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어 놓고 잘못된 게 없다고 합니다. 59년 전이나 지금이나, 법원은 변한 게 없어요.”
2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최말자(77)씨는 법원을 향한 분노를 쏟아냈다. 최씨는 정당방위 논란 때마다 언급되는 판례인 ‘김해 혀 절단 사건’의 당사자다. 억지로 키스를 하려는 남성의 혀를 절단한 여성이 오히려 중상해죄로 처벌 받은 사건으로, 국내에서 정당방위의 인정 범위가 극히 제한적임을 드러내는 대표적 사건이다. 2020년 최씨가 재심을 청구하면서 사건은 ‘56년만의 미투’로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1,2심 모두 ‘재심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최씨의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이제 대법원의 판단만 남은 상태다.
1964년 5월 6일, 18살이었던 최씨는 모르는 사이인 21살 남성 노모(당시 21세)씨에게 성폭행을 당할 뻔했다. 남성은 길을 알려주기 위해 자신을 따라 나섰던 최씨를 바닥에 눕히고 배 위에 올라탔다. 최씨가 저항하자 세 차례 바닥에 넘어뜨리기도 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남성이 최씨의 입 안에 혀를 넣은 상태였다. 최씨는 그 남성의 혀를 깨물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 채 집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며칠 뒤 남성은 친구 10여 명을 대동해 최씨의 집에 찾았고, 칼을 든 채 “사람을 불구로 만들었으면 책임을 지라”고 위협했다. 최씨의 가족들은 노씨를 특수주거침입과 특수협박 혐의로 고소했고, 남성은 최씨를 중상해죄로 맞고소했다. 법원은 최씨를 성폭행하려 했던 남성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최씨에게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최씨의 정당방위 주장을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은 결과였다.
‘꼼짝 못하게 한 건 아니다’ 방위성 인정 안 돼
현행법상 정당방위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① 현재의 침해일 것, ②부당한 침해일 것, ③자기 혹은 타인의 법익 보호를 위할 것, ④방위하기 위한 행위일 것, ⑤ 상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5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해야 한다.
당시 법원은 판결문에서 노씨가 최씨를 넘어뜨리고, 입을 다문 채 거절하는 최씨의 코를 손으로 막아 입을 벌리게 한 뒤 억지로 키스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반항을 못하도록 꼼짝 못하게 해 놓고 한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판사는 “비록 강제키스로부터 처녀의 순결성을 방위하기 위하여 한 것이라 하더라도 혀를 끊어버리므로써 침해자를 일생 말 못하는 불구의 몸이 되게 하는 것과 같은 방위 행위는 일반적, 객관적으로 볼 때 법이 허용하는 상당한 방위의 정도를 지나친 것”으로 보았다. 방어가 과했다는 뜻이다.
국내에서 판례로 정립된 정당방위의 인정 요건은 엄격한 편이다. 2014년 강원도 원주 주택에 침입한 도둑을 빨래 건조대로 폭행해 뇌사 상태에 빠지게 한 집주인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판결이 대표적이다. 법원은 “집주인의 첫 번째 폭행은 정당방위이나 그 이후의 폭행은 정당방위 종료 후 개별 폭행으로 보아 방위의사를 인정할 수 없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이 판결은 “‘집에 들어온 도둑이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적당히’ 공격하라는 거냐”는 반대 여론을 불렀다.
성폭력 사건에서 정당방위 인정 더 힘든 이유
법원은 노씨가 최씨에 대해 부당한 침해를 했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기도 했다. 법원은 “생면부지의 남성과 20분간 말을 주고 받았고, 같이 걷자는 말에 응해 범행 현장까지 따라나섰다”면서 “범행 장소까지 간 것은 최씨의 자유로운 의사 결정에 의한 것이고, 이것은 심리적으로 살핀다면 사춘기에 있는 최씨의 이성에 대한 호기심의 소치인 것으로도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모르는 남자를 따라간 최씨의 행동에도 문제가 있다는 취지다.
정당방위 사건은 특히 성폭력 이슈에서 예민한 쟁점이 된다. 성폭력을 피하기 위해 저항하는 과정에서 생긴 물리적 폭력를 정당방위로 인정받으려면 ‘피해자 의사에 반하는 성폭력이 있었다’는 점을 우선적으로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1988년에도 한 여성이 성폭력 가해자의 혀를 깨물어 절단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1심에선 방어행위가 지나쳤다는 이유로 구속된 여성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으나 2심에서는 정당방위를 인정했다. 이 판결은 성폭력 사건에서 여성의 방어권을 보장한 몇 안되는 판례로 남았지만, 당사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검사와 가해자 변호사가 법정에서 내가 당시 술을 마신 부분을 추궁하면서 강간당해 마땅한 상황으로 몰고 가려는 태도가 견디기 힘들었다”고 기억다.
최씨도 재판 과정에서 끊임없는 2차 가해에 시달렸다고 털어놨다. 최씨에게 “멀쩡한 남성을 불구로 만들었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며 가해자와 결혼하라고 권유하는 검사도 있었다고 한다. 법정의 판사들은 최씨의 순결성에 대해 따져 물었고, 최씨는 언론과 대중 앞에서 강제로 키스 당하는 모습 등을 재연해야 했다. 최씨는 “당시 생각만 하면 지금도 잠이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때는 다른 사회였다’ 법원 판결 모욕적”
이 판결 이후 최씨는 “부모를 망신시킨 딸”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았다. 와이셔츠 공장과 노상 좌판을 전전하며 하루하루를 견디던 최씨는 60이 넘은 나이에 주변의 도움을 받아 공부를 다시 하게 됐다. 4년간 초등 교육을 마치고 2013년 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에 입학한 최씨는 ‘성 사랑 사회’라는 교양 과목에서 ‘젠더 폭력’ 개념을 처음 접했다. 최씨는 “과거에 못 배우던 시절에는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내가 당했던 것이 성폭력이었다”며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여성의 인권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고 말했다. 최씨는 ‘내가 걸어온 길, 앞으로의 길’이라는 주제로 방송통신대 졸업 논문을 쓰면서 처음으로 자신의 속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었다. 재심 청구는 이 과정을 지켜본 방통대 동기의 제안에 따른 것이다.
노씨가 사건 이후 신체 1등급으로 군대에 가는 등 중상해를 입지 않았다는 점이 드러났다는 게 최씨 측의 주요 논거였다. 재판 과정에서 최씨가 강제 구금되는 등 절차상 문제가 있었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2021년 부산지방법원은 최씨의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법원은 “당시 판결은 노씨가 말을 하지 못하는 상태, 즉 발음을 하는 데 곤란을 느끼는 불구 상태로 보고 최씨에게 판결을 내렸던 것”이라고 주장하며 “재심을 할 만큼 바뀐 사실은 없다”고 판단했다. 최씨는 법원의 재심 청구 기각 결정문을 꼼꼼히 읽어보았다고 한다.
결정문은 “청구인에 대한 공소와 재판은 반세기 전에 오늘날과 다른 사회문화적 환경에서 이뤄진 일이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하여 사회문화 환경이 달라졌다고 하여 당시의 사건을 뒤집을 순 없다”고 말했다. 최씨는 이런 판결문을 읽으면서 모욕을 당하는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 “'반세기 전 재판'이라 어쩔 수 없다니, 그럼 그때는 대한민국 법이 아니었다는 뜻인가요? 법을 바꿔 달라는 게 아니라 법대로 해 달라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