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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림·치킨도 '수사대상'…檢 "물가도 잡는다" 광폭 행보

중앙일보

입력

검찰이 경제당국의 영역인 물가안정에도 기여하겠다고 나서 활동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교복·아이스크림·닭고기 등의 담합(짬짜미) 사건에 대한 수사를 통해서다.

3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검찰은 지난해 6월부터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검사 이정섭) 등을 중심으로 교육, 주거, 식품 등의 각종 분야에서 벌어지는 담합행위를 생활물가 교란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집중 수사에 들어갔다.

광주지역 교복업체들의 입찰담합 사건 수사가 대표 사례로 언급됐다. 교복업체들은 교복 입찰 공고가 뜨면 자기들끼리 낙찰받을 업체를 정한 후 들러리 업체를 내세우는 수법으로 낙찰가를 올렸다. 이런 담합으로 광주 지역 교복값이 동복과 하복을 합쳐 1인당 약 6만 원 정도 상승하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검찰은 분석했다.

광주지역 교복업체들의 담합으로 광주지역의 교복값은 1인당 6만원 가량이 더 비쌌다. 광주지방검찰청

광주지역 교복업체들의 담합으로 광주지역의 교복값은 1인당 6만원 가량이 더 비쌌다. 광주지방검찰청

검찰이 올해 담합을 벌인 교복업체 대표 31명을 기소한 이후 한 때 약 97%에 육박했던 투찰률은 최근 79%로 내려갔다. 투찰률은 ‘예정가격 대비 입찰 참가업체가 투찰한 투찰가격의 비율‘로, 투찰률이 높을수록 낙찰가와 소매가격이 올라간다. 담합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물가안정에 도움을 준 셈이다. 검찰은 “OECD 연구결과에 따르면 공공조달 부문에서 입찰 담합 근절시 20% 이상 가격절감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고 설명했다.

급격한 인플레이션에 담합 사건 수사

 검찰은 최근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담합 사건 수사의 계기가 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검찰은 “서민생활과 직결되는 교육·주거·식품 시장에서 기업들의 담합이 물가상승을 부추겼고, 서민들의 부담과 고통으로 전가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19년 0.4%, 2020년 0.5%에 불과했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021년 2.5%, 2022년 5.1%로 급등세를 보였다.

아파트 빌트인 가구업체의 담합을 파헤친 건 주택 가격 안정을 위한 시도였다고 한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2조3200억 규모의 신축 아파트 빌트인 가구 입찰에 참여한 가구업체들이 투찰가격을 공유하고 낙찰예정자를 지정하는 식으로 담합을 벌인 것을 적발해 지난 4월 가구사 8곳과 업체 관계자 14명을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아파트에 설치되는 빌트인 가구는 아파트 분양가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라며 “담합을 통한 가구가격 인상은 결국 아파트 분양원가를 상승을 일으킨 민생침해 범죄”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체감 물가에 영향을 주는 아이스크림과 닭고기 등 식품 담합에도 칼을 댔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국내 빙과류 제조업체 4곳이 2016년 2월부터 2019년 10월까지 아이스크림 판매‧납품가격 등을 담합해 가격을 인상한 사실을 적발해 지난해 10월 빙과류 제조업체 1곳(나머지 업체는 자진신고)과 업체 관계자 4명 각 불구속 기소했다.

닭고기 생산·판매업체 6곳이 약 14조 원 상당의 닭고기 가격, 생산량, 출고량 등을 담합해 최대 25.4%까지 닭고기 소매가격을 폭등시킨 범행도 검찰에 덜미를 잡혔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지난해 6월 담합 닭고기 업체 6곳, 사업자단체 1곳 및 업체 관계자 2명을 각각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의 추산에 따르면 담합이 벌어진 2005년 11월부터 2017년 7월까지 월 평균 닭고기(육계 신선육) 가격이 약 8.5% 상승했다. 삼계 신선육의 경우 거래처별로 10.4~25.3%까지 가격 소매가격이 급등했다고 한다. 닭고기 업체들은 담합기간 동안 약 13조 6959억 원 상당의 매출을 올렸고, 가격 인상분은 소비자들의 부담으로 돌아갔다.

검찰 독자적인 담합사건 수사도 나타나

 아이스크림과 닭고기 담합 사건의 경우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발을 받아 담합수사를 진행했지만 최근엔 검찰이 독자적으로 수사를 개시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가구업체 담합 사건에서 건설산업기본법상 입찰방해 혐의로 일단 수사에 착수한 뒤 기소 직전 공정위에 공정거래법상 부당공동행위(담합) 혐의 고발을 요청했다.

검찰이 공정위의 전속고발권(공정위 고발이 있어야만 수사 및 기소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을 사실상 무력화한다는 지적이 일부 나오지만 공정위가 담합 사건을 자체 조사해 검찰에 넘기는 데 까지 너무 긴 시간이 걸려 증거인멸이 잦고, 공소시효가 촉박한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검찰의 선수사-후고발요청은 불가피한 현상이라는 시각도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검찰이 모든 담합 사건을 직접 수사하겠다는 게 아니라 중대한 범죄로 형사처벌이 불가피한 사건 위주로 수사를 진행할 것”이라며 “공정위 행정조사와는 접근 방식이 다르고, 공정위와 사전 협의를 통해 수사를 진행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형사 리니언시 제도가 활성화하면 앞으로 담합사건에 대한 검찰의 직접 수사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형사 리니언시는 공정위 고발 없이 수사에 들어간 담합 사건에 대해 자진 신고한 사업자와 임직원을 기소하지 않거나 구형량을 줄여주는 제도다. 2020년 12월 시행돼 최근 서울중앙지검의 가구업체 담합 사건에 처음 적용됐다.

검찰은 “올해 3월 공정거래 실무협의회를 개최하는 등 검찰과 공정위는 주요 담합사건에서 지속적인 실무협의를 진행하고 있다”며 “리니언시의 효과적인 운영을 위해 기관 간 정보공유의 범위를 확대하고 상호 협조를 심화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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