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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쓰나미의 데자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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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박수련 기자 중앙일보 산업부장
박수련 IT 산업부장

박수련 IT 산업부장

#1. ‘이거 뭐하는 앱? 감을 못 잡겠다.’

서울시가 지난 1월 출시한 앱 ‘메타버스 서울’에 올라온 이용 후기다. 앱 개발·운영에 누적 24억원을 들였다고 한다. 그런데 4개월간 다운로드 수는 2만을 못 넘었고, 써본 이들의 반응은 저렇다. 민원서류 발급이나 가상 반려동물 입양 등이 가능하다는데, 둘러볼수록 이걸 왜 하나 싶다.

서울뿐만이 아니다. 그동안 전국 17개 시도가 메타버스에 다 뛰어들었다. 메타(페이스북 운영사) 같은 기술기업의 레토릭에 한국의 지방 정부들이 푹 빠졌다. 현실을 초월하는 가상세계에서의 소통, 경험, 풍요. 그런데 현실의 개선을 모색해야 할 정부가 왜 가상세계로 몰려가나. 31일 아침 ‘경계경보 소동’까지 겪고 나니 더 의문스럽다. 어디로 어떻게 대피하라고 안내 문자 하나 제대로 못 보내면서 메타버스에 왜 세금을 쓰겠다는 건지. 세수가 줄어 긴축운영해야 한다면서 말이다.

서울시가 개발해 운영 중인 ‘메타버스 서울’ 앱. [사진 서울시]

서울시가 개발해 운영 중인 ‘메타버스 서울’ 앱. [사진 서울시]

#2. ‘메타버스 지방 정부’보다 더한 무책임은 ‘코인 국회’에 있었다. 수년 전 일부 기술 창업가들이 블록체인 경제가 자본주의의 대안인 듯 바람을 잡자, 이를 서울시장 보궐선거(2021년 4월)와 대선 출마자들이 넙죽 받았다. 그때 부지런했어야 할 국회는 천하태평이었다. 블록체인 기술과는 상관없는 김치 코인들이 수년간 사기를 쳐도, 국회는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을 만들지 않았다. 가상자산 거래 수익에 세금만 유예해줬다.

이런 인기 영합주의와 게으름 뒤에는 코인 발행사들의 레토릭을 앵무새처럼 따라 읊던 거물급 정치인들이 있었다. 플랫폼으로부터 해방된 경제(프로토콜 경제)는 더 공정할 것이라며 코인 들러리 노릇 하던 그들, 지금 다 어디로 갔나. 와중에 사익 추구하느라 바빴던 ‘코인 국회의원’이 있었다는 사실은 최근에야 드러났다.

#3. 인공지능은 다를까. 빅테크 기업들이 사활을 걸고 싸우는 이 판에서 한국 기업들은 요즘 숨 가쁘게 뛰고 있다. 생존이 달린 기업으로선 당연하다. 하지만 시민의 안전과 인권, 시장 감독을 책임지는 행정·사법 영역까지 조급하게 쫓아갈 필요는 없다. AI 기술을 정책 홍보용 포장지로 쓰기엔 아직 비싸고, 다수의 삶에 영향을 미칠 의사결정 도구로 쓰기엔 여전히 오류가 많다. 그런데도 ‘재판 챗GPT’, ‘공무원용 챗GPT’가 요즘 자주 언급되는 걸 보니, 걱정이 앞선다. 정작 입법 연구에 부지런해야 할 국회는 이번에도 조용하다. 이런 데자뷔, 우리 이젠 그만 봐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