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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동호의 시시각각

위선적 정책들의 비극적 결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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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김동호 경제에디터

김동호 경제에디터

MZ세대는 기성세대와는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 경제 규모 10위 국가에 살고 있는데 무슨 걱정이 있을까 싶지만 취업은 물론 평생 집 한 채 마련이 어려운 세대다. 단군 이래 처음으로 부모보다 더 가난해질 가능성이 있다. 이들을 결정적으로 힘들게 하는 것은 자칭 진보 진영에서 쏟아내는 정책들이다. 우선 비정규직법으로 불리는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에 관한 법’부터 보자. 노무현 정부에서 입안해 2007년 7월부터 시행했으니 어느덧 15년이 흘렀다.

명분은 그럴싸했다. 기업이 근로자를 비정규직으로 계속 쓰는 관행을 끊기 위해 2년이 초과하면 정규직 고용을 의무화했다. 그 결과는 어떤가. 이 법은 청년에게 평생 비정규직이란 굴레를 씌우기 십상이다. 기업은 2년만 되면 비정규직을 칼같이 해고하기 시작했다. 단군 이래 가장 똑똑한 청년들이 엊그제 입사한 것 같은데 “2년 만료라서 내일부터 안 나온다”면서 조용히 사라진다. 어느 회사에서나 현실이고 영화·드라마에서도 익숙한 설정이다.

정치논리로 만든 불량 정책 양산
착한 척 전세3법, 비정규직법 등
사회적 약자 고통의 늪에 빠뜨려

인사부 직원에겐 2년 된 비정규직을 예외 없이 자르는 게 기본 업무다. 이렇게 잘린 청년은 계약직으로 전전하기 쉽다. 결국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경제적 독립도 어려워진다. 결혼이 어려워지고 출산율이 0.78로 될 수밖에 없다. 의도는 좋은 척하는 위선적 정책의 참담한 결말이다. 이런 불량 정책을 과연 정의와 공정을 핵심 가치로 삼는 진보적 정책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 엄연한 현실에도 이 법은 유지되고 있다. 처음부터 부작용이 예상됐고 문제가 심각하지만 한번 만든 법은 고치기 어렵다. 이 법이 없었다면? 일 잘하면 정규직으로 채용하기도 했던 2007년 이전의 관행이 유지됐을 터다. 이 법이 있는 한 2년마다 자르는 상황을 피하기 어렵다.

2019년 시작된 주 52시간제 역시 진보적 정책의 가면을 썼다. 반(反)시장적·반기업적 세계관을 가진 정치인들이 국민의 4%에 불과한 귀족노조와 손잡고 밀어붙였다. 기업을 세워 고용하고 월급 주는 기업인과 주류 경제학자의 의견은 외면했다. 주 52시간제는 근로자의 88%가 속한 중소기업의 목을 조르고 있다. 사람을 더 고용하면 된다고? 그럴 여력이 없으니 중소기업이다.

중소기업은 일감이 있다가도 없고 계절도 탄다. 급여는 대기업의 50%에 그친다. 결국 일감이 들어왔을 때 근로자들이 연장·야간 근로해야 수당이 늘어난다. 하지만 저녁이 있는 삶을 즐기라면서 문재인 정부는 주 52시간제를 강행했다. 그 결과 중소기업은 일손 부족에 허덕이고, 일부 근로자는 소득 보충을 위해 저녁엔 대리운전, 아침엔 배달 알바에 나선다. 윤석열 정부가 주 52시간제 손질에 나섰지만 성과가 없다. 크게 엉클어 놓은 일을 정상화하는 게 쉬울 리 없다.

최저임금도 폐해가 막대했다. 시급 1만원은 받아야 정당한 대가라면서 문재인 정부는 밀어붙였다. 자영업자들은 버티다 못해 알바 직원부터 잘랐고 그 자리엔 키오스크와 무인결제, 배달 로봇이 들어서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였던 쌀 강제매수법(양곡관리법) 개정안 역시 포퓰리즘이다. 쌀이 남아돌아 처치가 곤란한데도 쌀값이 떨어지면 정부가 국민 세금으로 사들여야 한다. 과잉생산을 유발하고 세금만 축낼 뿐이다. 국민을 위해서라며 쏟아낸 정책들의 민낯이다.

문재인 정부가 밀어붙인 전세3법 역시 국민을 고통의 늪에 빠뜨렸다. 세금폭탄으로 집값이 폭등하자 서민은 빌라로 밀려났다. 이 틈에 전세를 수백 채씩 사들였던 빌라왕들이 등장할 수 있었고, 고금리 충격으로 집값이 폭락하자 깡통전세가 속출했다. 포퓰리즘 정책의 비극적 결말이다. 타다 금지법도 마찬가지다.

이런 정책을 쏟아낸 정치 진영이 정약용이 기거하던 곳의 이름을 딴 정책포럼까지 만들었다. 생각·발언·행동·용모 네 가지를 올바로 하는 이가 거처하는 집이란 뜻의 사의재(四宜齋)다. 그 정신에 걸맞으려면 그동안 쏟아낸 정책의 참담한 결과부터 돌아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