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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고 싶은 마음, 모자에 새겼다…SSG 고효준이 쓴 세 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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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 챙에 등번호 '15'와 이길 승(勝)자를 쓴 SSG 고효준. 인천=김효경 기자

모자 챙에 등번호 '15'와 이길 승(勝)자를 쓴 SSG 고효준. 인천=김효경 기자

어느덧 마흔. 하지만 SSG 랜더스 고효준은 변함없다. 여전히 빠른 공을 던진다, 여전히 자주 마운드에 오른다. 이기고 싶은 마음도 똑같다.

1983년생인 고효준은 삼성 라이온즈 오승환(41) 다음으로 나이가 많은 투수다. 하지만 여전히 힘있는 공을 뿌린다. 최고 시속 147㎞, 평균 143㎞의 빠른 공으로 타자를 상대한다. 전성기 때처럼 150㎞까지 던질 순 없지만 여전히 위력적이다.

등판 횟수도 인상적이다. 6월 3일까지 팀이 치른 50경기 중 23경기에 나서 20과 3분의 1이닝을 던졌다. 왼손타자만 상대하는 게 아니라 1이닝 이상 던질 때도 많다. 이대로라면 60경기·50이닝 소화도 가능하다. 2019년 롯데 자이언츠 시절(75경기, 62와 3분의 1이닝) 이후 최고 페이스다.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만난 고효준은 "그때(2019년)도 양상문 감독이 안배를 해주셨고, 지금도 김원형 감독님이 신경을 써주신다. 나야 뭐, 그런 거 생각 안 한다. 나갈 수만 있어도 좋다"고 웃었다. 이어 "코칭 스태프는 물론 트레이닝 파트에서도 노경은과 나를 비롯한 베테랑들을 더 신경써준다"며 고마워했다.

고효준은 산전수전 다 겪은 투수다. 2002년 롯데에 입단해 SK, KIA를 거쳤다. 2020시즌 이후 친정팀 롯데에서 방출됐지만 육성선수 계약까지 맺고, LG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지난해엔 7년 만에 팀명이 바뀐 또다른 친정팀 SSG로 돌아왔다. 지난해 45경기에서 1승 7홀드 평균자책점 3.72를 기록했고, 올해는 2승 1패 5홀드 평균자책점 2.21을 기록했다.

SSG 왼손투수 고효준. 사진 SSG 랜더스

SSG 왼손투수 고효준. 사진 SSG 랜더스

고효준은 "예전에는 마흔까지 던지는 투수들이 없었다. 지금은 트레이닝 법도 좋아졌고, 나이가 들어도 기술적인 면이 떨어진 건 아니다. 팀이 이기고 싶다면 베테랑 선수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구단이 육성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지려고 경기를 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했다.

김원형 SSG 감독의 조언은 힘이 됐다. 김 감독은 고효준에게 슬라이더 사용 비중을 늘려보자고 했다. 패스트볼 비율이 60~70% 정도였던 고효준은 SSG에 온 뒤엔 슬라이더를 직구와 거의 1대1로 쓰고 있다. 과거엔 커브도 잘 썼지만, 이제는 슬라이더에 집중하고 있다.

고참 선수들은 자기가 해왔던 방식에 익숙해 변화를 잘 주지 않는다. 하지만 고효준은 김 감독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SK 시절 선후배였고, 롯데에서도 투수코치로 그를 지도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고효준은 "감독님이 어렸을 때부터 저를 많이 봐서 잘 안다. 트랙맨 데이터로도 슬라이더가 좋았다. '좋은 걸(슬라이더) 가지고 있으니 좋은 걸 잘 활용하자'고 했고, 당연히 따라야 하는 부분"이라고 했다. 실제로 지난달 31일 삼성 라이온즈전에선 오재일과 강한울을 상대로 슬라이더만 10개 던져 아웃카운트 2개를 이끌어냈다.

SSG 왼손투수 고효준. 사진 SSG 랜더스

SSG 왼손투수 고효준. 사진 SSG 랜더스

고효준은 자신의 어깨에 일구이무(一球二無)란 문신을 새겼다. 김성근 전 감독이 좋아했던 표현이다. '한 번 공이 떠나면 두 번째는 없다'는 말이다. 고효준은 "지금도 늘 그 마음을 잊지 않는다. SSG에서 기회를 주셨고, 보답하고 싶다. 지난해도 올해도 던질 수 있는 상황이라면 항상 자신있게 던지려 한다"고 했다.

지난해 한국시리즈 우승은 22년 프로 생활에 있어서도 큰 이정표가 됐다. 고효준은 "(직접 뛴)한국시리즈 우승은 두 번(2017 KIA, 2022 SSG) 밖에 없다. 그래서 남다른 우승이었다. 특히 제일 좋은 성적을 냈고, 제일 오래 뛴 야구장에서 그런 경험을 해서 감회가 남달랐다"고 했다. "한국시리즈를 하기 전에 야구장을 한 바퀴 돌아본 적이 있다. 묘한 감정을 느꼈다"고 돌이켰다.

간절한 그의 마음은 모자에서 엿볼 수 있었다. 모자 챙에 자신의 등번호(15)와 '이길 승(勝)'자를 썼다. 고효준은 "지난해부터 쓰고 있다. (한국시리즈 때는)손바닥에 글씨를 썼는데, 이물질이라 규칙 위반을 지적당했다. 이제는 모자에만, 경건한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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