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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누리호 성공에 무리한 발사?…“경로 바꿔 문제 발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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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합동참모본부는 31일 군이 어청도 서방 200여㎞ 해상에서 북한이 주장하는 ‘우주발사체’의 일부로 추정되는 물체를 인양했다고 밝혔다. 발사체에 ‘점검문-13’ 문구가 적혀 있다(아래 사진). [사진 합참]

합동참모본부는 31일 군이 어청도 서방 200여㎞ 해상에서 북한이 주장하는 ‘우주발사체’의 일부로 추정되는 물체를 인양했다고 밝혔다. 발사체에 ‘점검문-13’ 문구가 적혀 있다(아래 사진). [사진 합참]

북한이 31일 군사정찰위성을 탑재했다고 주장하면서 우주발사체를 쏘았지만 로켓 엔진 및 연료 결함으로 실패했다. 북한은 이례적으로 발사 2시간30분여 만에 원인을 포함한 실패 사실을 공식 발표하고 빠른 기간 내에 제2차 발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합동참모본부는 31일 군이 어청도 서방 200여㎞ 해상에서 북한이 주장하는 ‘우주발사체’의 일부로 추정되는 물체를 인양했다고 밝혔다. 발사체에 ‘점검문-13’ 문구가 적혀 있다. [사진 합참]

합동참모본부는 31일 군이 어청도 서방 200여㎞ 해상에서 북한이 주장하는 ‘우주발사체’의 일부로 추정되는 물체를 인양했다고 밝혔다. 발사체에 ‘점검문-13’ 문구가 적혀 있다. [사진 합참]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오전 6시29분 북한이 주장하는 우주발사체가 평안북도 동창리 일대에서 남쪽으로 발사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발사체는 백령도 서쪽 먼바다 상공을 통과한 뒤 비정상적으로 비행하다 추락했다. 낙하지점은 한·중 잠정조치수역인 어청도 서쪽 방향 200여㎞ 해상이었다.

북한도 발사 후 약 2시간30분이 지난 오전 9시쯤 발사 실패를 인정했다. 북한 국가우주개발국은 “군사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신형 위성운반로켓 ‘천리마-1형’에 탑재해 발사했다”며 “‘천리마-1형’은 정상 비행하던 중 1단계 분리 후 2단계 발동기(엔진)의 시동 비정상으로 추진력을 상실하면서 서해에 추락했다”고 발표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국가우주개발국 대변인은 이어 “‘천리마-1형’에 도입된 신형 발동기 체계의 믿음성(신뢰성)과 안정성이 떨어지고 사용된 연료의 특성이 불안정한 데에 사고의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고 구체적인 원인 해명에 착수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급적 빠른 기간 내에 제2차 발사를 단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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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에 따르면 북한이 위성 탑재를 주장하면서 우주발사체를 쏜 건 이번이 일곱 번째다. 가장 최근 사례는 2016년 2월 ‘광명성 4호’였다. 일곱 차례 발사 중 두 차례는 위성 궤도 진입엔 성공했지만 위성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미국 플래닛 랩스가 지난달 30일 찍은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 위성사진. 북한은 31일 기존 발사대(원 안)가 아닌 바다 쪽 새 발사대(네모 안)에서 천리마-1형을 쏜 것으로 추정된다. [AP=연합뉴스]

미국 플래닛 랩스가 지난달 30일 찍은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 위성사진. 북한은 31일 기존 발사대(원 안)가 아닌 바다 쪽 새 발사대(네모 안)에서 천리마-1형을 쏜 것으로 추정된다. [AP=연합뉴스]

군 당국은 발사 1시간36분 만인 오전 8시5분쯤 해군 수상구조구난함 통영함이 낙하지점 해상에서 떠다니고 있던 로켓의 잔해를 인양했다고 밝혔다. 군 당국은 이 잔해가 1단 로켓과 2단 로켓 사이 원통형 연결단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군 당국은 또 다른 수상구조구난함인 광양함도 현장에 추가 투입하는 등 나머지 잔해 수거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번 발사체의 전반적인 성능과 외국 부품 사용 여부, 기술 수준 등을 확인할 예정이다.

◆왜 실패했나=북한 발표를 종합하면 1단 추진체 비행과 단 분리까지는 문제없이 진행됐으나 2단 추진체의 점화가 이뤄지지 않았거나 연소 과정이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국가정보원은 이날 국회 정보위에서 “과거에는 1~2단계 비행경로가 일직선이었지만 이번엔 서쪽으로 치우친 경로를 설정했다가 동쪽으로 무리하게 변경해 기술적 문제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고 여당 간사인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이 전했다. 이춘근 한국과학기술정책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펌프나 연료순환계통 문제일 수 있고, 접이식 분사관이 적용됐다면 분사관이 제대로 팽창하지 못해 2단 추진체의 점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수 있다”고 봤다. 류성엽 21세기군사연구소 전문연구위원은 “북한 액체연료는 연료와 산화제가 섞이면 바로 점화되는 형태”라며 “연료를 공급하는 연료순환계통에서 문제가 생겨 2단 추진체에 점화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사용 연료의 특성이 불안정했다’는 발표에 따르면 북한이 새로 개발한 2단 추진체 엔진에 적합한 연료의 조성비를 찾지 못했을 수도 있다. 2단 고공 엔진은 수백㎞ 상공 진공 상태에서 점화와 연소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1단보다 까다로운 기술력을 요구한다. 장영근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미사일센터장은 “이번에 사용된 연료는 기존 로켓 연료와 달리 성분에 대한 조성비를 조정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충분한 지상 연소시험 등을 하지 못한 결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선 한국의 우주개발 일정을 의식해 성급하게 발사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와 관련, 국정원은 “누리호 발사 성공에 자극받아 통상 20일이 소요되는 준비 과정을 수일로 단축하고, 새로운 동창리 발사장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급함에 감행한 것도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언제 다시 쏠까=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추진체의 오류를 규명한 뒤 진공실험 등으로 해결책을 찾는 데 수개월이 걸리겠지만 최고지도자의 결단이 중요한 북한 체제의 특성상 조기 발사가 불가능하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대통령실 관계자도 “북한이 처음 예고했던 6월 11일 이전에 또다시 발사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며 “그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비 중”이라고 말했다. 국정원은 “엔진 이상 점검을 하는 데 수주 이상 소요될 것”이라면서도 “결함이 경미하면 조기 발사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고 전망했다.

앞서 북한은 김일성 주석의 100회 생일을 앞둔 2012년 4월 13일 ‘광명성 3호’ 위성을 탑재한 장거리 로켓 ‘은하 3호’를 발사했으나 실패했다. 이후 8개월이 지난 그해 12월 ‘광명성 3호 2호기’를 다시 쏘아올려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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