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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펙 회의 언론사는 오지마"…사우디 왕자 이례적 지시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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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의 에너지부 장관 압둘 아지즈 빈 살만(63) 왕자가 4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주요 산유국 모임 '오펙플러스(OPEC+)' 회의에 언론사 참석을 금지했다. AFP=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의 에너지부 장관 압둘 아지즈 빈 살만(63) 왕자가 4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주요 산유국 모임 '오펙플러스(OPEC+)' 회의에 언론사 참석을 금지했다. AFP=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의 에너지부 장관이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이복형인 압둘 아지즈 빈 살만(63) 왕자가 4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주요 산유국 모임 '오펙플러스(OPEC+)' 회의에 언론사 참석을 금지했다. 최근 국제 유가가 하락세를 면치 못하는 이유 중 하나로 언론 보도를 지목하면서다.

3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로이터·블룸버그·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매체가 OPEC+ 회의 취재를 거부당했다. FT는 "전쟁, 유가 폭등·급락을 겪은 수십 년 동안 OPEC 회의에 언론사가 대거 차단된 건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OPEC+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기타 산유국 등 23개국이 참석해 석유 정책을 논의하는 회의체다.

압둘 아지즈는 OPEC과 OPEC+ 모두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인물이다. 그가 이례적인 조치에 나선 건, 언론이 인플레이션이 악화하지 않도록 국제 유가가 안정돼야 한다는 취지로 보도했다고 판단한 때문이라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FT는 "압둘 아지즈는 그의 정책이 공정하게 보도되지 않는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며 "비판에 익숙하지 않은 왕족의 기질도 반영됐다"고 전했다.

유가로 빈 살만 '네옴시티' 지탱해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주도해 추진 중인 네옴시티(Neom City)의 '더 라인(The Line)' 예상 모습. 사진 네옴시티 홈페이지 캡처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주도해 추진 중인 네옴시티(Neom City)의 '더 라인(The Line)' 예상 모습. 사진 네옴시티 홈페이지 캡처

이번 회의에서 논의된 원유 감산안도 그가 주도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OPEC+는 자발적 감산 기간을 연장하기로 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달부터 하루 50만 배럴씩 감산하기로 한 조치를 2024년 12월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여기에 더해 다음달부터 하루 100만 배럴씩 원유 생산량을 추가로 줄이기로 했다. 러시아도 50만 배럴 감산 조치를 2024년 말까지 이어가기로 했다. 지난해 10월과 올해 4월 주요 산유국들이 두 차례 감산에 나섰지만, 브렌트유 가격이 70달러(약 9만 2000원) 수준으로 하락하자 내린 결정이다.

압둘 아지즈가 유가 상승에 전력투구하는 이유는 이복형제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야심작을 뒷받침해야 하기 때문이다. 빈 살만 왕세자는 석유 시대 이후를 대비하기 위해 미래형 신도시 '네옴시티(Neom City)'를 조성하겠다고 천명했다. 길이 170㎞의 자급자족형 도시 '더 라인(The Line)'과 바다 위 첨단산업단지 '옥사곤(Oxagon)' 등이 골자다. WSJ에 따르면, 프로젝트의 국제유가 손익 분기점은 배럴당 81달러(10만 6000원) 선이지만, 올해 내내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왕족으로는 처음으로 국가 경제의 핵심인 에너지부 장관을 맡은 그가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유가 하락 베팅은 투기" 비난

압둘 아지즈는 지난달 23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경제 포럼에서 "OPEC은 시장에서 책임 있는 규제자로 남을 것"이라며 "가격 변동성을 이용해 이익을 챙기는 투기꾼들은 조심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앞으로 유가가 계속 하락한다는 쪽에 베팅한 이들을 투기꾼으로 몰았다는 분석이 나왔다. FT는 "압둘 아지즈는 2020년 러시아와의 유가 전쟁부터 지난해 미국과의 관계 경색 국면까지 두루 관여한 적극적인 석유정책 관리자"라며 "원유 무역업자들 사이에서 까칠한 왕자(prickly prince)로 통한다"고 설명했다.

오일 파워로 무장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 무함마드 빈살만. 압둘 아지즈 사우디 석유장관보다 25살 어린 이복형제다. 연합뉴스

오일 파워로 무장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 무함마드 빈살만. 압둘 아지즈 사우디 석유장관보다 25살 어린 이복형제다. 연합뉴스

하지만 그의 희망대로 국제유가가 상승세로 전환할지는 미지수다. 우크라이나 전쟁 자금 마련이 급한 러시아는 낮은 가격에라도 석유를 팔고 싶어하고, 미국도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 나서며 석유의 안정적인 수급을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제로 코로나 정책이 끝난 뒤 원유 수요가 늘 것으로 예상됐던 중국에서도 경기 둔화 추세가 계속되고 있다. 미 CNBC는 OPEC+ 관계자를 인용해 "유가 급등을 쫓을 게 아니라 시장의 균형을 추구할 것"이라고 전했다.

압둘 아지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제7대 국왕인 살만 빈 압둘 아지즈 알사우드가 첫 번째 부인과 낳은 넷째 아들이다. 세 번째 부인이 낳은 장남 빈 살만 왕세자(38)보다 25살 많다. 사우디 킹 파드 석유광물대에서 공부했고, 1995년 석유부 차관 자리에 오른 뒤 2019년 에너지부 장관으로 승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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