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최루탄→물대포→캡사이신, 경찰의 집회 대응법 변천사

중앙일보

입력

경찰이 지난달 31일 민주노총이 서울 도심에서 벌인 대규모 집회에서 6년만에 캡사이신 분사기를 꺼내든 가운데, 여권에서는 지난 2015년 이후 집회 현장에서 사라졌던 ‘물대포’(살수차)를 재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캡사이신이 실탄을 피하기 위해 최루탄을, 최루탄을 피하기 위해 물대포를 도입해 온 경찰의 마지막 카드일지에 여야의 촉각이 쏠린다.

총대 든 기마경찰 대체했던 ‘사과탄’

지난 1987년 6월, 최루탄으로부터 피해를 줄이기 위해 시민들이 얼굴에 비닐봉지를 쓰고 다니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1987년 6월, 최루탄으로부터 피해를 줄이기 위해 시민들이 얼굴에 비닐봉지를 쓰고 다니고 있다. 중앙포토

민주화 요구가 들끓던 1960년대 집회·시위에 쓰인 건 총과 몽둥이였다. 1960년 4.19 혁명에 참여했던 김한기 대한노인회 구미지회 부지회장(88·당시 영남대 3학년)은 총을 든 기마경찰의 모습을 또렷이 기억했다. 김씨는 “대구 중앙통에 들어서자 말을 탄 경찰들이 권총대를 들고선 ‘쏜다’고 위협했다. 실제로 쏘진 않았지만, 행렬 뒤쪽에서는 경찰들이 곤봉으로 여학생들을 때려서 병원에 실려가고 야단이 났다”며 “나중에는 부상자 학생들을 위한 모금운동을 했다”고 했다.

4.19 혁명 때 경찰이 실탄을 쓰면서 사망자·부상자가 속출하자 대체재로 등장한 게 최루탄이었다. 1차 세계대전 때 개발된 최루탄은 비살상 무기로서 각광받았고 경찰은 196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미제 최루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1975년부터는 삼양화학공업에서 국내 생산도 시작됐다. 매년 깡통 모양의 발사형 최루탄인 ‘직격탄’(SY-44), 동그란 모양의 ‘사과탄’(KM25), ‘지랄탄’(다연발탄) 등 다양한 형태의 최루탄 수만 개가 시위에 쓰였다.

최루탄의 성분도 점점 달라졌다. 과학기술사 전공인 최형섭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최루탄의 성분은 크게 CS제와 CN제로 나뉘는데, CS제는 1950년에 영국에서 군용으로 처음 개발돼 군대에서 주로 사용되고 CN은 주로 경찰용으로 사용됐다”며 “80년대 한국에서는 둘을 크게 구분 없이 썼고, CS제에 다른 성분을 섞은 ‘칵테일형’ 등 위력이 상당한 것도 사용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시위가 벌어지면 시위대가 최루탄을 피해 밀려들까봐 주변 가게들이 다 셔터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바람이 불면 꽤 먼 거리의 주거지역까지도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6월 항쟁 이후 최루탄 대체 위한 ‘물대포’ 등장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최루탄에 대한 퇴출 요구가 본격화된 건 1987년 6월, 고(故) 이한열씨가 연세대 앞에서 벌어진 대정부 시위 도중 SY-44 최루탄에 머리를 맞아 숨지면서였다. 경찰은 최루탄으로 인한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해 1989년 ‘물대포’(워터캐논) 2대를 도입했고,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 이무영 경찰청장은 ‘무최루탄 원칙’을 천명했다. 최루탄은 1998년 만도기계 총파업을 마지막으로 한국 시위 현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캡사이신은 2008년 촛불집회 충돌 후 경찰이 도입한 새 시위 저지 도구였다. 경찰은 2012년 카트리지를 교체할 수 있게 해 사용시간을 늘린 분사기에 대해 특허를 출원하기도 했다. 캡사이신은 2013년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 촛불집회나 2015년 세월호참사 범국민대회 등에서 폭넓게 사용되다가, 2017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 이후로는 집회 보호 기조 아래 주로 질서유지선 등이 활용됐다. 지난달 31일 캡사이신은 6년만에 재등장했다.

지난달 31일 서울 세종대로에서 열린 노동·민생·민주·평화 파괴 윤석열 정권퇴진! 민주노총 총력투쟁대회에 배치된 경찰들 옆에 캡사이신 분사기가 든 가방이 놓여 있다. 뉴스1

지난달 31일 서울 세종대로에서 열린 노동·민생·민주·평화 파괴 윤석열 정권퇴진! 민주노총 총력투쟁대회에 배치된 경찰들 옆에 캡사이신 분사기가 든 가방이 놓여 있다. 뉴스1

 지난달 16일 서울에서 벌어진 민주노총의 1박 2일 노숙 집회 이후 경찰이 불법 시위에 대한 대응 수위를 점점 높이면서 정치권에서는 살수차를 재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러자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살수차 사용에 엄격한 조건을 다는 ‘경찰관 직무집행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살수차 사용 가능성에 대해 지난 31일 집회를 앞두고 “차차 시간을 두고 말씀드리겠다”며 입장을 유보했다. 살수차는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고(故) 백남기 농민이 직사 살수포를 맞아 사망한 뒤 사용이 중지됐고 경찰 보유 살수차 19대는 2021년 전량 폐차했다.

경찰장비 도입 여부에 이목이 쏠리는 가운데 수단을 떠나 원칙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불법 집회에 경찰이 대응하기 위한 수단이 필요하다는 대전제를 부정해선 안 된다. 그런데 지금은 경찰이 집회 주체·정치·여론을 모두 고려해서 4차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며 “불법을 저지른 사람에게 제재를 가하고 평화로운 집회는 보호한다는 단순한 원칙에 따라 법집행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