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펜 세리모니가 파문 일으켰다…테니스 황제 징계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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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 출신 노박 조코비치가 코소보 충돌에 관한 메시지를 내놔 스포츠 선수의 정치 중립성 논란에 휩싸였다. AP=연합뉴스

세르비아 출신 노박 조코비치가 코소보 충돌에 관한 메시지를 내놔 스포츠 선수의 정치 중립성 논란에 휩싸였다. AP=연합뉴스

테니스 스타 노박 조코비치(36)가 경기 직후 세르비아·코소보 충돌 관련해 목소리를 냈다가 논란에 휩싸였다. 코소반 올림픽위원회(KOC)는 스포츠를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해선 안 된다며 국제 올림픽위원회(IOC)에 징계를 촉구했다.

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조코비치가 최근 발칸 반도에서 발생한 세르비아-알바니아 간 분쟁 중심에 섰다"고 보도했다. 조코비치는 지난달 29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23 프랑스오픈 첫 경기에서 알렉산더 코바세비치(미국)를 꺾고 승리했다. 그는 경기 직후 중계 카메라에 '코소보는 세르비아의 심장. 폭력을 멈춰주세요'란 문구를 썼다. 선수가 카메라 렌즈 앞에 강화유리 등을 대고 마커 펜으로 서명하는세레모니는 2000년대부터 이어져 온 관례다.

지난달 29일 노박 조코비치가 경기 뒤 카메라 렌즈에 '코소보는 세르비아의 심장. 폭력을 멈춰달라'는 문장을 쓰는 모습. 사진 NBC 뉴스 캡처

지난달 29일 노박 조코비치가 경기 뒤 카메라 렌즈에 '코소보는 세르비아의 심장. 폭력을 멈춰달라'는 문장을 쓰는 모습. 사진 NBC 뉴스 캡처

조코비치의 문장은 언뜻 단순한 충돌 반대 메시지로 보였다. 문제는 '코소보는 세르비아의 심장'이란 문구였다. 코소보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 뉘앙스가 담겼기 때문이다. 주민 대다수가 알바니아계인 코소보는 2008년 독립 선언을 했지만, 세르비아 헌법은 코소보를 여전히 자국 영토로 규정하고 있다. 코소보 북부에 몰려 사는 세르비아계 주민들도 코소보를 분리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와 미국·영국·프랑스·일본 등은 코소보를 독립국으로 인정하지만, 세르비아와 러시아·중국·이라크·시리아 등은 이에 반대한다.

이번 충돌의 시발점은 지난 4월 코소보 정부가 실시한 북부지역 지방선거였다. 세르비아계 주민들은 투표를 거부했고, 그 결과 즈베찬 지역에선 알바니아계 인사가 약 100표만으로 시장에 당선됐다. 세르비아계 주민은 선거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며 시청 앞 출근 저지 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평화유지군(KFOR)과 세르비아계 시위대가 충돌했다.

코소보 서부 도시 라호베츠에 그려져있던 노박 조코비치의 벽화가 지난달 31일 훼손됐다. AFP=연합뉴스

코소보 서부 도시 라호베츠에 그려져있던 노박 조코비치의 벽화가 지난달 31일 훼손됐다. AFP=연합뉴스

조코비치는 경기 뒤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메시지에 관해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코소보 출신임을 언급하며, "세르비아 전체를 위해 일할 필요성을 느꼈다"며 "코소보와 세르비아 국민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지지와 단결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CNN은 "조코비치가 '세르비아 전체'를 언급한 것은 여전히 코소보를 세르비아의 부분으로 간주하고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조코비치의 메시지가 나온 직후 KOC는 즉각 반발했다. KOC는 "정치적 중립이라는 IOC 헌장의 기본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며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의 선전을 조장하고 코소보·세르비아 두 나라 간 긴장과 폭력 수준을 높였다"고 비판했다. 지난달 31일, 아멜리 우데아 카스테라 프랑스 스포츠·올림픽부 장관도 "스포츠가 정치 플랫폼으로 사용될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며 "국제테니스연맹(ITF)가 조코비치에 대한 징계위를 열고 문제를 조사할 것을 정중히 촉구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아멜리 우데아 카스테라 프랑스 스포츠부 장관은 "스포츠가 정치 플랫폼으로 사용될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AFP=연합뉴스

아멜리 우데아 카스테라 프랑스 스포츠부 장관은 "스포츠가 정치 플랫폼으로 사용될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AFP=연합뉴스

외신은 조코비치 발언이 최근 코소보 사태에 관심을 불러일으켰다고 분석했다. NYT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세계의 관심을 끌면서 코소보의 긴장이 얼마나 고조됐는지 발칸반도 밖에선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며 "그의 발언은 영향력이 컸다"고 전했다.

조코비치는 앞서도 여러 차례 구설에 올랐다. 지난 1월엔 아버지 스르단 조코비치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얼굴이 그려진 러시아 국기를 들고 "러시아 만세"라고 외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에 휘말렸다. 지난해엔 경기 참석차 호주에 입국했다가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하지 않아 추방되기도 했다.

2003년부터 프로선수로 활동한 조코비치는 메이저대회 남자 단식 통산 우승 순위 1위다. 이번 프랑스오픈 대회를 제패할 경우 또 한 번 최다 우승 기록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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