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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형편 따라 뷔페·간편식 큰 차 ‘학식판 부익부 빈익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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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2호 13면

‘천원의 아침밥’ 열풍의 그늘

지난 3월 경희대학교 학생들이 푸른솔문화관 학생식당에서 천원의 아침밥을 배식받고 있다. 경희대는 학부생,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일 100명분 내외의 아침밥을 1000원에 판매한다. [뉴스1]

지난 3월 경희대학교 학생들이 푸른솔문화관 학생식당에서 천원의 아침밥을 배식받고 있다. 경희대는 학부생,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일 100명분 내외의 아침밥을 1000원에 판매한다. [뉴스1]

“진짜 집밥보다 낫다.” “1교시 수업인데 이거 먹으려고 일부러 일찍 왔잖아.”

지난 1일 오전 8시 서울 광진구 세종대학교 군자관 학생식당. 이른 아침이지만 점심시간인 줄 착각할 정도로 학생들이 북적였다. 이날 학생식당 아침 메뉴는 부대찌개, 두부조림과 부추무침, 콩자반, 김, 채소샐러드. 메뉴만 보면 일반 구내식당과 다를 바 없는 이곳 학생식당은 재학생을 대상으로 단돈 1000원에 뷔페식 아침 식사를 제공한다. 23학번 재학생 권모씨는 “원래 이곳 학생식당에서 파는 메뉴는 6000원이라 잘 오지 않았는데, ‘천원의 아침밥’ 덕분에 매일 이곳을 찾고 있다”며 배식대로 향했다.

이날 학생들이 1000원에 풍족한 아침을 먹을 수 있었던 건 농림수산식품부가 쌀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시행 중인 ‘천원의 아침밥’ 사업 덕분이다. 학생이 한 끼에 1000원을 내면 정부(농식품부)가 1000원을 지원하고, 나머지 금액을 학교가 부담해 고물가 시대 학생들에게 저렴한 음식을 제공한다. 2012년 순천향대학교에서 시작된 이 사업은 2017년 농림부 사업으로 채택되면서 올해 기준 전국 145개 대학이 동참하게 됐다. 지난해 사업 참여자 대상 설문조사 결과 98.7%가 ‘사업이 지속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힐 정도로 인기다. 단국대학교 한문교육과 23학번 김모(21)씨는 “이 사업 덕분에 안 먹던 아침밥을 먹게 됐다”며 “학교에서 진행하는 사업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복지”라고 말했다.

매일 아침 학생식당에 ‘오픈런’이 벌어질 정도로 불티나게 팔리는 아침밥이지만 최근 대학본부는 아침밥 흥행에 되려 걱정이 커지고 있다. 1000원의 아침밥을 제공하기 위한 비용 중 절반 이상을 대학본부가 감당해야 해서다. 1식 단가를 4500원에 운영하는 학교의 경우 정부 지원금(1000원)과 학생 부담금(1000원)을 제외한 2500원을 대학이 지원해야 하는데, 15년째 등록금이 동결돼 자금난을 겪는 대학 사정상 지속해서 재정을 투입하긴 쉽지 않다. 세종대학교 관계자는 “학생 수요는 많으나 아침밥에만 계속 예산을 투입할 순 없어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이화여대 재학생 정모(22)씨는 “천원의 아침밥 덕분에 아침을 챙겨 먹을 수 있게 되어 좋지만, 사실 내가 낸 등록금에서 나오는 돈 아니겠냐”며 “학교 복지사업에 정부는 생색만 내는 느낌이라 아쉽다”고 전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학교 재정 상황이 천차만별이다 보니 같은 ‘천원의 아침밥’임에도 대학 형편에 따라 메뉴도 크게 갈린다. 동문 후원금이나 교비가 비교적 여유로운 학교들은 인원 제한 없이, 뷔페식으로 아침밥을 제공한다. 2015년 학내 기금으로 ‘천원의 식사’를 시작했던 서울대는 2016년부터 조식, 중식, 석식을 모두 1000원에 먹을 수 있고, 전국 사립대학 기부금 1·3위인 고려대·성균관대는 매일 아침 학생 수 제한 없이 전교생에게 1000원의 아침밥을 선보인다. 메뉴 구성도 고기가 포함된 삼첩반상으로 5000원을 내고 먹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성균관대 관계자는 “정부 지원 전부터 동문 발전기금으로 1000원의 아침밥을 지원하고 있었다”며 “꾸준히 모금을 받고 있기 때문에 재정에 어려움은 없다”고 답했다.

반면 식당 인력이 부족하거나 예산이 빠듯한 학교는 인원을 한정해 볶음밥, 떡, 빵, 국수 등 간편식 위주의 음식을 제공한다. 대학 재정이나 기부금에 따라 학식판 ‘빈익빈 부익부’가 벌어지는 셈이다. 지난 25일 찾은 배화여대에서는 이날 천원의 아침밥 메뉴로 주먹 크기의 백설기와 팩 음료수를 제공했다. 오전 8시30분부터 1시간 30분동안 70명을 대상으로 배식이 이뤄지지만, 이날 아침밥은 배식 23분 만에 매진됐다. 배화여대 21학번 A씨는 “간단한 음식을 저렴하게 먹을 수 있어서 좋다”면서도 “규모가 큰 학교에 다니는 친구와 비교하면 메뉴 선택 폭이 작고, 배식 인원이 많지 않아 아쉬운 면이 있다”고 답했다. 이날 식권 자판기 앞에서 매진을 확인한 학생들은 끼니를 때우기 위해 매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난 7일 사업 참여 대학이 대폭 늘어나 일부 지자체가 사업 지원에 뛰어들면서 학교 간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서울 성북구와 서울시는 지난 4월 정부 재정지원 계획과 별도로 ‘1식 1000원’을 추가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 경우 성북구에 위치한 대학은 학생 부담금 1000원에 정부(1000원), 서울시(1000원), 성북구(1000원) 지원이 합쳐져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 성신여대 관계자는 “정부뿐만 아니라 지자체(성북구)에서도 사업을 지원하고 있어 사업 진행에 큰 부담은 없다”고 답했다. 하지만 재정지원 여력이 부족한 지역에 위치한 대학은 이러한 혜택을 꿈도 꾸지 못한다. 경상남도의 한 대학 관계자는 “학생들 만족도가 높아 규모를 확대하고 싶지만, 대학 부담이 커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아침밥 사업보다 재정 투입이 시급한 분야들이 많은데, 소모성 사업에만 돈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답했다.

무엇보다 너도나도 아침밥 지원에만 몰두하다 정작 대학에 시급한 현안 해결은 뒷전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올해 물가가 대폭 상승하면서 대학은 냉방비용 절약, 교수연봉 동결 등으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박호정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는 “식비가 올라 학생들의 부담이 커진 건 맞지만, 학생들에게 정말 필요한 건 질 좋은 교육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라며 “소모성 사업에 재정을 지출하느라 교육의 질이 낮아지면 궁극적으로 학생들에게 악영향이 간다는 것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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