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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석천의 컷 cut

누군가의 과거가 될 용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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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일본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에서 주인공 료타(아베 히로시)의 어깨는 늘 축 처져 있다. 한때 촉망받는 소설가였던 그가 지금은 남의 뒤나 캐고 다니는 흥신소 사설탐정이다. 그는 “소설의 소재를 취재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현실은 비루하기만 하다. 이혼한 전처에게 보내야 할 양육비를 마련하는 것도 녹록지 않다.

료타의 일과 중 하나는 전처와 중학생 아들을 지켜보는 것이다. 아들의 야구 시합을 먼발치에서 구경하다, 전처와 함께 아들을 응원하는 남자를 두고 ‘둘이 잤을까?’ 궁금해한다. 그는 미련과 집착 사이 어디쯤 서 있다. 그런 저간의 사정을 아는 흥신소 소장이 그에게 충고한다.

권석천의 컷 c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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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과거가 될 용기를 가져야 남자는 진정한 어른이 되는 거야.”

영화 속 상황과는 거리가 있지만, 바로 이 한마디를 들려주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배우자와 이혼하거나 연인과 헤어진 후에도 계속 그들의 그림자를 좇는 이들이다. 심한 경우 폭력을 휘두르는데, 최근의 끔찍한 사건들은 그 연장선에 있다. 그들이 그러는 이유는 이미 끝난 관계인데도 ‘누군가의 현재’로 남아있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나간 날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붙잡으려 안간힘을 쓰는 건 상대방뿐 아니라 자신도 괴롭히는 일이다. 유형이든, 무형이든 폭력은 사랑일 수 없다. 너무 아쉽고 가슴 저리다 해도 ‘과거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돌아설 때 우린 비로소 성숙한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바람이 있다. ‘데이트 폭력’이란 말은 쓰지 않았으면 한다. ‘데이트’는 폭력에 서사를 부여하고, 제3자가 개입하면 안 될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긴다. 피해자는 “좋아해서 지금까지 만난 거 아니냐?”는 힐난을 받기도 한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꼭 ‘데이트’란 단어로 묶어 두어야 할까. 그러지 않고도 보복범죄를 예방하는 조치는 강화할 수 있지 않을까.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