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조깅화 ‘불 난’ 날, 금융실명제 실시 전격 발표했다: 청와대 대통령 소품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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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2호 02면

사연 많은 역대 대통령 소품전 가보니

청와대 세종실 입구에서 역대 대통령 초상화를 찍는 관람객. 문소영 기자

청와대 세종실 입구에서 역대 대통령 초상화를 찍는 관람객. 문소영 기자

2일 오전 청와대 본관 관람객들이 문화체육관광부가 청와대 개방 1주년을 맞아 1일부터 시작한 특별전시 '우리 대통령들의 이야기, 여기 대통령들이 있었다'를 둘러보고 있다.  문소영 기자

2일 오전 청와대 본관 관람객들이 문화체육관광부가 청와대 개방 1주년을 맞아 1일부터 시작한 특별전시 '우리 대통령들의 이야기, 여기 대통령들이 있었다'를 둘러보고 있다. 문소영 기자

김영삼 전 대통령(YS)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두 가지를 떠올린다. 칼국수와 조깅. YS는 청와대 녹지원에서 새벽 조깅을 하면서 복잡한 국정을 정리하곤 했다. 지금부터 30년 전인 1993년 8월 12일 새벽, 그는 여느 때처럼 조깅을 했다. 그런데 달리는 속도가 평소보다 두 배나 빨랐다고 한다. 당시 대통령 비서실 공보비서관이었던 박진 현 외교부장관의 회고다. 대통령이 뭔가에 몰두해 있다는 건 짐작했지만 그게 뭔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날 저녁 YS는 금융실명제 실시를 전격 발표했다. 나라가 뒤흔들렸고 반발도 거셌으나 지금은 YS 정부의 최대 업적으로 평가 받는 결단이었다. 빠른 조깅은 그 결단의 조짐이었다.

박진 “YS, 평소보다 두 배 빨리 조깅”

문화체육관광부가 청와대 개방 1주년을 맞아 1일부터 특별전시 '우리 대통령들의 이야기, 여기 대통령들이 있었다'를 청와대 본관에서 시작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조깅화'  김경록 기자

문화체육관광부가 청와대 개방 1주년을 맞아 1일부터 특별전시 '우리 대통령들의 이야기, 여기 대통령들이 있었다'를 청와대 본관에서 시작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조깅화' 김경록 기자

이 에피소드에 관한 텍스트를 YS가 신었던 낡은 조깅화, 관련 사진들과 함께 지금 청와대 인왕실에서 볼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청와대 개방 1주년을 맞아 지난 1일 시작한 특별전 ‘우리 대통령들의 이야기-여기 대통령들이 있었다’의 한 섹션이다. 역대 대통령 12인을 상징적인 소품을 통해서 돌아보는 새로운 방식의 전시다. 2일 청와대 세종실과 인왕실 전시실을 가득 메운 방문객들은 호기심에 차서 소품들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중학생 조지현 양은 “대통령들이 살았던 공간에 와 있는 게 신기하게 느껴지고 사용한 물건들을 보면서 역대 대통령들에게 좀 흥미가 생겼어요”라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개량 독서대’. [연합뉴스]

노무현 전 대통령 ‘개량 독서대’. [연합뉴스]

특히 흥미로운 물건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고시생 시절인 1974년 개발해 특허까지 따낸 ‘개량 독서대’다. 이 독서대는 요즘 수험생들도 즐기는 ‘눕공(누워서 공부하기)’을 위한 것으로, 누워서 책을 볼 수 있게 각도 조절 기능을 갖췄다. 문체부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대통령을 안 했으면 컨설턴트나 발명가였을 것’이라고 했다. (…) 그는 장애물에 부딪혔을 때 (…) 파격적인 해법과 개선 방식을 제시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반려견 스케치’. 김경록 기자

박정희 전 대통령 ‘반려견 스케치’. 김경록 기자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반려견 방울이를 연필로 스케치한 작품도 흥미롭다. 그의 카리스마적 이미지와 동떨어진 귀여운 그림이기 때문이다. 그는 군인이 되기 전까지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고 사범학교에서 교사의 필수 역량 중 하나인 그림도 익혔다. 두뇌 훈련 방법으로 인기를 끄는 ‘그림으로 생각 정리하고 메모하기’를 일찍부터 실천하기도 했다. 문체부는 “그림을 통해 국정 상황을 입체적으로 파악했다. 그가 직접 스케치한 경부고속도로 계획안은 정밀하다”고 밝혔다.

노태우 전 대통령 '퉁소' [연합뉴스]

노태우 전 대통령 '퉁소' [연합뉴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음악에 뛰어났다. 그가 즐겨 불었던 퉁소가 전시에 나와 있다. 이 퉁소는 일곱 살 때 여읜 부친의 유품으로, ‘타향살이’ 노래로 유명한 가수이자 영화기획자 고복수가 부친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휘파람 불기도 노 전 대통령의 장기 중 하나였다. 친지들의 회고에 따르면 그가 산에서 휘파람을 불면 산새가 날아올 정도였다고 한다. 문체부는 “그의 섬세한 감수성은 6공 집권 시절 정치의 유연성을 추구하게 했다”고 설명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 '원예가위와 물뿌리개' 김경록 기자

김대중 전 대통령 '원예가위와 물뿌리개' 김경록 기자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상징적인 오브제는 물뿌리개와 원예가위다. 1980년 신군부에 체포되었을 당시 독서와 꽃 가꾸기로 감옥 생활을 견뎠던 DJ다. 문체부에 따르면 그는 “가위로 꽃을 다듬으면서 정치 공간을 새로 설계했다.” 그의 별호 ‘인동초’처럼 겨울을 견뎌내고 대통령이 된 후 전직 대통령 4명을 청와대에 불러서 어울리며 화합의 정치를 실현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 ‘영문 타자기’. 김경록 기자

이승만 전 대통령 ‘영문 타자기’. 김경록 기자

이승만 전 대통령의 영문 타자기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하던 시절에 늘 그의 가방에 들어 있었고, 신생국가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 된 후에는 경무대 집무실에 놓였던 물건이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드물었던 시절에 그는 직접 수많은 영어 문서를 작성했다. 1953년 7월, 한국전쟁 휴전 무렵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과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을 협상할 때도 78세 나이에 ‘독수리 타법’으로 타자기를 두들기며 외교 문서를 작성했다고 한다.

박보균 “긍정적 역사관으로 가는 출발점”

윤보선 전 대통령 '여행용 가방'.  문소영 기자

윤보선 전 대통령 '여행용 가방'. 문소영 기자

최규하 전 대통령 '연탄난로'.  문소영 기자

최규하 전 대통령 '연탄난로'. 문소영 기자

전두환 전 대통령 '사인 축구공'  문소영 기자

전두환 전 대통령 '사인 축구공' 문소영 기자

이밖에도 윤보선 전 대통령이 경무대 대신 청와대 시대를 열었음을 보여주는 청기와, 최규하 전 대통령의 검소함을 보여주는 연탄 난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스포츠 정치를 보여주는 사인 축구공,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자전거 헬멧, 박근혜 전 대통령의 책 ‘나의 어머니 육영수’ 등이 전시에 나와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게서 선물 받은 앤디 워홀 판화 ‘시베리아 호랑이’도 전시에 포함되어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자전거 헬멧'.  문소영 기자

이명박 전 대통령 '자전거 헬멧'. 문소영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 '나의 어머니, 육영수' 문소영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 '나의 어머니, 육영수' 문소영 기자

문재인 전 대통령 ‘앤디 워홀 판화’. 문소영 기자

문재인 전 대통령 ‘앤디 워홀 판화’. 문소영 기자

박보균 문체부 장관은 “이번 전시는 대통령의 공과를 다루는 기존의 방식을 벗어나, 상징적인 물건을 통한 스토리텔링으로 역대 대통령들에게 좀더 친근하게 접근하는 방식을 취했다. 우리는 역대 대통령의 공과(功過) 중에서 과오에 초점을 맞추며 평가에 인색한 편이고 또 멀게 느끼는 편이다. 그래서 쉽고 흥미롭게 역대 대통령에 접근하고 관람객이 그들을 새롭게 바라보고 더 탐색할 마음이 생기도록 전시를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박 장관은 “향후 역대 대통령 관련 물품을 청와대 본관 전반에 상설로 전시해서 청와대 본관이 역사 박물관으로서 기능하게 하는 것을 고려 중이다. 대통령기록관에 역대 대통령이 받은 선물들이 보관돼 있는데 그 중에도 흥미로운 것이 많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가 우리 대통령들에 대한 자학적인 역사관에서 벗어나 긍정적인 역사관으로 가는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박 장관은 덧붙였다.

이 같은 맥락으로 문체부는 ‘본관 내부 복원 프로젝트’를 통해 청와대 본관을 대통령이 국빈을 맞이하고 집무를 하던 모습으로 복원 중에 있다. 우선 이번 전시 기간에는 그동안 카펫 보호를 위해 설치되었던 덮개 카펫을 철거해 다시 드러난 붉은 카펫을 볼 수 있다. 한편 기자회견장이었던 춘추관 2층 브리핑룸에서는 청와대에서 오랜 기간 사용된 가구와 식기 등이 전시된다. 본관과 춘추관의 전시는 8월 28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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