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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중증환자 응급실 수용 의무화, 경증환자 빼서라도 병상 배정"

중앙일보

입력

정부와 여당은 최근 연이어 발생한 ‘구급차 뺑뺑이 사망 사건' 재발을 막기 위해 병원 이송 등을 지휘하는 ‘지역 응급의료 상황실’을 만들고, 응급 환자의 병원 이송이나 전원을 통제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병원에 이송되는 환자는 병원에서 반드시 수용해야 한다.

당정 “경증 환자 빼서라도 응급 환자 받도록”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이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응급의료 긴급대책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이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응급의료 긴급대책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정은 31일 국회에서 '응급의료 긴급대책' 논의를 위한 당정협의회를 열고 이렇게 결정했다고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이 브리핑에서 밝혔다. 박 의장은 브리핑에서 “컨트롤타워로서 지역 응급의료상황실을 설치해 환자 중증도와 병원별 가용 자원 등 현황을 기초로 이송과 전원을 지휘·관제하고 이를 통한 이송이라면 해당 병원은 수용을 의무화하도록 했다”라고 말했다. 당정은 응급실 병상이나 의료 인력 부족 등으로 중증 환자가 구급차 이송 중 사망하는 사례와 관련해 원인은 ▶수술환자·중환자실 병상 부족 ▶경증 환자로 인한 응급실 과밀화 ▶구급대와 의료기관 간의 정보 공유체계 미비라고 진단했다. 이와 함께 박 위의장은 “병상이 없을 때는 경증 환자를 빼서라도 (응급환자에 대한 병상) 배정을 확보할 수 있도록 의무화하기로 했다”라며 “국민 협조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당정 협의는 전날(30일) 오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에서 후진하던 차량에 치인 A씨(74)가 치료 가능한 병원을 헤매다 사고 발생 약 2시간 만에 구급차 안에서 숨진 일을 계기로 열렸다. 지난 4월 당정은 대구 한 건물에서 10대가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로 병원을 전전하다 사망(3월)하자 협의회를 열고 중증 응급의료센터를 40개에서 60개로 늘리는 등 대책을 내놓았는데, 약 두 달 만에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실효성 있는 특단의 대책을 주문하는 목소리에 직면하게 됐다. 이날 협의에는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경기도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당시 119구급대는 사고 접수 10분 만인 30일 오전 0시 38분 용인 현장에 도착했다. A씨는 복강 내 출혈이 의심되는 외상 환자로 분류됐다. 이후 119구급대는 종합병원 11곳에 연락해 수술 등을 문의했으나 줄줄이 ‘수용 불가’ 통보를 받았다. 이 중 8곳은 ‘병상 부족’ ‘병실 부족’이라는 사유를 소방에 댄 것으로 파악됐다. 119구급대가 처음 이송을 판단했던 아주대병원(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 관계자는 “당시 중환자실 병상 40개가 꽉 찼고, 혼수상태로 실려 온 환자 2명이 대기하고 있어 ‘중환자실 수용 불가’ 통보를 했다”라고 말했다. 인근 신갈강남병원에서 1차 응급처치를 받은 A씨는 100㎞ 떨어져 있는 의정부성모병원(경기북부권역외상센터)이 수용 가능(오전 1시 46분)하다고 해 구급차로 이동 중 심정지(오전 2시 30분)가 왔고, 병원에 도착(오전 2시 46분)해 사망 판정을 받았다. 소방 관계자는 “주요 병원 응급실 베드(병상) 설치 상황은 실시간으로 확인 가능한데 꽉 차 있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수술이 가능할까 싶어 전화를 하나하나 돌려보는 것이 현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응급의료진 희생양 말고 근본 대책 필요”

‘응급실 뺑뺑이’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번 사건이 의료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양호한 수도권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응급의료 시스템 붕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A씨를 받아주지 않은 병원 중 권역 내 중증 외상환자를 책임지는 권역외상센터가 3곳 있었다. 7곳은 대학병원이었는데, 이 중 4곳은 권역 내 중증 응급환자를 담당하는 권역응급의료센터였다. 이들 중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의사도. 병실도 없는 게 문제인데 무조건 환자를 받으라고 강요하는 시스템은 분명 문제가 있다”라고 항변했다. 류현호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강제성을 주는 정책보다는 전문의가 현장에 남아 있고 전공의가 지원할 수 있는 현실적인 유인책이나 보상·지원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이날 낸 입장문에서 “중증외상환자라면 최소한 중환자실과 응급외상수술팀이 갖추어져야 응급실에 받을 수 있다”라며 응급실 뺑뺑이 원인으로 의료자원 부족을 들었다. 이들은 “응급 의료진을 희생양 삼아 공분 돌린다고 예방 가능한 응급·외상환자 사망률이 떨어지진 않을 것”이라며 ▶상급병원 과밀화 해결 ▶경증환자 119 이송 및 응급실 이용자제 ▶취약지 응급의료 인프라 확충 ▶비정상적인 응급실 이용행태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최석재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홍보이사는 “중환자를 받아도 병원이 수익이 안 나니까, 안 받을수록 이득인 현 시스템이 문제”라며 “대학병원 응급실 등은 (경증)환자가 걸어 들어갈 수 없게 해야 한다. 안 그러면 응급실 과밀화 문제는 100년이 가도 해결이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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