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현대자동차그룹 사옥이 있는 서울 서초구 양재나들목(IC) 근처. 염곡사거리 부근에는 장례식에서나 볼법한 만장을 연상케 하는 세로 형태의 현수막 10여 개와 가로로 된 배너형 현수막 5개가 어지럽게 걸려 있었다. 현대차그룹 사옥 맞은편에도 대형 배너형 현수막 2개가 최근 추가로 설치됐다.
현수막에는 현대차그룹 경영진을 비방하는 원색적인 표현들이 가득했다. 일부 현수막은 붉은색 글귀들이 적혀 있어 혐오스러운 느낌까지 들었다. 시각적인 혐오감은 물론 행인들의 불편도 초래한다. 교차로 곳곳에 대형 현수막이 설치된 탓에 차량의 시야까지 가리기 일쑤다. 게다가 염곡사거리 도로 중앙의 안전지대에서는 여러 명이 모이는 집회가 수시로 열린다.
사옥 주변에서 수시로 열리는 변칙 시위 탓에 대기업들이 신음하고 있다. 대표적인 건 ‘변칙 1인 시위’다. 이런 시위는 사실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규정의 허점을 악용한다. 가령 집시법상 현대차그룹 사옥 앞 현수막들은 불법이 아니다.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시위 주체는 특정인 한 사람이지만, 최근에는 다수가 참여하는 집회로 신고하고 있다고 한다. 집시법상 집회 준비물로 신고되면 내걸 수 있는 현수막 숫자에 사실상 제한이 없다. 현대차그룹 본사 주변을 시위자 한 사람이 수십 개의 배너로 뒤덮어도 현행법으론 제재할 수단이 없는 셈이다. 반면 1인 시위라면 현수막을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신고 후 지정된 게시대에만 내걸 수 있다.
집회 규제 적었던 영국도 최근 관련 법 강화
반대로 다수가 참여하는 '집회'나 '시위'임에도 '1인 시위'를 가장하기도 한다. 1인 시위는 장소에 제한 없이 다른 집회가 신고된 곳에서도 자유롭게 벌일 수 있다는 점을 파고들었다. 또 집시법 규제 대상이 아닌 만큼 별도의 사전 신고의무가 없다. 국회나 헌법재판소 인근처럼 시위가 금지된 지역에서도 가능하다. 집시법이 정해놓은 소음 제한 규정(기타 지역 기준·주간 평균 75㏈, 야간 평균 65㏈)에서도 자유롭다. 실제 지난 2012년 삼성 일반노조는 다른 집회가 신고돼 원하는 장소에서 집회를 열 수 없게 되자, 20~30m씩 간격을 두고 각자 피켓을 들고 서 있는 방식으로 시위를 강행했다. 지난해 전·현직 대통령 사저 앞에서 벌어진 시위 역시 1인 시위임을 주장한 탓에 집시법상 소음 규정을 적용받지 않았다. 익명을 원한 한 변호사는 “영국은 지난해 경찰·범죄·양형 및 법원에 관한 법률(PCSCA) 등을 통해 무분별한 1인 시위에 대한 규제와 처벌이 가능하도록 법안을 다듬었다”며 “집회 결사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다중 1인 시위’나 ‘편법 시위’처럼 법 규정의 허점을 악용한 변칙 시위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