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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신현호의 법과 삶

인간은 사후에도 존엄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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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신현호 변호사·법학박사

신현호 변호사·법학박사

억울한 죽음은 없어야 한다. 죽음은 생물학적 문제가 아니라 법적 권리이다. 우리 국민 상당수는 산업재해보험·공무원연금·사학연금·상해보험·생명보험·공제조합 등에 가입돼 있다. 질병사인지 사고사인지에 따라 보험금이 몇 배 차이 난다. 자다가 숨진 채 발견된 군무원 유족은 군의관으로부터 심폐 정지를 사인으로 한 사체검안서를 발급받아 유족급여와 국가유공자지정신청을 하였으나, 심장이 멈추고 호흡이 정지된 것은 죽음의 현상일 뿐 사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부되었다. 후에 과로에 의한 급성심근경색으로 밝혀져 유족연금, 현충원 안장, 입학, 취직 등 보훈가족 예우를 받을 수 있었다.

한국 변사자 부검율 3% 그쳐
사망자 원칙적으로 부검해야
검찰·법원·유족 인식개선 필요
부검기간도 요양급여 지급을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2014년 발생한 가수 신해철 사건은 부검을 통해 소장천공·복막염·심낭천공 등 사인이 밝혀져 집도 의사에게 거액의 배상판결이 내려졌다. 2016년 증평 노파살해사건도 목 졸려 살해된 후 성폭행까지 당했는데 의사가 병사로 사체검안서를 작성하여 범죄가 은닉될 뻔했으나, 부검으로 사인이 밝혀져 범인을 붙잡을 수 있었다. 반면 2019년 가평용수폭포에서 물놀이를 가장하여 남편을 살해한 이은혜 사건은 경찰이 부검하지 않고 단순 익사사건으로 처리해서 영원히 묻힐 뻔했다.

우리나라는 연간 30만 명가량이 사망하고 있고, 향후 80만 명이 넘는 해도 있을 것이다. 법의학에서는 변사는 “사인이 명백한 병사를 제외한 자살, 교통사고, 산재사고, 타살 등 모든 외인사”라고 하고, 그 비율은 15% 전후로 추산한다. 우리나라는 연간 4만5000명 정도의 변사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되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의 부검 건수는 연간 7000~9000건으로 전체 사망자의 3% 남짓에 머물고 있다. 나머지 3만여 명의 변사자 중 범죄나 사고로 희생되었으나 단순 병사로 오진된 채 묻히는 억울한 죽음이 있다. 스웨덴은 90%, 영국은 40%, 일본은 13%의 부검이 실시되고, 심리학적 부검도 활성화되어 범죄와 자살 예방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우리나라 부검제도는 바뀌어야 한다.

부검은 사인을 정확히 밝혀 억울한 죽음을 없애고 범죄를 예방하여 인권을 보장하는 데 있다. 사인이란 “왜 사망하였는가”에 대한 진단이다. 그런데 사망진단서를 받아보면 암·폐렴·급성심근경색 등 사인 진단은 없고, “죽음의 결과와 현상”만이 기재되어 있는 경우가 흔하다. 변사임에도 수사기관조차 사인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변사 신고접수를 거부해 부검을 못 하는 경우가 있다. 경찰에서 부검영장을 신청해도 검사, 심지어는 법원에서 기각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 이유는 사망진단서가 있다는 이유이다. 때로는 부검영장이 발부되어도 유족 측의 물리적 저항으로 부검을 못 하는 사례도 있다.

이는 수사기관·법원·유족 모두의 착각 때문이다. 부검은 범죄가 의심스러울 때 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 혐의가 확실하지 않을 때 하는 것이다. 부검은 변사자의 권리이자 산 자에 대한 의무이다. 부검하지 않으면 단순변사로 종결되고, 범인은 사법질서를 무시하고 재범을 저질러 또 다른 피해를 일으키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1차적으로는 의료기관은 사인이 명백하지 않거나 범죄 의심이 있는 경우 사인 불상으로 기재하고 변사신고를 하여 부검을 받을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아동학대·노인학대·가정폭력 사망 사건은 의료인들이 가장 잘 알 수 있다.

형사소송법은 ‘변사의 의심이 있는 경우 검시하여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으나, 검사는 이를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사인이 명백하지 않는 한 부검영장을 발부받아서 강제부검을 하여야 한다. 사인이 명백하지 않음에도 변사신고를 거부하는 수사공무원에 대해서는 직무유기·증거인멸죄를 적용하여 변사자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

법원 역시 범죄혐의가 없다는 점이 확실하지 않을 경우 부검영장을 기각하여서는 아니 된다. 사체해부 및 보존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보건복지부 장관은 사인이 명백하지 아니한 시체에 대해서는 유족의 동의 없이 의무적으로 해부명령을 내리도록 하여야 한다. 국립과학연구원의 부검업무 부담이 크고, 사인을 오감정 하는 경우가 있어 대학병원 법의학교실, 연구소 등 다양한 기관에 분산시켜 과도한 업무부담과 독점의 피해를 줄여야 한다. 생존 기간만 지급되는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기준을 부검까지 확대하여 사법부검·행정부검·병리부검 등을 활성화하여야 한다.

인간은 사후에도 존엄과 가치가 보장되어야 하는 헌법상 기본권의 주체이다.

신현호 변호사·법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