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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소쿠리 사태…감사원·선관위 '특혜 채용' 정면 충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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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특혜채용 논란으로 사무총장과 사무차장이 동시에 면직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일 긴급회의를 열고 감사원의 감사를 거부하기로 결정했다. 감사원은 즉각 “법에 따라 엄중히 대처하겠다”며 고발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중앙선관위는 이날 오전 경기 과천 정부청사에서 노태악 선거관리위원장 주재 긴급 위원회의를 열고 만장일치로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선관위 중앙위원회는 위원장과 상임위원, 7명의 위원 등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대통령이 3인을 임명하고, 국회가 3인을 선출하며, 대법원장이 3인을 지정하는데 현재 국민의힘 몫으로 선출된 남래진·조병현 위원 2명을 제외하면 7명 모두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인사들이다. 김필곤 상임위원과 이승택·정은숙 위원은 문 전 대통령이 임명했고, 노태악 위원장과 김창보·박순영 위원은 김명수 대법원장 지명 몫이다. 조성대 위원도 2021년 민주당 추천 인사로 선출됐다.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2일 오전 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열린 선관위원회의에 참석해 있다.  이날 회의에서 선관위는 최근 불거진 선관위 고위공무원들의 가족 특혜채용 논란과 관련해 감사원의 감사를 거부하기로 결정했다. 뉴스1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2일 오전 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열린 선관위원회의에 참석해 있다. 이날 회의에서 선관위는 최근 불거진 선관위 고위공무원들의 가족 특혜채용 논란과 관련해 감사원의 감사를 거부하기로 결정했다. 뉴스1

선관위는 이번 결정에 대해 “국가기관 간 견제와 균형으로 선관위가 직무감찰을 받지 않았던 것이 헌법적 관행”이라며 “국회의 국정조사, 국민권익위원회의 조사 및 수사기관의 수사에는 성실히 임하겠다”고 밝혔다.

선관위는 그 근거로 감사원의 직무감찰 대상을 ‘행정기관’으로 한정한 헌법 제97조를 들었다. 선관위가 행정기관이 아닌 독립된 헌법기관인 만큼 감사원의 감사대상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또 선관위의 인사감사는 선관위 사무총장이 한다는 국가공무원법 제17조제2항도 근거로 제시했다.

선관위는 이날 회의에서 자녀 특혜 채용 정황으로 사퇴한 박찬진 전 사무총장의 후임 인선을 위한 검증위원회 설치와 의혹이 제기된 고위직 4명에 대한 수사 의뢰도 결정했다. 또, 가족채용 전수조사 범위를 4촌 이내 친족까지 확대해 이달 중 조사를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감사원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감사원은 보도자료를 내고 “감사원법에 규정된 정당한 감사활동을 거부하거나 방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감사원법 제51조의 규정에 따라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중하게 대처해 나갈 것”이라며 고발 가능성을 열어뒀다.

감사원은 감찰 제외 대상을 규정한 감사원법 제24조에 선관위가 포함돼 있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감사원의 감사 제외 대상은 국회·법원·헌법재판소만 명시돼있다. 지난 1994년 감사원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논의되는 과정에서 선관위는 행정기관의 성격이 강하다며 직무감찰 제외 대상에서 빠졌다고 한다. 감사원은 또, 내부 인사감사를 진행해야 할 사무총장(장관급)과 사무차장(차관급)이 모두 자녀 특혜 채용 의혹으로 면직된 것도 감사를 진행해야 할 이유라고 강조한다.

두 기관이 정면 대결하면서 지난해 대선 당시 ‘소쿠리 투표’ 논란으로 불거졌던 선관위와 감사원의 충돌이 재연되는 분위기다. 선관위는 지난 대선 당시 코로나19 확진자를 대상으로 한 사전투표에서 투표용지를 소쿠리·라면박스 등에 담아 수거하고 이미 기표된 용지를 나눠주는 등 부실한 관리로 도마 위에 올랐다. 당시에도 감사원이 관련 자료제출을 요구하며 감사에 나섰지만, 선관위는 같은 이유로 감사를 거부했다.

이만희(가운데) 의원을 비롯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달 23일 오전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항의 방문해 박찬진 사무총장과 대화하고 있다. 뉴스1

이만희(가운데) 의원을 비롯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달 23일 오전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항의 방문해 박찬진 사무총장과 대화하고 있다. 뉴스1

선관위의 결정에 여권도 반발하고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오후 “선관위가 감사를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고 할 권한 자체가 없다”며 “터무니없는 행동을 즉각 중단해 줄 것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도 이날 오전 원내대책회의에서 “감사원법조차 오독해 조사기관을 ‘쇼핑’하듯 고르는 것은 일말의 반성도 없이 국민을 무시하는 오만”이라고 지적했다. 당 관계자는 “권익위는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전현희 전 위원이 위원장으로 있고, 국회 국정감사도 169석을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의 입김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결국 내 편에게만 감사를 받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가족 채용 관련 조사가 확대되면서 추가 의심 사례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정봉민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선관위 전수조사 결과 인천시선관위 2명, 충북도선관위 1명, 충남도선관위 1명 등 총 4명의 퇴직 공무원 자녀가 각각 부친이 근무하는 광역 시도선관위에 경력으로 채용된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이들이 채용될 당시 부친은 모두 시도선관위 4급 공무원으로, 과장급은 통상 근무지를 변경하지 않기 때문에 재임 당시 자녀가 채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정 의원은 주장했다. 또 강원선관위 박모 사무처장(2급 이사관)의 친동생이 경기 고양시청에서 근무하다 경기 고양선관위에 채용된 뒤, 1년도 안 돼 초고속 승진한 사실도 알려지며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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