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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알 권리'와 '외교상 국익' 저울질… 대법, 외교부 손 들어줬다

중앙일보

입력

대법원 전경. 뉴스1

대법원 전경. 뉴스1

 국민의 알 권리와 국가의 외교적 이익 중 어떤 게 더 중요할까?

"'2015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합의' 문건 비공개 타당"

2015년 12월 우리나라가 일본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놓고 협의한 내용은 외교상 국익을 위해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정보공개법)의 예외인 ‘비공개 대상 정보’로 보는 게 맞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1일 오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소속 송기호 변호사가 외교부를 상대로 제기한 정보비공개처분 취소소송의 상고를 기각했다. 외교부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일본이 ‘강제연행’ 단어 썼나 확인하겠다, 서류 공개하라”… 외교부 거부

송 변호사는 2015년 12월 28일 이뤄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합의’가, 공개된 내용만으로는 일본이 일본군의 강제연행을 인정하고 사죄했는지 알기에 부족하다며 ‘합의에 강제연행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는지, 일본이 강제연행을 인정했는지’ 등 협의 내용에 대해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그러나 외교부는 “외교관계에 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된다”며 “정보공개법 9조에서 정한 ‘비공개 대상 정보’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비공개 결정을 내렸다.

1심 ‘알 권리가 우선’, 2심 ‘외교적 이익 해치면 안돼’

송기호 변호사가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정보 비공개 처분 취소 청구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받은 뒤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송기호 변호사가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정보 비공개 처분 취소 청구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받은 뒤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송 변호사는 이 결정을 취소해달라고 소송을 냈고, 1심을 맡은 서울행정법원 재판부는 국민의 알 권리와 국정운영의 투명성 등 정보공개로 얻는 이익이 외교적 불이익보다 더 크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되는 것이라면, 대한민국 국민은 일본 정부가 어떤 이유로 사죄 및 지원을 하는지, 그 합의 과정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됐는지 알아야 할 필요성이 크다”며 외교부의 비공개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심의 판단은 달랐다. 한일 협의과정이 담긴 문서는 정보공개법이 정하는 ‘정보공개 예외대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비공개 대상은 필요최소한으로 해야한다면서도, 이 사안은 ‘외교관계에 관한 사항으로,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라고 판단했다.

‘12‧28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합의’ 당시 사전에 한·일 양국 모두 보안유지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한 뒤 협의를 진행했고 양국 모두 관련 문서를 비공개 취급하고 있는 점도 짚었다. 재판부는 “외교관계에 관한 사항은 특히 전문적 판단을 요하므로, 정보공개 여부에 관한 외교부의 판단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협상 내용이 공개될 경우 향후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신뢰성에 흠결이 생기거나 외교활동에 어려움이 생길 수도 있다는 이유도 들었다.

대법원 “외교 협상 내용 공개는 신중”… 송기호 “사법부 책무 저버렸다” 

대법원도 2심의 결론이 맞다고 봤다. 대법원은 “12.28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합의는 ‘외교부가 군위안부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 소멸 관련 분쟁을 해결하지 않고 있는 건 위헌’이라는 2011년 헌법재판소 판결을 따른 것”이라며 “우리나라와 다른나라가 체결한 외교협정의 협상 내용을 공개하는 데에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2019년에도 한일 군사비밀보호협정(지소미아) 관련 정보를 ‘비공개 대상 정보’로 분류한 적이 있다.

2015년 일본군위안부 합의 관련 문건은 한 차례 일부 공개된 적이 있다. 2020년 사단법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이 외교부를 상대로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소송을 냈고, 1·2심 모두 일부승소한 뒤 외교부가 상고를 포기해 지난해 4건의 문서가 공개됐다. 외교부가 일본과 합의를 하는 과정에 당시 정의기억연대 상임대표였던 윤미향 의원에게 여러차례 알렸던 사실이 기록된 문건이다. 다만 이때도 법원은 외교적으로 민감한 내용이 담긴 문건은 비공개가 맞다고 보고 일부 문건에 대해서는 외교부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송기호 변호사는 선고 뒤 취재진에게 “대법원이 피해자 인권 보장이라는 사법부의 기본적인 책무를 저버렸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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