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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스타트업, 세계로 더 나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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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영태 KAIST 교수·기술경영전문대학원·기업가정신연구센터장

김영태 KAIST 교수·기술경영전문대학원·기업가정신연구센터장

역대 정부의 연평균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추세를 챗GPT에게 물어봤다. 박정희 정부 8.8%, 전두환 정부 6.1%, 노태우 정부 7.6%, 김영삼 정부 6.5%, 김대중 정부 4.5%, 노무현 정부 4.1%, 이명박 정부 3.9%, 박근혜 정부 2.9%, 문재인 정부 2.8%로 나왔다. 김세직 서울대 교수가 주장한 ‘5년 1% 포인트 하락 법칙’과 거의 일치한다.

요즘 경제 뉴스를 보면 ‘혁명적 변화가 없다면 제로 성장이나 역성장을 각오해야 한다’는 암울한 전망이 현실이 될듯하다. 어쩌다 이런 ‘성장 실종의 시대’를 맞은 것일까. 어떻게 해야 성장 정체의 늪을 벗어나 다시 성장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을까.

 ‘창업의 시대’ 한국경제 성장판
AI물결 타고 창의·민첩성 부각
글로벌 역량 확보에 주력해야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똑똑한 정부 관료가 재빠르게 선진 제도를 접목하고 부지런한 기업인들이 모방과 응용으로 세계시장을 개척해온 ‘모방형 자본주의’가 더는 통하지 않고 이제는 오히려 가장 핵심적 장애 요인이 되는 듯하다. 급격한 기술 혁신과 빠른 사회 변화로 인해 세상은 더욱 복잡해지고 불확실성이 커졌다. 그런데 국가의 인력 양성과 자원 배분 방식은 본질적 변화 없이 수십 년 전 그대로 유지해 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복잡하고 불확실성이 높은 세상에서 거래비용 절감 중심의 기존 산업 정책과 기업 정책은 한계를 드러냈다. 오늘날 전 세계는 고성장 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생태계를 조성하려는 ‘창업의 시대’로 바뀌었다. 특히 인공지능(AI) 기술 발전으로 다양한 의사결정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앞으로 경제의 스타트업화 추세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이러한 스타트업 경제는 경제 주체들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내는 비선형성, 그리고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려는 자기 조직화 과정으로부터 창발되는 변화무쌍한 새로운 질서이자 복잡계다. 복잡계는 다다익선의 논리가 통하는 복합한 체계가 아니다. 본질상 외부의 인위적 개입에 적응해 의도치 않은 부작용을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스타트업 기업가 본인들이야말로 문제 정의와 가설 검정을 통해 빠른 시행착오와 학습이란 기업가적 방법론에 능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정부의 조급한 자원 투입 정책만으로는 스타트업 생태계의 질적 성과를 도출하기 어렵다. 비근한 예로 한국의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사례를 살펴보자. Y-Combinator나 Tech stars 등 미국에 출현한 액셀러레이터는 원래 성공한 벤처기업가가 자금·경험·네트워크를 갖고 후배 스타트업을 조기에 성장시키는 프로그램이다. 그래서 ‘스타트업 공장’이라 부를 수 있다.

한국은 벤처투자촉진법에 따라 1억원 이상의 자본금과 전문 인력을 보유하면 액셀러레이터로 등록할 수 있다. 2017년 제도 도입 이후 6년여 만인 지난 2월 말 기준으로 액셀러레이터 421곳이 스타트업 5152개를 보육 중이다.

하지만 액셀러레이터와 스타트업의 외형은 급격히 증가했지만, 액셀러레이터 대부분이 글로벌 역량을 확보한 경우는 드물다. 심지어 무늬만 액셀러레이터인 것이 국내 현실이다. ‘민간 투자주도형 기술창업지원 (TIPS) 프로그램’도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는 스타트업의 육성을 지향한다. 하지만 국내 E-커머스 시장 중심의 유니콘 탄생에 기여한 것을 제외하면 뚜렷한 글로벌 성공 사례가 보이지 않는다.

커지는 불확실성이 갖는 위험 요인은 창의성과 민첩성을 발휘하면 역으로 기회 요인이 된다. 결국 빠른 변화와 높은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한 핵심적인 경쟁요인인 민첩성과 상향식 접근이 관건이다.

스타트업 생태계는 본질에서 복잡성에 대한 기민한 대응과 창의성을 의미한다. 부분을 능가하는 전체를 파악하는 시스템 사고와 함께 다양성과 시행착오를 용인하는 확률적 사고를 접목해야 한다. 그래야 조급한 정부 개입 방식에서 벗어나 장기적인 스타트업 생태계의 질적 성장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보스턴 방문은 한·미 양국의 첨단산업 혁신 클러스터끼리 협력을 통해 대한민국 스타트업이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로 진입하는 본격적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스타트업의 세계화를 위한 행보가 대한민국이 다시 성장의 시대로 가는 패러다임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영태 KAIST 교수,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기업가정신연구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