는 화가 라울 뒤피(1877~1953) 앞에 붙는 수식어입니다. 그는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았지만, 야수파나 입체파 등 다양한 작풍을 선보였고, 이후 밝고 경쾌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독창적인 화풍으로 평생 삶이 주는 행복과 기쁨을 주제로 수많은 작품을 탄생시켰죠.

현재 대한민국 전시계에서 라울 뒤피는 가장 핫이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회고전이 서울 더현대 서울과 예술의전당 두 곳에서 나란히 열리기 때문인데요. 미술팬들은 두 전시를 각각 보고 비교하며 다채롭게 그의 작품을 즐기고 있죠. 소년중앙은 더현대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프랑스국립현대미술관전: 뒤피, 행복의 멜로디’를 찾아가 살펴봤습니다.

이번 전시는 라울 뒤피의 예술 여정을 12개 주제로 나눠 시기별 작품 변화를 느낄 수 있게 구성됐다.

이번 전시는 라울 뒤피의 예술 여정을 12개 주제로 나눠 시기별 작품 변화를 느낄 수 있게 구성됐다.

더현대 서울 6층 ALT.1에서는 프랑스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라울 뒤피의 작품 130여 점을 선보여요. 프랑스국립현대미술관은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과 함께 프랑스 3대 미술관 중 하나이자 피카소·칸딘스키·마티스·샤갈 등을 비롯한 근·현대 미술 작품 12만여 점을 소장한 세계적인 문화 기관이죠. 프랑스 파리의 복합예술단지인 퐁피두센터에 자리하고 있어요.

라울 뒤피가 1953년 사망한 후, 평생 보관해온 작품 전체를 부인이 국가에 기증하면서 퐁피두센터는 라울 뒤피 최대 소장처가 됐죠. 이번 전시는 라울 뒤피 권위자로 꼽히는 퐁피두센터의 수석 큐레이터인 크리스티앙 브리앙이 디렉팅해 회화·조각·드로잉·판화·도자기·태피스트리 등을 총망라했어요. 총감독을 맡은 크리스티앙 브리앙은 지난 5월 16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전시는 라울 뒤피의 대규모 회고전이자 예술적 여정을 보여주는 자리고, 소장자의 손을 거치지 않은 작가가 직접 소장한 스스로에게도 특별한 의미와 가치를 가졌던 소중한 컬렉션을 모아 선보이는 훌륭한 전시”라며 “교육적 목적으로 12개 섹션에 걸쳐 작품을 연대와 주제 순으로 구성했다”고 소개했습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라울 뒤피의 자화상이 걸려있는데, 단순 선으로 시작된 초창기 작업부터 색채가 다양하게 들어간 변화 과정까지 한눈에 살필 수 있다. ⓒ Centre Pompidou, MNAM-CCI/Jacqueline Hyde/Dist. RMN-GP

전시장에 들어서면 라울 뒤피의 자화상이 걸려있는데, 단순 선으로 시작된 초창기 작업부터 색채가 다양하게 들어간 변화 과정까지 한눈에 살필 수 있다. ⓒ Centre Pompidou, MNAM-CCI/Jacqueline Hyde/Dist. RMN-GP

전시는 그의 예술 여정을 12개 주제로 나눠 시기별 작품 변화를 느낄 수 있게 구성됐어요. 전시장에 들어서면 바로 라울 뒤피의 자화상이 걸려있는데, 단순 선으로 시작된 초창기 작업부터 색채가 다양하게 들어간 변화 과정까지 한눈에 살필 수 있어요. 크리스티앙 브리앙은 “라울 뒤피 자신에 대해 알려주는 과정부터 전시가 시작된다”고 말했죠. 첫 섹션은 ‘인상주의로부터’. 프랑스 북서부 지역 노르망디에 위치한 산업 항구 도시 르아브르에서 태어난 라울 뒤피는 초기엔 인상파의 후예로서 재능 있는 풍경 화가로 먼저 알려졌어요. 그러다 앙리 마티스의 ‘사치, 평온, 쾌락’을 보고 예술적 영감을 받으며 야수파와의 만남이 시작됐죠.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며 야수파 화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훗날 그의 부인이 되는 에밀리엔의 모습을 담은 ‘분홍색 옷을 입은 여인’은 빈센트 반 고흐의 영향을 받았다. ⓒ Centre Pompidou, MNAM-CCI/Bertrand Prevost/Dist. RMN-GP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며 야수파 화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훗날 그의 부인이 되는 에밀리엔의 모습을 담은 ‘분홍색 옷을 입은 여인’은 빈센트 반 고흐의 영향을 받았다. ⓒ Centre Pompidou, MNAM-CCI/Bertrand Prevost/Dist. RMN-GP

당시 강렬한 색채와 두꺼운 검은 윤곽선으로 구성된 작품을 만들었고, 이러한 흔적은 이후 직물 디자인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 있어요. 두 번째 섹션 ‘야수파 뒤피’에선 전통을 거부하고, 혁명을 지향했던 야수파의 주요 화가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한 그의 행보를 살핍니다. 야수파 화가들은 강렬한 색상과 가벼운 붓질을 활용해 풍경화와 초상화를 그렸죠. 세 번째 섹션은 ‘입체파 시기’로 이어집니다. 그는 친구 조르주 브라크와 함께 입체주의 기법을 시도했으며, 폴 세잔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1980년엔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 근처 에스타크의 풍경을 다양한 시각으로 그려냈죠. 크리스티앙 브리앙은 “이 시기 그림을 보면 기하학적인 입체감이 돋보이는데, 장식예술과 실험예술이 결합한 흔적도 볼 수 있다”고 말했어요.

그의 목판화는 강한 흑백 대비를 이용해 장식적 효과를 최대한 살리고 화면을 빈틈없이 가득 메우는 점이 특징이다.

그의 목판화는 강한 흑백 대비를 이용해 장식적 효과를 최대한 살리고 화면을 빈틈없이 가득 메우는 점이 특징이다.

20세기 프랑스의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는 1910년 그에게 ‘동물시집 혹은 오르페우스의 행렬’을 위한 삽화를 그려 달라 제안했고, 목판화 30점을 작업했죠. 네 번째 섹션에서 볼 수 있는 그의 목판화는 강한 흑백 대비를 이용해 장식적 효과를 최대한 살리고 화면을 빈틈없이 가득 메우는 점이 특징이죠. 그가 대중예술에 대한 열정을 가지며 나온 결과물 중 하나가 목판화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애국심이 담긴 선전용 그림을 만들어야 한다 생각했고, ‘대중예술의 혁신’을 진지하게 고민하던 그는 선전물의 작업을 위해 ‘에피날 판화’를 참고하죠. 에피날 판화는 19세기 초 프랑스 동부에서 제작한 목판화로 종교와 군대를 위한 교훈적인 그림을 일반 서민에게 보여주기 위해 제작됐어요.

세 여인이 최신 수영복을 입고 물놀이하는 대형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는데, 이는 그가 패션이라고 하는 세계와 무관하지 않았다는 점을 설명해준다. ⓒ Centre Pompidou, MNAM-CCI/Jean-Francois Tomasian/Dist. RMN-GP

세 여인이 최신 수영복을 입고 물놀이하는 대형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는데, 이는 그가 패션이라고 하는 세계와 무관하지 않았다는 점을 설명해준다. ⓒ Centre Pompidou, MNAM-CCI/Jean-Francois Tomasian/Dist. RMN-GP

대중예술과의 접점을 넓혀가던 라울 뒤피는 리옹의 유명 직물 제조업체와 협업하면서 수많은 패션 견본을 그려냈고,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 폴 푸아레와도 함께 일했죠. 다섯 번째 섹션 ‘패션’에서는 이번 전시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대형 직물, 태피스트리 ‘암사슴, 새 그리고 나비’를 만날 수 있어요. 크리스티앙 브리앙은 “돌돌 말려 있어 미술관에서도 작품의 존재를 몰랐다가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발견했다”며 “패션과 회화 작업 스타일이 혼합된, 표현주의가 발달된 뒤피의 작업방식이 담겼다”고 설명했죠.

‘장식 예술’ 섹션에서는 자연스러움, 선명하고 투명한 색상을 기반으로 자기만의 고유한 그림체를 만들어낸 작품세계로 안내합니다. 그는 장식에 대한 타고난 감각을 활용해 1924년부터 도예가 로렌스 아르티가스와 함께 수많은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해요. 그중 일부를 이곳에서 만날 수 있죠. 바다·말에 관심을 갖고 그려낸 작품들은 일곱 번째 섹션에 모았습니다. 그는 작은 말들로 가득한 해안가 도시의 환상적인 이미지로부터 회화적 영감을 받아 작품을 그리기도 했어요. 바다 신의 아내인 암피트리테는 인간 여성의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바다를 상징하는 사물들과 함께 놓여있었죠.

즐겨 그린 경마 그림은 특히 수집가의 수요가 많았다. 몇 개 남지 않은 경마 관련 작품 중 ‘도빌의 예시장’을 이번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 Centre Pompidou, MNAM-CCI/Jacqueline Hyde/Dist. RMN-GP

즐겨 그린 경마 그림은 특히 수집가의 수요가 많았다. 몇 개 남지 않은 경마 관련 작품 중 ‘도빌의 예시장’을 이번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 Centre Pompidou, MNAM-CCI/Jacqueline Hyde/Dist. RMN-GP

프랑스·이탈리아·영국 등 세계 각지로 여행을 많이 다닌 라울 뒤피는 다수의 풍경화를 작업하며 예술적인 행보를 이어갑니다. 1924년 무렵 자리 잡은 일명 ‘뒤피 스타일’은 풍경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화가의 뛰어난 능력을 바탕으로 여행 중 돌아본 각지의 풍경을 특징적으로 보여주기에 적절한 양식이었죠. ‘여행자의 시선’에선 여행하면서 다채로운 색채로 그린 각 나라의 풍경들을 소개합니다. 그는 초상화에도 큰 관심을 가졌는데, 초기부터 아내 에밀리엔 뒤피를 모델로 삼았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종종 유명인사들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영국의 케슬러 가문이 1930년에 의뢰한 가족 초상화도 걸작 중 하나다. ⓒ Centre Pompidou, MNAM-CCI/Jean-Francois Tomasian/Dist. RMN-GP

영국의 케슬러 가문이 1930년에 의뢰한 가족 초상화도 걸작 중 하나다. ⓒ Centre Pompidou, MNAM-CCI/Jean-Francois Tomasian/Dist. RMN-GP

영국의 케슬러 가문이 1930년에 의뢰한 기념비적 가족 초상화는 라울 뒤피가 남긴 걸작 중 하나죠. 굉장히 자유로운 화풍으로 완성된 초상화를 보고 다시 그려달라는 요청이 들어왔고, 결국 두 가지 버전의 작품이 만들어졌어요. 그 첫 번째 버전은 프랑스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고, 두 번째 버전은 영국 런던 테이트미술관이 소장하고 있죠. 라울 뒤피의 풍경화는 많이 알려진 반면 초상화는 잘 알려지지 않은 편인데요. 이번 전시에선 아예 하나의 섹션으로 구성해 습작부터 채색까지 그의 초상화 세계를 깊게 살피게끔 하고, 유명인사와의 교류가 활발했던 인간적인 면모도 보여줍니다.

작가가 과슈로 채색하여 완성된 현존하는 유일한 ‘전기 요정’ 석판화 연작은 이번 전시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작가가 과슈로 채색하여 완성된 현존하는 유일한 ‘전기 요정’ 석판화 연작은 이번 전시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대형 장식 벽화’ 섹션에서는 이번 전시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을 만날 수 있어요. 그의 걸작으로 뽑히는 ‘전기 요정’은 1937년 파리 만국박람회 당시 ‘전기와 빛 관’의 벽을 장식하기 위해 파리 전력회사에서 의뢰한 것으로 가로가 60m, 세로가 10m에 달하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유화작품이었죠. 고대 그리스 시대 정전기 현상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부터 20세기 전기의 발전사, 에디슨·벨·퀴리부인 등 전기와 관련한 인물 110여 명이 모두 담긴 이 작품은 만국박람회가 끝난 후 창고 신세로 전락했는데요. 라울 뒤피는 대중을 위해 ‘전기 요정’을 석판화로 제작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가 직접 과슈로 채색하여 완성된 현존하는 유일한 ‘전기 요정’ 석판화 연작을 만날 수 있어요. 대표작이기도 하고, 전시 공간 중 유일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라 관람객들의 발길이 오래 머무는 곳이죠.

 ‘붉은 바이올린’의 상단에 ‘라울 뒤피의 음악과 그림’이라는 문구가 적혀 음악으로부터 받은 영감과 음악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 Centre Pompidou, MNAM-CCI/Dist. RMN-GP

‘붉은 바이올린’의 상단에 ‘라울 뒤피의 음악과 그림’이라는 문구가 적혀 음악으로부터 받은 영감과 음악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 Centre Pompidou, MNAM-CCI/Dist. RMN-GP

라울 뒤피가 다루었던 독창적인 주제 중 하나는 바로 작가 자신의 아틀리에입니다. 특히 파리의 아틀리에에서 위대한 작곡가에게 헌정하는 연작을 그렸는데, 바이올린과 같은 악기가 등장하는 게 인상적이죠. 사실 그는 음악가의 집안에서 태어났고 굉장한 음악 애호가였어요. 간결하면서도 색채가 돋보이는 ‘붉은 바이올린’의 상단에 ‘라울 뒤피의 음악과 그림’이라는 문구가 적혀 음악으로부터 받은 영감과 음악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죠.

마지막 섹션 ‘검은빛’에서는 앞서 화려한 색채가 가득했던 풍경들과 달리 검은색으로 가득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어요.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파괴된 고향 항구를 묘사하기 위해 검정색 단일 색조를 사용했죠. 크리스티앙 브리앙은 “태양을 바라볼 때 순간적으로 눈이 부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순간을 경험하면서 검은색 작업을 시작했다”고 설명했어요. 그가 생애 마지막에 그린 작품으로 알려진 ‘검은 화물선과 깃발’도 볼 수 있었죠. 평생 색을 찬미하며 그림을 그려온 화가의 여정이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검은색으로 마침표를 찍는 것만 같습니다.

‘전기 요정’ 작업 중인 라울 뒤피. 그는 밝고 경쾌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독창적인 화풍으로 평생 삶이 주는 행복과 기쁨을 주제로 수많은 작품을 탄생시켰다. ⓒ Ministere de la Culture - Mediatheque du patrimoine et de la photographie, Dist. RMN-Grand Palais / Francois Kollar

‘전기 요정’ 작업 중인 라울 뒤피. 그는 밝고 경쾌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독창적인 화풍으로 평생 삶이 주는 행복과 기쁨을 주제로 수많은 작품을 탄생시켰다. ⓒ Ministere de la Culture - Mediatheque du patrimoine et de la photographie, Dist. RMN-Grand Palais / Francois Kollar

밝고 경쾌하지만 가볍지 않은 그만의 화풍으로 평생 삶이 주는 행복과 기쁨을 담은 작품을 탄생시킨 라울 뒤피. 오늘날 그의 작품 앞에 선 관람객들에게도 고민과 마음의 짐을 내려놓게 하고 행복의 멜로디를 들려주며 세상의 기쁨을 느끼게 해주고 있습니다.

프랑스국립현대미술관전: 뒤피, 행복의 멜로디

기간 9월 6일(수)까지(백화점 휴점일과 동일)
장소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 108 더현대 서울 6층, ALT. 1
관람 시간 오전 10시 30분~오후 8시(금·토·일: 오후 8시 30분 종료)
관람료 성인 2만원, 청소년 1만5000원, 어린이 1만3000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