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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막·소쿠리·주술…"野 편드는 선관위" 與 뇌리 박힌 세 장면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3월 대선 당시 코로나19 확진자와 격리자 투표용지를 플라스틱 소쿠리에 모아놓은 모습. 인스타그램

지난해 3월 대선 당시 코로나19 확진자와 격리자 투표용지를 플라스틱 소쿠리에 모아놓은 모습. 인스타그램

자녀 특혜 채용 논란으로 창설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노태악 대법관)에 대해 여권이 공세의 고삐를 더 바짝 죄고 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일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당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선관위는 헌법기관이라는 조직의 특수성을 특혜와 특권의 철옹성으로 삼아왔다”며 “사법당국의 조사와 별도로 국회 국정조사를 통해 특혜 채용의 근본적인 이유를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 노태악 위원장이 논란의 당사자인 박찬진 사무총장 등을 수사 의뢰하기로 하는 등 자구안을 발표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여권 시각이다.

그런 여권의 판단 이면에는 “선관위가 중립성을 잃었다”는 인식이 깊게 깔려있다. 국민의힘 지도부 소속 의원은 1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그간 선관위는 대놓고 더불어민주당 편을 들었다”며 “우리 당 의원들 뇌리에 박힌 장면이 한둘이 아니다”고 했다.

①여야에 다른 잣대 들이민 ‘예산 확보’ 현수막

이번 사태가 있기 전 여권에서 선관위를 가장 적극적으로 비판한 인물은 친윤 핵심 장제원 의원이다. 그는 최근까지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을 맡는 동안 선관위 관련 각종 의혹을 수차례 제기했다. 장 의원은 지난달 16일 행안위 긴급 현안질의에서 박찬진 총장을 향해 “선관위 최고위층 자녀들은 왜 모두 선관위에 취직하느냐. 이러면 선관위가 ‘패밀리 비즈니스’라는 의혹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30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으로 선출된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 본회의에서 당선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30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으로 선출된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 본회의에서 당선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여권에 따르면 장 의원은 지역구(부산 사상)에서 선관위 행태의 문제점을 몸소 체험한 계기가 있었다. 올해 초 장 의원은 지역구에 “예산 확보”라는 문구가 쓰인 현수막을 여러 장 붙였다. 그런데 선관위가 “‘확보’가 아닌 ‘확정’이라고 쓰시라”고 안내하면서 수백만원을 들여 현수막을 교체해야만 했다. 예산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고 ‘확보’라는 표현을 쓰면 공직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유권 해석을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선관위는 배재정 민주당 부산 사상 지역위원장이 붙인 비슷한 내용의 현수막에는 별다른 문제를 삼지 않았다고 한다. 국민의힘 초선 의원은 “장 의원 경우처럼 선관위가 이중잣대를 들이미는 건 흔한 일”이라며 “문구 하나, 토씨 하나로 우리 당 의원을 괴롭히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토로했다.

②소쿠리 투표 참사에도 외려 ‘갑질 마인드’ 

지난해 3월 대선 사전투표 과정에서 발생한 “소쿠리 투표” 문제를 지적할 때 선관위 직원들이 보였던 태도도 국민의힘이 선관위의 편향성을 주장하는 주요 이유다. 당시 선관위는 코로나19 확진자와 격리자의 투표 용지 일부를 투표함이 아닌 소쿠리 등에 담아 여론의 강한 질타를 받았다.

지난해 3월 5일 밤 '소쿠리 투표' 관련해 선관위 과천청사를 항의방문 중인 국민의힘 의원들. 왼쪽부터 유경준·이영·김웅·김은혜 의원. 국민의힘

지난해 3월 5일 밤 '소쿠리 투표' 관련해 선관위 과천청사를 항의방문 중인 국민의힘 의원들. 왼쪽부터 유경준·이영·김웅·김은혜 의원. 국민의힘

당시 김웅 국민의힘 의원 등은 사전투표 둘째날인 지난해 3월 5일 밤 10시경 선관위 과천 청사를 항의 방문했는데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김 의원은 김세환 당시 사무총장과의 면담을 위해 복도에 대기하고 있었는데 일부 선관위 직원들이 수군대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김 의원은 “젊은 직원들이 등 뒤에서 ‘쟤 지역구 어디야’, ‘송파갑이지? 다음 선거 때 날려버리자’고 하는 말을 들었다”며 “말단 직원까지 ‘갑질 마인드’를 가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했다.

선관위는 소쿠리 투표 논란에도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구로 감사원의 직무감찰 대상이 아니다”며 감사원 감사를 거부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조직이 고인 물에서 썩은 물이 됐다”고 지적했다.

③‘주술·굿당’은 되고 ‘내로남불’은 안 된다는 선관위 

선관위가 지난 대선 당시 현수막 사용 가능 문구에 ‘주술·굿당·신천지’라는 표현을 허용한 점도 국민의힘이 문제를 제기하는 지점이다. 당시 선관위는 “청와대를 굿당으로 만들 순 없습니다”, “술과 주술에 빠진 대통령을 원하십니까”, “신천지 비호세력에게 나라를 맡길 수는 없습니다” 등 국민의힘 대선 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을 주술과 연결지으려는 민주당의 현수막 문구를 허용했다.

그런 선관위는 2020년 총선과 2021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때 ‘내로남불·무능·위선’ 등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 국민의힘의 현수막 문구는 사용을 불허했다. “특정 정당을 떠올리게 한다”는 이유였다. 이 과정을 모두 지켜본 국민의힘은 “선관위의 이중잣대”라고 비판했다.

2021년 12월 서울 광화문역 인근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부인 김건희 씨를 겨냥한 현수막이 내걸려있다. 연합뉴스

2021년 12월 서울 광화문역 인근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부인 김건희 씨를 겨냥한 현수막이 내걸려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관계자는 “선관위에 대해 ‘심판이 왜 선수로 뛰느냐’는 당내 불만이 상당하다”며 “내년 총선에서 또 다시 편파적으로 나올 수 있어 그전에 조직을 완전히 탈바꿈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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