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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월급 280만원, 부모 연금 400만원…"용돈 받아야 할 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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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인천의 한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정모(30)씨는 은퇴한 부모보다 소득이 적다. 그는 월급으로 280만원가량을 받는데, 공무원으로 30여년을 일하다 퇴직한 정씨의 아버지와 국민연금을 받는 어머니의 연금소득을 합치면 400만원이 넘는다. 그는 “오피스텔에 전세로 살고 있어 이자(45만원)를 내고 하다 보면 남는 게 없다”며 “부모님에게 용돈을 드리기는커녕 용돈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고령층에 따라잡히고 있는 청년 소득

20~39세에 해당하는 MZ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상대적으로 가난해지고 있다. 자산에 이어 소득까지 상대적 빈곤이 번졌다. '부모보다 가난한 첫 세대'라는 MZ의 울분은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1일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분석 결과 올해 1분기(1~3월) 세대주가 39세 이하인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487만원이었다. 같은 분기 60세 이상 세대주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355만원이다. 두 세대의 소득 차이는 1.37배였는데, 이는 역대 가장 적은 격차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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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이상 가구의 소득을 집계하기 시작한 첫해인 2006년을 보면 1분기 기준 39세 이하 세대주 가구는 60세 이상 세대주 가구보다 1.81배를 더 벌었다. 60세 이상은 초고령층까지 모두 포함하는 만큼 은퇴자가 많아 월평균 소득액이 다른 세대보다 적은 게 일반적이다. 2006년 1분기 기준 40대는 39세 이하보다 1.14배, 50대는 1.07배 월평균 소득이 더 많았다. 올해 1분기엔 이 차이가 40대에서 1.37배, 50대 1.27배로 늘었다. 2006년과 2023년의 같은 39세 이하끼리 비교하면 지금 세대가 상대적으로 낮은 소득 수준에 위치해 구매력이 떨어진다는 풀이가 나온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소득 증가율, 60세 이상이 MZ의 2배↑

고령층의 소득이 가파르게 늘어나는 동안 청년층의 소득 증가율은 둔화했다. 가계동향조사는 2019년 조사 방식을 바꿔 2019년 이전과 이후를 같은 선에서 비교하기 어렵다. 그래서 2019년과 10년 전인 2009년을 비교하면 39세 이하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분기 기준 25.7%(339만→426만원) 늘었다. 같은 기간 60세 이상 세대주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55만원에서 240만원으로 54.8% 늘었다. 이 기간 40대 가구의 월평균 소득 증가율은 41%, 50대는 52%를 기록했다.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 종각역 태양의 정원 광장에서 열린 '2023 종로구 온오프 청년취업박람회'를 찾은 취업준비생들이 참가업체 부스를 돌며 구직 상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 종각역 태양의 정원 광장에서 열린 '2023 종로구 온오프 청년취업박람회'를 찾은 취업준비생들이 참가업체 부스를 돌며 구직 상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9년 이후엔 청년층의 상대적 소득증가율 둔화가 더 두드러진다. 2019년부터 4년간 39세 이하의 월평균 소득이 15.1% 늘어나는 동안 60세 이상은 32.5%, 40대(19.6%), 50대(19.2%) 등은 더 가파르게 증가해서다. 소득 증가세가 둔화하면서 MZ세대는 고령층보다 지출을 늘리지 못 했다. 이 기간 39세 이하와 60세 이상의 소비지출 증가율은 각각 9.9%(18만원)와 22.6%(38만원)를 기록했다.

“소비 줄이자” 거지방 유행한다

원인은 복합적이다. 두둑한 월급을 주는 양질의 청년 일자리는 감소세다. 그나마 생기는 일자리는 급여가 박한 계약직·임시직이다. 취직해도 부모 세대와 달리 재산 증식이 힘들다. 1976년부터 20년간 재테크 필수 아이템이었던 재형저축은 금리가 한때 연 20%를 넘었다. 부동산 투자도 ‘막차’를 한참 전에 놓쳤다.

MZ세대를 중심으로 ‘거지방’이 유행하는 것도 청년층의 이런 상대적 빈곤이 원인이란 풀이가 나온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거지방을 검색하면 수백개의 익명 단체대화방이 나온다. 최대 참여 인원인 1500명을 모두 채운 대화방이 여러 개일 정도다. 20대 거지방으로 이름 붙은 오픈채팅방엔 1995년생 이후 출생자만 들어갈 수 있다. 1일 한 거지방 회원이 “디퓨저를 샀다”고 말하자 “심각한 사치다”, “환불하라”는 글이 줄을 이었다.

1일 카카오톡 오픈채팅 '거지방'에서의 대화. 대화방 참여자가 디퓨저를 샀다고 하자 환불하라는 반응이 나왔다. [카카오톡 캡처]

1일 카카오톡 오픈채팅 '거지방'에서의 대화. 대화방 참여자가 디퓨저를 샀다고 하자 환불하라는 반응이 나왔다. [카카오톡 캡처]

한국은행이 최근 발간한 'MZ세대의 현황과 특징‘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MZ세대(24~39세)의 근로소득은 2000년 동일 연령대와 비교해 1.4배 많아졌다. 이 기간 근로소득 증가율은 X세대(1.5배), 베이비부머세대(1.6배)보다 낮았다. 최영준 한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2000년 대비 2018년 MZ세대의 금융자산은 거의 증가하지 않았지만, 총부채는 4.3배 늘어 X세대(2.4배), 베이비부머세대(1.8배)를 크게 웃돌았다고 분석했다.

최 연구위원은 “1997년 외환위기 이전까지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0%에 육박했다가 그 이후 반 토막 났다. 이후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또 그 절반이 된다”며 “성장률이 떨어지다 보니 일자리나 임금 수준이 모두 줄었고, 청년기에 경제위기를 겪은 세대는 임금 수준이 꾸준히 낮게 형성되는 특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소득이 낮다 보니 MZ세대는 소비도 많이 하지 않는 특징이 있는데 내수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녀가 더 가난할 것” 응답, 60% 넘어

사상 처음으로 부모보다 가난한 자녀세대가 점차 현실화하고 있다는 건 인식에서도 드러난다. 글로벌 여론조사기관인 퓨리서치센터의 지난해 조사 결과 한국인의 60%가 “자녀세대는 지금보다 더 가난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2013년 이뤄진 조사에선 같은 응답 비중이 37%였는데 꾸준히 증가하면서 10년 새 부정적 응답이 크게 늘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월급을 모아 집을 샀던 부모세대와는 달리 월급보다 집값과 전셋값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내 집 마련엔 ‘꿈’이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진짜 문제는 자산 때문에 발생한다”며 “소득 증가가 자산가격 상승 속도를 따라가지 못 하면 축적한 자산이 없는 청년층은 소득을 모두 임대료로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경제학회 회장을 지낸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특훈 교수는 “1인당 GDP로 따졌을 때 부모보다 가난해지진 않겠지만, 소득 수준이 기대에는 훨씬 못 미칠 수밖에 없다”며 “이전 50년은 실질적인 소득이 30배 증가한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기간인데 앞으로 50년은 2배 정도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청년층의 낮은 임금은 결혼·출산 저하로 연결되고, 이는 경제성장률 저하로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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