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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금 반환 대출 허용 가닥…가계부채 꿈틀 ‘딜레마’

중앙일보

입력

정부가 전세금 반환 대출에 대한 규제 완화 방침을 굳히면서 이미 꿈틀대는 가계 부채 증가를 더욱 부추기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권에서는 ‘깡통전세’ 급증에 따른 혼란을 막기 위한 규제 완화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규제를 최소화해 부작용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31일 서울 시내 우리은행에서 전세사기피해 대출전담 창구가 운영되고 있다. 이날부터 우리은행 전국지점에서 전세대출을 이용 중인 전세사기 피해자도 서울보증보험(SGI)으로부터 발급받은 보증서를 활용해 정부가 지원하는 저금리(연 1.2~2.1%)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뉴스1

31일 서울 시내 우리은행에서 전세사기피해 대출전담 창구가 운영되고 있다. 이날부터 우리은행 전국지점에서 전세대출을 이용 중인 전세사기 피해자도 서울보증보험(SGI)으로부터 발급받은 보증서를 활용해 정부가 지원하는 저금리(연 1.2~2.1%)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뉴스1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는 전세금 반환 대출에 한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과 주택담보 인정비율(LTV) 같은 대출 규제를 완화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세금 반환 보증과 관련된 대출에서 선의의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이 있다고 들었다”며 “이에 대해 제한적으로 대출 규제를 완화하는 부분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기 위한 용도로 쓰이는 전세금 반환 대출에는 일반 주택담보대출과 마찬가지로 DSR·LTV 규제가 적용된다. 최근 역전세난으로 전세금 반환이 어려운 상황에 놓인 임대인들이 많아지며 대출 규제를 완화해 임대인의 돈줄을 틔워주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전국임대인연합회는 “현재 선량한 임대인들조차 주택담보대출이 불가능해 임차인들의 보증금을 지켜주고 싶지만 방법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상황”이라며 “임대인이 책임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문제는 이런 조치가 가계부채 증가와 같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 가계부채 총량은 여전히 많다. 가계부채 규모는 지난해 1800조원을 넘었다. 국제금융협회(IIF)의 세계 부채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으로 34개국(유로 지역은 단일 통계) 중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0%를 넘는 국가는 한국(102.2%)뿐이다.

게다가 고금리 여파로 감소세를 보인 가계부채는 다시 상승 전환하는 모양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 4월 전체 금융권 가계대출은 전월 대비 2000억원 늘었다. 2022년 8월 이후 첫 증가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25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중장기적으로 금융 불균형을 해소하고 대출 축소를 좀 더 일으켜 금융안정을 가져가야 한다”며 “이 시각에서 본다면 가계대출이 다시 확대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홍경식 한은 통화정책국장과 최인협 한은 정책총괄팀 과장도 지난 30일 한은 블로그에 “최근 주택가격 하락 폭이 축소되는 등 부동산 시장의 연착륙 가능성이 커졌는데, 단기적인 금융 시장 안정 측면에서는 분명 긍정적인 부분”이라면서도 “이로 인해 디레버리징(부채 축소) 흐름이 약화할 경우 이미 높은 수준의 가계부채가 금융안정 측면의 리스크를 높이고 거시 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적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여기에 전세금 반환 대출 확대는 금융회사에 부실 대출을 떠넘기는 꼴이 될 수 있다. 전세금 반환 대출은 집주인이 갚지 못하는 전세금을 대출로 갚게 하는 것으로 집값 하락에 따른 대출 부실 문제는 여전히 남게 된다.

이에 규제 완화 폭이 너무 커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컨대 세입자가 받아야 할 전세 보증금과 떨어진 전세 가격 차이 만큼에 대해서만 대출을 허용하는 식이다. 금융당국도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규제를 완화한다는 계획이다.

서정렬 영산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임대인 보호와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위해 대출 규제를 융통성 있게 조절하는 것은 필요한 조치”라며 “다만 가계부채 증가, 도덕적 해이와 같은 부작용도 우려되는 만큼 현재 DSR 한도가 모두 차 돈줄이 막힌 임대인에 대해 규제를 풀어주는 정도가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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