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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되는데, 北 왜 안됐나…발사체 실패뒤엔 '김정은 조바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북한이 31일 오전 '우주 발사체'라고 주장하는 장거리 로켓인 '천리마-1호' 발사에 실패했다. 우주 궤도로 나가야 할 위성 발사체에 문제가 생기자 북한은 이례적으로 "사고가 발생해 서해에 추락했다"며 실패를 인정했다.

 북한이 2012년 12월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장거리 로켓 '은하 3호'를 발사하는 모습. 연합뉴스

북한이 2012년 12월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장거리 로켓 '은하 3호'를 발사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날 천리마-1호의 발사는 지난 25일 누리호가 성공적으로 날아오른 지 엿새 만에 이뤄졌다. 북한은 지난 29일 위성 발사를 예고했고, 발사 전날인 30일엔 군부의 실세이자 미사일 개발 총책인 이병철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직접 나서 "6월 중 위성을 발사하겠다"고 재차 밝혔다. 그리고도 북한은 이병철의 공개 예고보다 하루 더 앞당긴 31일 새벽 발사를 감행했다.

한국은 되는데…北은 안 되는 발사

북한이 신형 추진체에 새로 개발한 위성의 탑재를 마쳤다고 주장했던 시점은 지난 17일이다. 그리고 8일 뒤 누리호의 성공적 발사 소식이 전 세계에 타전됐다. 직후 북한의 위성 발사 움직임도 함께 주목받았는데, 당시 주요국 언론과 전문가들은 "북한이 아무리 서둘러도 최소 6월 중순 이후가 돼야 북한이 발사 준비를 마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그럼에도 북한이 곧바로 천리마-1호 발사에 나선 것을 놓고 누리호 성공에 조급함을 느끼며 서둘렀다가 실패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누리호 발사에 함께 엮이는 모양새를 만들어 국제사회가 금지한 '탄도미사일 기술을 사용한 발사체 발사'의 책임을 피해 나가려 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는 기본적으로 북한의 계획과 기술적 준비 상태 등에 따른 정치·군사적 판단의 결과로 봐야 한다"면서도 "한국의 누리호 발사와 관련해선 국제적으로 환영받고, 이와 유사한 자신들의 도발에 대해선 원천 차단을 받는 상황을 고려해 발사일을 앞당겼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北, 발사 전후 정당성 확보 시도  

북한은 천리마-1호 발사에 앞서 다양한 채널을 통해 이번 발사가 미국에 대한 자위권 행사의 차원이라는 점을 반복적으로 주장했다. 또 발사 직전에는 국제해사기구(IMO)에도 사전 통보하며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를 보이기도 했다.

특히 북한은 이날 발사 실패 직후엔 이례적으로 실패 원인까지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이 역시 이번 위성 발사가 '평화적 우주개발'이라는 목표에 따른 정상적인 활동이라는 점을 부각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6일 군사정찰위성 발사 준비를 하고 있는 비상설위성발사준비위원회 사업을 시찰하는 모습. 북한은 이날 완성된 군사정찰위성 1호의 실물을 공개했다. 뉴스1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6일 군사정찰위성 발사 준비를 하고 있는 비상설위성발사준비위원회 사업을 시찰하는 모습. 북한은 이날 완성된 군사정찰위성 1호의 실물을 공개했다. 뉴스1

실제 북한은 이날 국가우주개발국 대변인 명의로 나온 보도문에서 "천리마-1형에 도입된 신형발동기 체계의 믿음성과 안정성이 떨어지고 사용된 연료의 특성이 불안정한데 사고의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고 해당 과학자, 기술자, 전문가들이 구체적인 원인 해명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북한이 군이나 노동당 핵심 인사가 아닌 우주개발국을 이날 발표의 주체로 내세운 것도 최대한 국제적 제재의 프레임을 피하기 위한 노림수로 풀이된다.

누리호 성공 지켜본 김정은의 조바심

그럼에도 이번 군사정찰위성 발사 실패는 김정은에게 치명적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김정은이 위성 발사 준비 과정에서 여러 차례 직접 관여해 지시를 내리는 모습을 대내외에 공개해왔기 때문이다.

북한은 천리마-1형이 발사된 동창리 일대에 김정은이 직접 참석할 수 있는 관측소로 추정되는 시설물까지 마련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만약 이날 발사에 성공했다면 김정은이 '우주강국 건설'의 위업을 달성했다는 점을 부각해 대대적 선전전에 나섰을 거란 의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6일 군사정찰위성 발사 준비를 하고 있는 비상설위성발사준비위원회 사업을 시찰하는 모습. 북한은 이날 완성된 군사정찰위성 1호의 실물을 공개했다. 뉴스1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6일 군사정찰위성 발사 준비를 하고 있는 비상설위성발사준비위원회 사업을 시찰하는 모습. 북한은 이날 완성된 군사정찰위성 1호의 실물을 공개했다. 뉴스1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날 발사가 실패로 끝나면서 그간 북한이 한국과 비교해 거의 유일하게 성과를 내고 있는 미사일 분야조차도 경쟁에서 밀리게 됐다는 열등감만 떠안게 됐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김정은이 계속 딸 김주애를 대동해 위성발사장 시찰에 나선 것은 사실상 위성 발사에 정치적 승부수를 걸었다는 얘기"라며 "이번 실패로 최고 존엄의 영상(이미지)에 상처가 난 것은 물론 추가 발사를 통해 성공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속한 '재시도' 예고한 북한

이 때문에 김정은이 이날 발사 실패를 신속히 인정하며 조속한 재발사 의사를 밝힌 것은 이러한 정치적 부담을 정면 돌파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처한 결과란 해석도 나온다.

북한이 2012년 4월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서해 위성 발사장에서 외신 기자들에게 공개한 '광명성-3호' 인공위성의 모습. AFP, 연합뉴스

북한이 2012년 4월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서해 위성 발사장에서 외신 기자들에게 공개한 '광명성-3호' 인공위성의 모습. AFP, 연합뉴스

북한이 위성 발사 당일 실패를 인정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김정은은 집권 첫해였던 2012년 4월 '광명성-3호' 발사를 앞두고 외신 기자까지 초청하는 등 자신감을 보였지만, 광명성-3호 위성을 실은 '은하-3호'는 발사 직후 추락했다. 그런데도 북한은 당시 침묵 대신 실패를 공개했고, 8개월 뒤인 그해 12월 은하-3호를 다시 쏘아 올렸다. 이번에도 당시와 유사한 패턴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장영근 한국항공대 교수는 "통상적으로 이런 실패나 사고가 발생하면 근본적인 원인을 조사하고 보완하기 위해 최소 6개월 이상의 기간이 소요된다"면서도 "김정은이 처한 정치적 환경과 북한 체제의 특성을 감안하면 최소의 원인 조사로만 끝내고 수정 후 바로 발사할 개연성이 높아 수주 내 2차 발사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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