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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기억] 농부와 막걸리, 그 막역한 관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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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2호 31면

막걸리, 전북 고창, 1975년, ⓒ김녕만

막걸리, 전북 고창, 1975년, ⓒ김녕만

읍내에서 볼일을 다 보고 나면 농부는 잠깐 갈등한다. 주머니에 차비만 달랑거리는데 버스 타고 편히 귀가할까, 아니면 이 돈으로 막걸리 한 사발 쭈욱 들이키고 십 리 길을 허위허위 걸어갈 것인가? 짐작하겠지만 후자를 택한다. 마침 읍내를 벗어나는 길목에 자리 잡은 주막에는 으레 먼저 온 동네 사람 한둘은 있기 마련이어서 그들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는 핑계도 있다.

오뉴월 땡볕에 나무 그늘에 모여 앉아 새참을 먹을 때, 출출함과 헛헛함을 눅진하게 채워주던 막걸리. 때마침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집배원이나 동네 이장이라도 눈에 띄면 기어이 불러 세워 막걸리 한 사발 권하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에는 농촌의 아이들도 덩달아 막걸리의 맛을 알아갔다. 준비된 술은 늘 부족한 법이어서 느닷없는 술 심부름은 아이들의 몫이었고, 아이들은 동네 양조장에서 술 한 주전자 받아오면서 호기심에 한 모금, 달큰한 맛에 끌려 또 한 모금의 추억을 갖고 있다.

막걸리는 곡식으로 빚는 술이므로 오랜 농경사회의 산물이고 그래서 농부의 술, 농주(農酒)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농촌에서도 새참으로 자장면을 시켜먹고, 동네마다 들어선 다방에서 커피를 배달해 마신다는 뉴스가 회자될 때쯤엔 농주로서 절대적 지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더구나 최근엔 기계화로 인해 혼자 일하는 농부가 많아지면서 여럿이 둘러앉아 새참을 먹으며 막걸리 한 사발을 권할 사람조차 없다.

막 거른 술이라 하여 막걸리라는데, 어감 그대로 막 대해도 좋은 술, 인심 후하게 막 권하며 부담 없이 막 마시던 막걸리가 이젠 생존의 법칙을 바꿨다. 도시인에게 다가가는 고급화 전략이다. 지금도 여전히 몇천 원 수준의 서민용이 존재하지만, 알코올 도수를 높여가며 20만원에 육박하는, 막 마실 수 없는 고급 막걸리까지 등장했다. 이래저래 들에서 일하다가 기분 좋게 서로 권하던 소박한 농주와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김녕만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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