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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천년은 암흑기? 사라진 고대 고전들 어떻게 살아났나[BO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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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지도
바이얼릿 몰러 지음
김승진 옮김
마농지

흔히 중세를 ‘잃어버린 1000년’이라고들 한다. 중세를 지배한 기독교문화가, 서양 문명의 원형을 제시했던 찬란한 고대 그리스로마문화를 집어삼킨 암흑시대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반론도 많기는 하지만 중세가 그리스로마문화의 유산들을 방치하거나 때로는 불살라 버린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서 그 오랜 세월 동안 파묻혀 있다고 생각됐던 유클리드의 『원론』(수학의 보편 원리 설명),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천문학) 그리고 갈레노스의 의학 저술 등 고대 그리스로마의 고전들이 되살아날 수 있었을까.

현전하는 것 중 가장 오래된 유클리드 '원론'의 일부. 서기 100년쯤에 제작된 것으로, 이집트 유적지에서 다른 파피루스 문서 조각들과 함께 발굴됐다. [사진 마농지]

현전하는 것 중 가장 오래된 유클리드 '원론'의 일부. 서기 100년쯤에 제작된 것으로, 이집트 유적지에서 다른 파피루스 문서 조각들과 함께 발굴됐다. [사진 마농지]

『지식의 지도』(원제 The Map of Knowledge)는 중세 지식의 허브였던 알렉산드리아·바그다드·코르도바·톨레도·살레르노·팔레르모·베네치아에서 르네상스의 동력이 됐던 고전들이 재발견되고 확산하는 여정을 추적했다. 지성사를 연구한 영국의 역사학자 바이얼릿 몰러가 지은 이 책은 중세 1000년 동안의 ‘책과 지식의 역사’이며 ‘과학과 문화의 지리학’이다.

 중세 초기인 서기 500년께 기독교는 토착종교, 토착신앙 등 이교 세력을 압도했다. 기독교는 속성상 이교일 수밖에 없는 고대 그리스로마의 철학, 과학, 문학을 파괴하거나 동화시키려 했다. 아테네 학문의 전당인 플라톤 아카데메이아는 폐쇄됐다. 유클리드, 프톨레마이오스, 갈레노스가 학문을 연구하고 대작들을 집필했던 고대 세계 지식 중심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파피루스 두루마리 문서들도 공격목표가 됐다.

 유럽이 이렇게 암흑의 중세를 보내는 동안 이슬람제국은 한때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정복했던 영토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됐다. 영토 내 비무슬림 거주자들에게도 관용정책을 펼쳤던 아바스왕조의 개방도시 바그다드는 인종, 언어, 종교를 뛰어넘어 당대의 모든 지식인을 자석처럼 끌어들이는 학문의 전당이었다. 문화의 교류가 자유롭게 이루어지면서 모든 종류의 지식이 폭발적으로 발달했다.

기원후 2세기의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가 집필한 '알마게스트'의 14세기 아랍어본. [사진 마농지]

기원후 2세기의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가 집필한 '알마게스트'의 14세기 아랍어본. [사진 마농지]

 고대 서적들은 아랍어 등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다양한 문화권에 지식이 도달할 수 있었다. 당연히 고대의 보물들인 『원론』과 『알마게스트』, 갈레노스의 의학 문헌도 번역돼 이슬람권 전역으로 전파됐다. 뿐만 아니라 페르시아 출신의 수학자 무함마드 이븐 무사 알 콰리즈미는 『키타브 알 제브르(대수학에 관한 서)』라는 책을 통해 알고리즘과 대수학의 개념과 체계를 정립하기도 했다.

 바그다드는 1258년 칭기즈 칸의 손자 훌라구 칸에게 멸망해 황금기가 끝났지만, 바그다드 학자들의 명성은 널리 퍼져 많은 곳에 영향을 미쳤다. 학문을 후원하는 전통은 카이로, 모술, 바스라, 다마스쿠스, 쿠파, 알레포, 트리폴리, 부하라, 시라즈 등에서도 유행처럼 모방됐고 이들 도시에서도 거대한 도서관이 번성했다.

 스페인 남부 코르도바는 아바스왕조와의 전쟁에서 몰살 직전까지 갔던, 같은 이슬람 우마이야왕조의 명맥이 이어진 곳으로 새로운 학문의 축이 됐다. 이베리아반도 전역에서 야심 있는 젊은 인재들이 라흐만 3세 궁정으로 몰려들었다. 왕조의 전폭적인 후원 아래 여러 세대의 학자들이 유클리드, 프톨레마이오스, 갈레노스 등 고대 학자들의 저술을 연구하고 비판하고 향상시켰다.

 코르도바에서 북쪽으로 300㎞ 떨어진 무슬림권의 스페인 변경 도시 톨레도는 1085년 기독교도에 의해 재정복됐다. 무슬림 시절의 도서관들에는 그리스-아랍의 과학 문헌이 풍부하게 보관되어 있었다. 12세기 중반 유럽 학자들은 중세 암흑기에도 이곳에서 잘 보존된 고전들을 연구하고 라틴어로 옮기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출신 제라르도는 톨레도에 들어와서 『원론』 『알마게스트』와 갈레노스의 의학 저술 등 광대한 양의 고대 서적을 라틴어로 번역했다. 톨레도는 그리스-아랍문화와 라틴유럽문화를 잇는 다리였다.

12세기 살레르노의 외과의사가 집필한 '외과학'에 수록된 삽화. 윗줄은 그리스도의 삶을 나타내는 그림이, 아래쪽에는 다양한 질병이나 부상을 처방하고 치료하는 그림이 실려 있다. [사진 마농지]

12세기 살레르노의 외과의사가 집필한 '외과학'에 수록된 삽화. 윗줄은 그리스도의 삶을 나타내는 그림이, 아래쪽에는 다양한 질병이나 부상을 처방하고 치료하는 그림이 실려 있다. [사진 마농지]

 이탈리아 남부의 살레르노에서는 주로 갈레노스에 기초한 아랍어 의학 문헌들이 라틴어로 번역됐다. 시칠리아의 팔레르모에서는 갈레노스와 유클리드, 프톨레마이오스의 책들이 그리스어 원전을 저본으로 라틴어로 번역됐다.

 아드리아해 석호에 건설된 이탈리아 도시 베네치아에는 그리스인 정착촌이 있었다. 많은 그리스인이 베네치아로 들어오면서 그리스 문화와 그리스어를 함께 들여왔다. 그리스어 원전을 바탕으로 고전 문헌에 대해 더 나은 번역본들이 생산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15세기 후반 베네치아에서는 그동안 필사본으로 유통되던 저술들이 처음으로 인쇄된다. 베네치아에서 생산된 인쇄본 책은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로, 또 독일, 프랑스, 스페인, 영국으로 공급됐다.

 지금의 서양문화, 나아가 인류 전체 문화의 기틀이 된 고대 그리스로마의 고전들은 포용과 융합, 진취성이 강한 중세 이슬람 도시들에서, 그리고 똑같은 특성을 가진 스페인·이탈리아 도시들에서 부활했다. 『지식의 지도』는 이러한 사실을 명징하게 증명한다. 방대한 자료수집과 해박한 세계사로 무장된 단단한 책이다. ‘지식의 보고’를 탐험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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