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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정치권의 부당한 교육 간섭이 화 키운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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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2호 31면

오세정 전 서울대 총장

오세정 전 서울대 총장

한국인의 교육열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대학진학률은 70% 내외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사교육비 지출액은 연 30조~40조원으로 전 세계 사교육 시장의 4분의 1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한국사교육연구협의회 자료). 그러나 솔직히 이야기하면 이처럼 높은 교육열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 배움에 대한 열정이 특별히 많아서라기보다는, 남들과의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서 혹은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한국에서 그동안 교육은 사회적 계층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해 왔고,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출세의 보증수표였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농민들은 소까지 팔아서 자식의 대학등록금을 마련했고, 대학이 상아탑(象牙塔)이 아니라 우골탑(牛骨塔)이라는 악명(惡名)을 얻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들은 교육제도, 특히 대입제도에 많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조국 사태 때 대학에 정시확대 강요
오히려 기득권층에 유리한 결과
진지하게 바른 판단할 자신 없으면
손 떼고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현명

선데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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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이 관심을 가지면 정치인들이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원칙적으로는 정치인들이 어느 분야에 관심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다. 어떤 분야에나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합의와 제도 개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종종 일어나듯이 그 관심이 순수하지 않고 자신들의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편 가르기에 이용하거나 엉뚱한 해법을 내놓으면 오히려 문제 해결에 지대한 해악을 끼치게 된다. 사실 과거 사례를 살펴보면 정치권이 나서서 교육 문제를 해결한 경우보다 악화시킨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조국 교수 사태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조국 교수 부부에게 여러 혐의가 제기되었지만, 국민들의 감정을 가장 크게 건드린 것은 아마도 자녀들에 대한 특혜 제공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자신들의 지위나 인맥을 이용해 학술논문에 저자로 등재시키거나 인턴 증명서 등을 위조해서 자녀들을 상급학교에 입학시키는 것은 대학입시의 공정성을 크게 훼손하는 일로서, 치열한 대입 경쟁을 묵묵히 견디는 수많은 국민들에게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주었던 것이다. 이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자 당시 문재인 정부는 공정한 입시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주요대학에 대해서 2019년 이후 수시 비중을 줄이고 정시 비중을 40% 이상으로 늘리라고 강요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효과는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나타났다. 최근 민주당 강득구 의원과 교육관련단체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그후 4년간 (2020~2023) 소위 SKY 대학 정시합격자의 71.6%가 수도권 출신이었다. 이를 근거로 강득구 의원은 정시확대가 오히려 기득권층에 유리했다며 ‘정시 40%’부터 손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비판한 흔치 않은 경우이다.

사실 정시가 대치동이나 수도권에 유리하다는 사실은 이미 2019년 당시 많은 교육전문가들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정시확대라는 정책을 정부가 내놓게 되었을까. 이것은 문재인 정부의 포퓰리스트 성향과 관계 있다고 생각된다. 조국 자녀가 수시입학제도를 이용해 대학(원)에 들어간 것이 알려지자 국민 여론은 정시확대를 압도적으로 지지했고 문재인 정부는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물론 당시 청와대 비서진이나 교육부 공무원들은 이 정책이 대입에서 기득권층의 영향력을 줄이는 진정한 의미의 공정성에 반하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제왕적 대통령제하에서 공무원이 정치권의 의지를 꺾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미리 포기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뿐 아니라 수많은 대학 중에서도 정시확대 정책에 공식적으로 반기를 든 대학은 포항공대밖에 없었다. 교육부가 대학들을 실질적으로 좌지우지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정책에 반대하는 것은 자멸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처럼 교육 문제에 대한 정치권의 부당한 개입은 문제를 더욱 꼬이게 만든다. 제왕적 대통령제와 대학들의 자율권이 심각하게 제한된 상황에서 대통령이 정치적인 이유로 잘못된 정책을 밀어붙여도 반대할 힘이 없는 것이다. 물론 언론이 제 역할을 하면 상황이 나을 텐데, 언론도 대중의 표피적인 감정에만 관심이 있지 복잡한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사실 조국 자녀가 대학입시에 사용한 학술논문 저자 실적 등은 2019년 수시입시에서는 아예 제출이 금지된 상태였다. 따라서 수시를 줄여야 할 이유는 없었던 것인데, 일반 국민들은 대부분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정시확대를 선호했던 것이다. 언론도 적극적으로 이 사실을 부각시키지 않았고, 결국 잘못된 정보에 근거한 여론을 보고 중요한 정부 정책이 결정된 것이다.

교육 정책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결정해야 하는데, 정치인들은 바로 다음 선거에 관심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 단기적인 시각을 가진 정치인들이 국가 백년지대계인 교육에 부당하게 간섭하게 되면 오히려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들기 십상이다. 정치인들이 이념이나 선입견에 휘둘리지 않고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을 만큼 진지하게 공부할 자신이 없으면 차라리 교육문제는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손을 떼는 것이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일일 것이다.

오세정 전 서울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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