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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보다 사업 비전…엔비디아 성공 뒤엔 ‘전략적 탈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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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대만 타이베이에서 최근 개막한 ‘컴퓨텍스’에 전시된 엔비디아의 슈퍼칩. [로이터=연합뉴스]

대만 타이베이에서 최근 개막한 ‘컴퓨텍스’에 전시된 엔비디아의 슈퍼칩.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엔비디아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반도체 기업 최초로 시가총액 1조 달러(약 1320조원)를 달성하자 ‘메모리 한파’를 겪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왜 한국에는 엔비디아 같은 회사가 없느냐’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챗GPT로 대표되는 ‘거대 인공지능(AI)’ 열풍 속에서 국내 업체는 ‘곁불’만 쬘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도 있다.

‘거대 AI’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한국이 시장을 주도하는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수요가 커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AI 데이터 처리에 필요한 고대역폭 메모리(HBM) 기술을 선점하면서 시장 확대에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기대감과 달리 메모리 반도체가 입는 수혜는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메리츠증권에 따르면 엔비디아가 개발한 H100의 원가에서 GPU가 차지하는 비중은 81%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어 중앙처리장치(CPU) 9%, 보드 및 기타 5% 순이다. HBM과 DDR5가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3%, 2%에 불과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만큼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기업)의 경쟁력이 핵심이라는 의미다. 이를 두고 익명을 원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엔비디아는 미래 수요를 예측하고 고부가 가치 제품에 주력해 ‘많이 팔고 많이 남기는’ 사업 구조를 만들었다”며 “한국 기업들은 그동안 좌측통행만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우측에서 대박이 터진 격”이라며 씁쓸해했다.

실제 엔비디아의 성공에는 미래를 내다본 선택과 포기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이다. 선택의 잣대는 ‘컴퓨팅 혁명’이다. 2006년 엔비디아는 GPU용 프로그래밍 언어인 ‘쿠다(CUDA)’를 출시했다. 초기엔 기존의 CPU 연산 모드에 가로막혀 힘을 쓰지 못했다. 하지만 2012년 즈음부터 쿠다를 사용한 AI 모델 훈련이 시작됐고, 최근에는 머신러닝이 보편화하며 쿠다의 중요성도 상승하고 있다. 쿠다는 엔비디아 제품에서만 작동하기 때문에, 엔비디아가 시장에서 독주할 수 있는 생태계를 형성했다. 최근 엔비디아는 챗 GPT 등 거대 AI 개발을 위한 GPU 시장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반대로 사업 비전과 맞지 않으면 눈앞의 거대한 시장을 포기하기도 했다. 2010년 스마트폰 태동기 때 구글 안드로이드와 엔비디아는 좋은 파트너였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그러나 “새로운 컴퓨팅 혁명을 하겠다는 비전이 있었기에 스마트폰 시장에서 빠르게 철수했다”며 “전략적인 탈출이 성공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팹리스를 포함한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 조성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최근 퓨리오사AI, 리벨리온 같은 토종 팹리스 스타트업이 엔비디아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퓨리오사AI는 1세대 AI 반도체인 ‘워보이’에 이어 다음 달 2세대 칩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미국 MIT 출신인 박성현 대표가 2020년 설립한 리벨리온은 데이터센터용 AI 반도체 ‘아톰’을 개발하고 기술을 검증하고 있다.

백준호 퓨리오사AI 대표는 “회사 인력의 70%가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구성돼 있으며, 기술력만큼은 글로벌 팹리스와 경쟁할 수 있을 수준”이라며 “엔비디아 제품을 대체할 만한 챗GPT급 초거대 AI 모델을 돌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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