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대대로 살아온 땅, 못 나가"…브라질 원주민 '화살시위' 격화

중앙일보

입력

브라질 아마존강 열대우림의 원주민들이 경찰에게 활을 쏘는 이른바 '화살 시위'가 최근 격화하고 있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에서 사실상 원주민을 내쫓는 법안이 최근 브라질 하원 의회를 통과하면서 집단 반발에 나선 것이다.

브라질의 과라니 원주민들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상파울루 외곽에서 원주민 보호구역을 축소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에 항의하기 위해 고속도로를 막고 있다. 이들은 전통 활을 쏘며 경찰과 대치를 이어갔다. AP=연합뉴스

브라질의 과라니 원주민들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상파울루 외곽에서 원주민 보호구역을 축소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에 항의하기 위해 고속도로를 막고 있다. 이들은 전통 활을 쏘며 경찰과 대치를 이어갔다. AP=연합뉴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브라질 하원은 전날 밤 아마존강 일대 열대우림 개발을 위해 원주민보호구역을 축소하는 내용의 법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283표대 반대 155표로 가결 처리했다. 이 법안은 1988년 현행 헌법 채택 당시 원주민이 점유하던 땅만 원주민보호구역으로 설정할 수 있단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조상 대대로 살아왔더라도, 공식적으로 토지 연고권을 주장하지 않았거나 현재 분쟁 중인 땅은 원주민보호구역으로 설정할 수 없게 된다. 한마디로 현재 원주민이 살고 있다 하더라도 새롭게 보호구역으로 설정할 수 없는 곳에선 농업, 광업, 도로 및 댐 건설 등 개발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는 의미다.

지난달 30일 브라질 상파울루 외곽의 반데이란테스 고속도로를 막고 있는 과라니 원주민 시위대가 이를 해산시키려는 경찰을 향해 돌을 던지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30일 브라질 상파울루 외곽의 반데이란테스 고속도로를 막고 있는 과라니 원주민 시위대가 이를 해산시키려는 경찰을 향해 돌을 던지고 있다. AP=연합뉴스

미 공영방송 NPR에 따르면 브라질에는 약 100만명의 원주민이 764곳의 원주민보호구역에서 살고 있는데, 이 중 300곳 이상이 정부가 허가하지 않은 비공식 보호구역이다.

원주민 인권보호단체 서바이벌인터내셔널의 사라 센커는 가디언에 "1988년 당시 정부에 의해 살고 있던 땅에서 쫓겨났거나, 아직 공식적으로 존재와 위치조차 확인되지 않은 숨은 원주민도 많다"며 "원주민보호구역 축소 법안이 발효된다면 반(反)원주민 정치인들이 '주인 없는 땅'이라며 이를 악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원주민 보호구역 경계 재설정 법안에 항의하는 브라질 원주민들이 지난달 30일 상파울로 외곽에서 타이어에 불을 질러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원주민 보호구역 경계 재설정 법안에 항의하는 브라질 원주민들이 지난달 30일 상파울로 외곽에서 타이어에 불을 질러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하원 의결 소식이 전해지자 브라질 수도 브라질리아와 최대 도시 상파울로 등 곳곳에서 원주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원주민들은 타이어에 불을 지르며 주요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경찰을 향해 화살을 쐈다. 경찰이 최루탄과 물대포로 맞대응하는 등 충돌이 격해지면서 부상자가 속출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지난 1월 취임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원주민 편을 들고 있지만, 상·하원 의회는 자이르 보우소나르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야당 세력이 여전히 다수다. 이 때문에 하원을 통과한 법안은 상원 투표에서도 무난히 통과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좌파 성향의 룰라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브라질은 원주민에게 진 빚이 많다. 전임 정권(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이 원주민에게 저지른 모든 부당함을 바로잡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상·하원 표결 이후 룰라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의회에서 재의결에 들어가면 이를 무력화할 수 있다.

브라질 원주민들이 지난달 30일 상파울로 외곽 고속도로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모습. AFP=연합뉴스

브라질 원주민들이 지난달 30일 상파울로 외곽 고속도로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모습. AFP=연합뉴스

농업단체 지지에 개발 밀어붙여 

브라질 야권이 원주민과 충돌을 감수해서라도 아마존 개발을 밀어붙이는 것은 삼림 개발을 통한 경제 효과 때문이다. 브라질은 세계 1위의 농산물 수출국으로, 전체 수출 가운데 농업 비중이 절반에 달한다.

야당 인사들은 "브라질 영토의 14%가 인구의 0.4%에 불과한 원주민들의 손에 넘어갔다. 이게 말이 되느냐"며 개발을 밀어붙이고 있다. 게다가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이 속한 우파 성향의 제1야당 자유당(PL)을 지지하는 농업단체의 입김도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원주민 출신인 셀리 자카리아바 하원의원은 하원에서 법안이 가결되자 항의의 뜻으로 붉은 염료를 손에 묻힌 채 의회 단상에 올라 "당신들(자유당 의원) 손에 원주민의 피가 묻게 될 것"이라고 항의했다.

원주민들은 이 법안이 통과되면 자신들의 생존권이 위협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마존 밀림의 파괴도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질 것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브라질 비정부기구인 기후관측소는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물러났지만, 그가 시작한 원주민 공동체와 환경에 대한 박멸은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