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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애백'도 1000만원 넘었다…줄줄이 몸값 올린 명품의 비밀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23일 샤넬에 이어 이달 1일 루이비통이 각각 6~8%대로 주요 제품의 가격을 올렸다. 이로써 샤넬 클래식백은 라지 사이즈 기준 1570만원, 일명 ‘김희애백’으로 불리는 루이비통 카퓌신백은 MM사이즈 기준 1055만원이 됐다.

가로·세로 25㎝ 미만의 작은 가방들이 1000만원대를 훌쩍 넘기게 된 것은 지난 몇 년간의 꾸준한 가격 인상 때문이다. 샤넬은 지난해에 네 차례, 올해만 두 차례 가격을 올렸다. 루이비통은 지난해 11월 이후 8개월 만에 주요 제품의 가격을 올렸다.

카퓌신MM 제품. 사진 루이비통 홈페이지

카퓌신MM 제품. 사진 루이비통 홈페이지

‘보복 소비’ 끝났는데, 가격 올려

경기 침체로 소비 심리 하락이 점쳐지는 올해 들어서도 명품 업계가 가격 인상을 멈추지 않고 있다. 올해 초 프라다가 전 제품 가격을 5~10% 일괄 조정한 데 이어, 셀린느도 4% 가격을 올렸다. 지난달 18일에는 보테가 베네타가 6개월 만에 주요 제품의 가격을 10% 올렸다.

명품 주얼리 업계도 줄줄이 가격을 올리고 있다. 이달 초 반클리프앤아펠이 5~10%, 지난달 카르티에가 15% 일부 제품 가격을 올렸고, 다미아니는 다음 달 5~12% 가격 인상을 앞두고 있다.

국내 명품 업계는 코로나19 기간 이른바 ‘보복소비’로 명품 수요가 급증하면서 1년 새 몇 차례씩 가격 인상을 해왔다. 그러면서 ▶본사의 글로벌 가격 정책 변화 ▶원자잿값 및 물류·인건비 상승 ▶환율 변동 등을 이유로 꼽았다.

지난 2021년 코로나19가 한창인 가운데, 서울 신세계백화점 본점에서 명품관 개장을 기다리는 시민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는 모습. 뉴스1

지난 2021년 코로나19가 한창인 가운데, 서울 신세계백화점 본점에서 명품관 개장을 기다리는 시민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는 모습. 뉴스1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원자재 공급 불안정, 물류 비용 급증 등의 원인이 대부분 해소됐음에도 가격 인상을 멈추지 않고 있어 ‘그리드 플레이션(greed+inflation·기업 탐욕에 의한 물가 상승)’을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물론 명품 업계가 인플레이션을 틈타 지속해서 가격을 올릴 수 있는 배경에는 ‘공급을 초과하는 수요’가 있다. 가격을 올려도 사주는 소비자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 인플레이션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이 기업들의 가격 인상을 ‘불가피한’ 결정으로 수용하는 경향도 높아졌다.

진짜 이유는 실적 악화?

리오프닝(경제 활동 재개)로 보복소비 유인이 사라지고, 엔데믹으로 해외여행이 늘면서 최근 국내 명품 업계는 빠르게 식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의 올해 1~5월 명품 카테고리의 지난해 동기 대비 매출 신장세는 5.6%에 그쳤다. 현대백화점도 같은 기간 6.8% 신장했고, 갤러리아백화점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지난해 1분기 신세계백화점이 37.2%, 현대백화점이 30.6% 등 두 자릿수 신장률을 보였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익명을 요구한 명품 업계 고위 관계자는 최근 명품 브랜드의 가격 인상을 두고 “코로나19 기간에는 우월적 브랜드 이미지를 고수하기 위한 프리미엄 가격 전략의 성격이 컸다면, 지금은 실적 악화에 따른 손실을 가격 인상분으로 메우려는 시도”라고 해석했다. 올해 들어 급격하게 매출이 줄어들고 있는 명품 브랜드들이, 인상으로 이익률 방어에 나섰다는 의미다. 전 세계적으로 명품 성장세가 둔화한 데다, 한국의 경우 여행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같은 소비군으로 묶이는 명품 수요가 더 크게 줄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최근 주요 백화점 명품 매장 앞 ‘오픈런(매장 입장을 위해 문 열기 전부터 대기 한다는 뜻)’ 열기도 한풀 꺾였다.

원화 가치 하락도 명품 가격 인상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주로 유럽 브랜드인 명품 업계의 경우 유로 환율에 민감하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1300원대 초반에 머무르던 유로 가격은 올해 4월 1470원대를 찍고 소폭 하락하는 중이다. 샤넬도 지난달 가격 인상을 두고 “각국의 유로 환율을 기반으로 가격을 조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상위 2% 위한 ‘초고가’ 전략

영국 런던 해러즈(Harrods) 백화점의 한 명품 팝업 스토어 모습. 사진 REUTERS

영국 런던 해러즈(Harrods) 백화점의 한 명품 팝업 스토어 모습. 사진 REUTERS

잦은 가격 인상으로 인한 소비자들의 ‘피로감’이 쌓이는 중에도 명품 업계는 가격 인상을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다른 소비재와는 달리 접근성이 떨어질 때 오히려 가치가 오르는 명품의 속성 때문이다. 상징적인 디자인을 주요 무기로 하는 명품의 경우 품질 및 디자인 개선으로 가치를 올리기는 어렵다. 대신 가격을 올려 아무나 갖지 못하게 만듦으로써 희소성과 소유 열망을 부추긴다.

실제로 최근 명품 업계에서는 부유층 고객만을 겨냥한 전용 매장을 내는 것이 추세다. 발렌시아가는 지난해 초 프랑스 파리에 ‘맞춤복(꾸뛰르)’ 전용 매장을 냈고, 샤넬도 올해 아시아에서 VIC(최고 중요 고객) 매장을 낼 예정으로 알려졌다.

트렌드 분석가 이정민 트렌드랩506 대표는 “물류비나 인건비, 제품 생산 비용이 올라갔다고 해서 이렇게 자주 가격을 인상 하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며 “불경기일수록 더욱 상위 계층을 겨냥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명품의 속성에 따라 가격으로 차별화하기는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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