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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지지’ 대신 탈이념화, 여야 한 달 새 8%P 널뛰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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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2호 05면

[여의도 톺아보기] 출렁이는 정당 지지율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2일 당협 워크숍에 참석하고 있다.(왼쪽 사진)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2일 서울중앙지법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2일 당협 워크숍에 참석하고 있다.(왼쪽 사진)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2일 서울중앙지법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정당 지지도는 쉽게 변하지 않는 지표다. ‘어느 정당을 지지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여론조사 응답 결과를 봐도 그렇다. 여기서 ‘지지’는 사람의 마음 상태 중 상대적으로 깊은 단계에 속하는 것으로, 단기간에 의미 있는 변화가 잘 나타나지 않는 특성을 갖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그런 만큼 특정 정당을 ‘지지’할 경우 그 정당에 악재가 터지더라도 웬만해선 곧바로 지지를 거둬들이지는 않는다. 누군가를 신뢰하게 되면 설령 서운한 일이 있더라도 곧장 절교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변동성보다는 고정성을 특징으로 하는 이 같은 정당 지지도의 흐름에 최근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진폭이 유례없이 크고 변동 주기도 부쩍 짧아졌다.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봐도 여당인 국민의힘 지지도의 경우 3월 첫째 주엔 39%까지 올랐다가 4월 둘째 주엔 31%로 떨어졌다.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지지율도 3월 첫째 주엔 29%까지 급락하더니 4월 넷째 주엔 37%로 오르는 등 변화의 폭이 컸다. 양당 모두 한두 달 사이에 최고·최저치가 8%포인트 차이가 날 정도로 등락을 거듭한 셈이다.〈이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지난 두 달 새 여야의 정치적 대립 구도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여야 모두 당내 문제로 인해 곤란한 상황에 직면해야 했다. 국민의힘에서는 전당대회 이후 태영호·김재원 전 최고위원의 설화로 인한 논란이 불거졌고 우여곡절 끝에 징계 절차가 진행됐다. 민주당도 이전 전당대회 때의 돈봉투 의혹과 김남국 의원 코인 투자 논란에 휩싸였다.

여야 지도부는 지금껏 그래왔듯이 대충 시간을 끌면서 이슈 주목도가 떨어지고 여론의 관심이 줄기만 기다리면 된다며 안이하게 생각했을 수 있다. 과거에는 이런 전략이 먹혔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여야 모두 여론의 눈치를 보며 주저하는 사이에 정당 지지율은 즉각 변화하기 시작했다. 대중이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할 때 자신이 선호하는 정당을 무조건 방어했던 ‘묻지마 지지’ 현상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전에는 대중의 정치적 특성이 그다지 복잡하지 않았다. 분석 틀도 비교적 단순했다. 2010년까지만 하더라도 여론조사 전문가들 사이에선 ‘2030 진보, 40대 중도, 5060 보수’라는 공식이 여론 분석의 만능 도구로 통했다. 이를 바탕으로 대중의 정치적 성향은 물론 특정 정치 현안에 대한 여론도 어렵잖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이후 40대에서 변화가 나타났는데, 더 이상 중도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진보 성향이 강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2040 진보, 50대 중도, 6070 보수’로 공식이 재조정됐다. 그런 가운데서도 ‘젊은 세대는 진보, 나이 든 세대는 보수’라는 기본 구조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2021년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 결과 이 같은 분석 틀마저 적실성을 상실했음이 수치로 드러나게 됐다. 무엇보다 ‘2030은 젊은 세대인 만큼 당연히 진보’라는 고정관념이 더는 통하지 않게 됐다. 나이의 많고 적음으로 정치적 성향을 구분해 왔던 기존의 시각이 설 땅을 잃게 된 것이다.

굳이 구분하자면 지금은 ‘2030 유동·다양, 40대 진보, 50대 중도, 6070 보수’로 세대별 정치 성향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MZ세대로 불리는 2030세대의 다양성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다. 예견되는 징후들도 여럿 있었다. 2017년 대선에서는 문재인·홍준표·안철수·유승민·심상정 후보 등이 경쟁했는데, 당시 출구조사 때 20대 표심을 보면 문 후보가 가장 높긴 했지만 다른 후보들도 의미 있는 두 자릿수 득표를 얻으며 20대의 다양한 취향이 기성세대와는 사뭇 다르다는 게 드러났다.

당시 유독 홍 후보만 20대에서 10%에 미치지 못했는데, 5년이 지난 2022년 대선 경선 때는 거꾸로 젊은 층이 크게 선호하는 인물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 또한 2030세대가 정치적으로 고정돼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일부 전문가들은 젊은 층이 이미 보수화됐다고도 진단하지만 이는 새로운 세대를 과거의 분석 틀에 꿰어맞춰 규정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설득력은 크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세대의 정치적 특성 변화는 ‘이념 성향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여론조사 기관들은 정치적 성향 조사 때 ‘스스로를 어느 성향이라고 생각하는지’를 묻는데, 이는 각 개인의 이념적 정체성을 파악하는 것으로 정치 성향 변화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지표로 활용된다. 최근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20대와 30대는 좌우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 있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같은 세대라도 남녀가 다른 성향을 띠는 경우도 흔하다.

주목할 부분은 2030세대의 이 같은 탈이념적 현상이 진영 대신 사안과 시기에 따라 정치 세력을 평가하는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MZ세대가 어느 순간 보수 정당에 표를 몰아줬다가도 특정 현안이 논란을 빚을 경우 대통령 국정 수행 평가에선 부정적 여론의 편에 서는 것도 이젠 전혀 낯설지 않은 모습이 됐다.

이념 성향의 약화는 비단 2030세대에만 국한되는 현상은 아니다. 한국갤럽의 5월 통합 여론조사 결과 정치적 사안에서 진보적 입장을 견지해 왔던 40대도 스스로를 진보라고 답한 비율이 28%로 그리 높지 않았다. 보수라고 답한 비율(27%)과도 거의 차이가 없었다. 반면 중도라고 답한 비율은 36%에 달했다. 50대에서도 이런 현상은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다. 60대도 보수라는 응답이 39%로 가장 많았지만 중도와 진보라는 응답도 각각 27%와 21%로 적잖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픽 참조〉

이 같은 흐름은 유권자를 더 이상 연령대와 이념적 잣대로 단순화·획일화해 바라볼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정치적 이슈에 따라 각 세대 내에서도 다양한 반응이 나올 수 있는 구조가 형성돼 있다는 얘기다. 그런 만큼 여야 정당도 과거의 관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으로 유권자 그룹을 바라봐야 한다는 주문이 적잖다. 하지만 여전히 실효성을 상실한 구시대적 세대 구분과 이념 구분에 사로잡혀 있는 게 현실이다. 더 심각한 건 “문제가 생기더라도 떠나간 지지층은 결국엔 돌아온다”는 오랜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있다 보니 총선을 앞두고도 위기를 위기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의 대중은 이념성에 기반하는 경향이 강했던 만큼 지지하는 정당의 현재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미운 정 때문에라도 지지 의사를 바꾸지 않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념과 진영에 대한 소속감이 그 어느 때보다 약해진 상태다. “민심은 고정돼 있다”는 헛된 믿음을 버리지 않으면 다가오는 선거에서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용수철도 길게 당겼다 놓으면 처음엔 제자리로 돌아가지만 자꾸 반복하면 탄력을 잃은 채 다시는 되돌아가지 않는 법이다. 지금의 한국 정치 현실도 마찬가지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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