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에 '캡사이신' 찬 경찰…민주노총, 6시간 만에 자진해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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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31일 민주노총의 분향소 기습 설치를 제지하는 과정에서 양측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경찰관을 폭행한 혐의(공무집행방해)로 민주노총 조합원 4명을 현행범 체포했다. 민주노총은 당초 이날 오후 8시 경찰청까지 행진을 계획했지만, 8시 30분쯤 도심 야간집회를 자진해서 해산해 더 이상의 충돌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날 오후 6시 40분쯤 민주노총은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 인도에 지난 2일 분신해 사망한 건설노조 강원지부 소속 양회동씨의 분향소 기습 설치를 시도했다. 초록색 천막 앞에는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열사 시민분향소'라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오후 7시부터 1800명 규모로 신고한 촛불문화제를 앞둔 상태였다.

31일 오후 7시쯤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 인도에서 양회동씨 분향소 설치를 두고 경찰과 건설노조 측이 충돌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조합원 2명이 병원에 이송되고 4명이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현행범 체포됐다. 이찬규 기자

그러나 경찰은 즉각 "도로법을 위반하는 천막을 설치하지 말라. 불법을 중단하고 해산하라"며 제지에 나섰다. 거듭된 방송 이후 경찰은 천막 쪽으로 진입을 시도했다. 이에 노조 측이 "나가라, 나가라" "무조건 밀어. 경찰 몰아내" 등을 외치며 양측이 본격적으로 충돌했다. 이 과정에서 노조원 2명이 바닥에 깔려 팔을 다치는 등 부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경찰은 또 충돌 과정에서 경찰을 폭행한 민주노총 조합원 4명을 현행범으로 체포해 수사에 나섰다.

31일 오후 7시쯤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 인도에서 양회동씨 분향소 설치를 두고 경찰과 건설노조 측이 충돌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조합원 2명이 병원에 이송되고 4명이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현행범 체포됐다. 장서윤 기자

충돌 끝에 천막이 무너져 뼈대만 남자, 민주노총 측은 결국 천막을 스스로 거뒀다. 노조원들이 경찰 기동대원들에게 "니들이 뭔 짓 하는지 알아, XX야?"라며 욕설을 내뱉자, 경찰이 "욕하지 말라"며 응수하는 모습도 관찰됐다. 노조 측은 오후 7시 20분쯤부터 "분향소를 앞두고 추모도 못 하게 하는 경찰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며 "분향소는 설치하지 못했지만 열사 사진을 올려놓고 추모제를 진행하겠다"며 묵상과 함께 추모제를 시작했다. 조합원들은 "노동탄압 중단하라" "윤석열을 끌어내자" 등의 구호를 외쳤다.

현장에선 양측 긴장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민주노총이 8시 예정된 행진을 강행할 경우 충돌이 격화할 거란 우려가 나왔다. 하지만 민주노총이 8시 30분쯤 자진해산하면서 더 이상의 충돌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로써 오후 2시부터 시작된 민주노총의 이날 집회는 약 6시간 만에 마무리됐다. 지난 16~17일 강행한 1박2일 노숙집회와는 상반된 풍경이었다.

31일 오후 7시쯤 민주노총 산하 건설노조가 양회동 씨를 추모하는 촛불문화제를 진행하고 있다. 장서윤 기자

오후 2시부터 열린 2만명 규모의 민주노총 경고파업 결의대회 역시 큰 충돌없이 마무리됐다. 서울고용노동청·전쟁기념관 등지에서 열린 사전집회에서 민주노총은 “경찰이 강제해산 훈련까지 하면서 집회에 불법성이 있으면 캡사이신을 쏘겠다고 한다”(김은형 민주노총 부위원장)며 경찰을 비판했다. 조합원들도 “물러서면 다 죽는다 윤석열 정권 몰아내자” “건설노조 뚝심으로 윤석열 정권 퇴진시키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호응했다.

서울경찰청은 80개 중대(5000여명)를 동원해 집회 관리에 나섰다. 특히 집회 현장에는 윤희근 경찰청장이 거듭 예고했던 캡사이신 분사 기구도 등장했다. 시위 현장 곳곳에 ‘예비 캡사이신’이라는 글자가 적힌 가방이 놓였다. 야광 조끼 앞주머니에 소형·중형 캡사이신 분사기를 찬 경찰 기동대원들 역시 눈에 띄었다. 윤 청장이 직접 이날 오전 서울 남대문경찰서를 찾아 “부득이 사용이 필요하다면 현장지휘관의 판단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했다”며 캡사이신 사용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최서인·장서윤·이찬규 기자 choi.seo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