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황도 범부다' 저항...日창가학회, 이순신·유관순 알렸다" [백성호의 현문우답]

"'천황도 범부다' 저항...日창가학회, 이순신·유관순 알렸다" [백성호의 현문우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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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군국주의의 광풍이 일본 열도를 지배했다. 당시 일본인에게 ‘천황(일왕)은 신(神)’이었다. 일본의 전통 신앙인 신도(神道)는 원래 만물에 정령이 깃들어 있다는 민속 신앙의 개념이었다. 그런데 메이지 시대 이후에 일본 군부가 일왕을 신격화했다. 일왕을 중심에 두고 ‘국가신도(國家神道)’의 개념을 도입해 국가 통치 이데올로기를 구축했다. 그게 일본 군국주의의 정신적 뼈대였다.

당시 일본에는 약 1500개의 종교 단체가 있었다. 기독교와 천주교도 이미 들어온 상태였다. 그렇지만 군국주의에 강렬하게 저항하고, 그로 인해 대표자가 목숨까지 잃은 종교는 창가학회였다.

창가학회는 초토화 직전까지 갔다. 창립자인 마키구치쓰네사부로(1871~1944) 초대 회장은 신사 참배 거부와 천황 모독 등의 이유로 결국 치안유지법 위반과 불경죄로 체포됐다. 일제 강점기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에게 씌워진 죄목도 이 두 가지였다.

“천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검찰의 취조 심문에 마키구치 회장은 대담하게도 “천황도 범부다!”라고 일갈했다. 취조하던 검사가 재차 물었으나 대답은 똑같았다. “ 천황도 범부다”라는 마키구치 회장의 외침은 검찰의 기소장에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결국 그는 수감됐다. 감옥에서도 바깥에서 음식을 들여오는 사식(私食)을 일절 거부하며 1년 4개월간 투쟁했다. 밥은 찻잔에 조금 담겨서 나왔다. 겨울철 다다미 감방은 냉장고나 마찬가지였다. 방바닥에 손을 대면 살이 달라붙을 정도였다. 마키구치 회장은 결국 영양실조에 걸렸고, 굶어 죽다시피 옥사했다.

한국SGI 김인수 이사장은 "창가학회의 창가는 '가치를 창조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앙포토

한국SGI 김인수 이사장은 "창가학회의 창가는 '가치를 창조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앙포토

그런 창가학회가 올해 창립 93주년을 맞았다. 1일 서울 구로구 한국SGI 본부에서 김인수(64) 이사장을 만났다. 한국의 SGI회원 수는 150만 명이다. 그에게 창가학회의 지향점을 물었다.

왜 명칭이 ‘창가학회’인가.  
“창가(創價)는 ‘가치를 창조한다’는 뜻이다. 옥사한 마키구치 초대 회장이 원래 교육자(초등학교 교장)였다. ‘진정한 교육이란 무엇인가?’란 물음을 끝없이 던졌다. 그러다가 마키구치 회장은 니치렌(日蓮) 대성인을 통해 불법(佛法)을 알게 됐다. 그리고 ‘가치를 창조하는 교육’이란 답을 얻었다. 불법의 이치야말로 가치 창조 교육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의 신념을 펼칠 창가교육학회(현 창가학회)를 창립했다.”  

니치렌 선사는 1200년대 인물이다. 그는 대승불교 경전인 법화경을 중시했다. ‘법화경’의 전체 명칭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다. 그걸 일본어로 발음하면 ‘묘호렌게쿄’가 된다. “나의 몸과 마음을 법화경의 가르침, 즉 우주와 생명을 관철하는 근원의 법에 귀의한다”는 뜻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다. 그래서 창가학회 회원들은 기원할 때 “남묘호렌게쿄”를 되풀이해서 봉창한다.

‘남묘호렌게쿄’라는 발음 때문에 엉뚱한 오해와 편견도 있었다. 왜 한국어로 “나무묘법연화경”이라고 부르지 않나.  
“지구촌에는 192개국에 1200만 명의 창가학회 회원이 있다. 세계 기독교에서 기도를 마칠 때 히브리어로 ‘아멘!’이라고 하지 않나. 같은 맥락이다. 창가학회는 미국ㆍ유럽ㆍ남미에 있는 회원도 ‘남묘호렌게쿄’를 봉창한다. 이건 부처가 깨달은 법의 이름이다. 고유명사로 봐달라. ”
기도할 때 왜 “남묘호렌게쿄”를 반복해서 부르나.
“모든 사람 안에는 불성이 있다(萬人成佛). 부처의 생명력, 부처의 지혜, 부처의 자비가 있다. ‘남묘호렌게쿄’를 외다 보면 우리의 내면이 저절로 고요해진다. 이어서 부처의 강인한 생명력, 깊은 지혜, 너그러운 자비가 내 안에서 용출한다.”
불성(佛性)이라는 자기 내면의 우물로 던지는 일종의 두레박인가.
“그렇게 보면 된다. 처음에는 대개 ‘나의 행복’만을 위해서 두레박을 던진다. 좀 더 지나면 타인의 행복까지 기원하며 두레박을 던지는 나를 보게 된다. 그렇게 내가 더 확장되고, 더 커지고, 더 깊어진다. 그렇게 부처를 닮아가게 된다.”
한국SGI 김인수 이사장은 "창가학회가 지향하는 것은 생명의 가치와 평화의 가치다"라고 말했다. 중앙포토

한국SGI 김인수 이사장은 "창가학회가 지향하는 것은 생명의 가치와 평화의 가치다"라고 말했다. 중앙포토

창가학회의 ‘창가’는 가치창조를 뜻한다고 했다. 어떤 가치인가.
“생명의 가치와 평화의 가치다. 제2차 세계대전 와중에 일왕은 교육칙어(일종의 국민교육헌장)를 학교에서 외우도록 강제했다. ‘모든 사람은 천황의 황민’이라고 선포했고, 국가를 위해서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 교육 지침이 떨어졌다. 그건 창가학회가 추구하는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위배한 것이었다. 마키구치 회장은 이 교육칙어를 부정했다. 개인의 행복이 국가의 강제력에 의해 불행으로 바뀌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당시는 군부가 지배하는 살벌한 시기였다. 교육칙어를 부정한 건 목숨을 건 저항이었다.”

옥사한 마키구치 초대 회장의 뒤를 이은 도다 조세이(1900~58) 2대 회장도 군국주의에 저항했다. 일본 군부는 종교 단체에서도 신사(神社)의 부적을 모시라고 강요했다. 마키구치 회장과 수제자 도다는 이를 거부했다. 결국 도다도 2년간 투옥됐다. 수감될 때 85㎏였던 몸무게가 출옥할 때는 50㎏였다. 그는 감옥에서 하루 1만 번 ‘남묘호렌게쿄’를 불렀다고 한다. 그러면서 “부처는 생명이다! 생명의 표출이다. (부처는)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생명 속에 있다”고 일갈하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럼 창가학회의 가장 핵심적인 지향은 뭔가.  
“인간혁명이다. 불교는 결국 인간혁명의 철학과 실천으로 이어진다. 내가 부처인 줄 모르고 있을 때도, 내 안에는 불성(佛性)이 있다. 인간은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는 종자가 있다. 그래서 가능하다.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자신을 깨고, 이웃의 행복까지 바라는 나로 확장될 수 있다. 그렇게 나를 바꾸면 가정과 사회가 바뀌지 않겠나. 국가와 세계가 바뀌지 않겠나.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는 바로 이것이다. 창가학회가 펼치고 있는 평화ㆍ문화ㆍ교육 분야의 모든 운동은 궁극적으로 먼저 자신의 인간혁명으로 변혁을 지향한다.”

국제SGI 이케다 다이사쿠 회장 “한국은 문화 대은의 나라”

창가학회 3대 회장은 이케다 다이사쿠(95)다. 그는 일본 우익으로부터 종종 공격을 받는다. 일본의 군국주의화에 초지일관 반대하는 입장에다, 이웃 나라 한국에 대해서도 우호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기 때문이다.

창가학회 3대 회장을 역임한 이케다 다이사쿠 국제SGI 회장. 사진 한국SGI

창가학회 3대 회장을 역임한 이케다 다이사쿠 국제SGI 회장. 사진 한국SGI

이케다 회장은 평소에 “한국은 일본에 문화를 전해준 ‘문화대은(文化大恩)의 나라’”라고 강조한다. 또 수천 명의 일본 고교생ㆍ대학생이 모인 자리에서 “한국의 잔 다르크로 불리는 여학생 유관순”을 소개하고, “한민족 독립운동의 아버지 안창호는 일본의 비열한 침략과 끝까지 싸운 위대한 투사로서 몇 번이나 감옥에 투옥됐다”고 강연한 적도 있다.

또 일본 소카대학교의 졸업식 연설에서는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는가?”라고 물은 뒤 아무도 답을 못하자 “한국 구국의 영웅 충무공 이순신의 탄신일”이라며 충무공의 삶을 졸업생들에게 전하기도 했다.

창가학회는 일본에서 종합일간지인 세이쿄 신문을 발행한다. 발행 부수가 무려 550만 부다. ‘역사의 거인’ 이란 지면 고정 코너에서 유관순 열사를 소개하기도 했다. 이케다 회장은 “타인의 불행에서 자신의 행복을 찾아서는 안 된다”며 군국주의 시절의 일본을 가차 없이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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