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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발사체 쏘아올릴 때 …제주선 '北 검문·차단' 훈련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금부터 의심 선박에 침투해 선박의 기동을 통제하고 선장·기관장 등 신변을 확보하겠습니다!"

31일 오전 북한이 인공위성을 실었다는 발사체를 쏘아올릴 무렵, 제주 공해 상에선 이른 새벽부터 확산방지구상(PSI) 회원국들의 대량살상무기(WMD) 확산 차단 훈련이 이뤄졌다. '이스트 엔데버 23'이라는 명칭이 붙은 이날 훈련은 WMD 관련 물자를 싣고 있는 선박을 포착해 멈춰 세운 뒤 의심 물자를 확보하는 과정으로 진행됐다.

북한처럼 불법 핵·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을 지속하면서 이를 다른 곳으로 퍼트리는 '불량 행위'를 차단하겠다는 목적이다.

확산방지구상(PSI) 해양차단훈련이 31일 오전 제주민군복합항에서 해군과 해경, 국방부 직할 국군화생방방호사령부 특수임무대대가 참여해 실시됐다. 연합뉴스.

확산방지구상(PSI) 해양차단훈련이 31일 오전 제주민군복합항에서 해군과 해경, 국방부 직할 국군화생방방호사령부 특수임무대대가 참여해 실시됐다. 연합뉴스.

WMD 의심되면 투입

이날 승선·검색(VBSS) 훈련은 가상의 유엔 안보리 결의가 채택됐다는 것을 전제로 진행됐다. 현존하는 유엔 안보리 제재를 기반으로 PSI 회원국들이 고안한 가상의 결의안에는 "모든 회원국은 WMD 관련 물질을 적재 및 운송하고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드는 선박을 승선 및 검색한다", 관련 물질이 적발된 경우 압류 및 처분할 수 있다" 등 내용이 명시됐다.

제주 서귀포시 민군복합항에 정박한 대형 수송함 '마라도함' 안에서 이같은 사전 설명을 들은 PSI의 각국 대표단과 취재진은 갑판으로 올라가 실제 훈련 과정을 지켜봤다.

이날 공개된 훈련은 이종호 해군참모총장이 주관했고 모두 한국 군 전력으로 진행됐다. WMD를 적재한 것으로 추정되는 의심 선박 역할은 군수지원함 대청함이 맡았는데, 해당 선박에 대한 정보가 전파되면서 실제 훈련이 시작됐다.

31일 오전 제주민군복합항에서 해경이 대량살상무기(WMD)를 실은 것으로 상정한 함정에 투입되는 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31일 오전 제주민군복합항에서 해경이 대량살상무기(WMD)를 실은 것으로 상정한 함정에 투입되는 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보를 입수하자 해양경찰 특공대가 고속단정(RIB)으로 물살을 가르며 대청함에 빠르게 접근했고 선박 위에 올라 선장·기관사 등의 신병을 확보해 선내를 장악했다. 이어서 진입된 해군 특임대는 의심 물질을 신속하게 찾아냈다. 마지막으로 국군 화생방사령부의 특임대가 투입돼 해당 물질이 화학무기에 사용되는 '신경작용제' 임을 확인하고 샘플을 채취했다.

김인호 훈련지휘관(제7기동전단장 준장)은 "이번 훈련은 WMD 확산 방지를 위한 우리 정부와 군의 주도적 역할 수행을 국내외에 보여주며 참가국 간 협력 체계와 국제적 대응 능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상 악화로 약식 진행

당초 이날 훈련은 한국, 미국, 일본, 호주 등 4개국의 함정 7척, 항공기 6대, 승선검색 6개 팀이 역할을 분담해 다국적 훈련으로 이뤄질 예정이었다.

원래 시나리오에 따르면 호주의 함정이 의심 선박의 속력을 줄인 뒤, 한국 해경 특공대가 선교를 장악하는 순간 미국 해경 특공대가 기관실을 장악하고 한·미·일 특임대가 투입되는 등 PSI 회원국끼리 손발을 맞춰 진행되는 훈련이었다. 실제 PSI의 WMD 차단도 이처럼 회원국 간 정보력, 검색 역량 등 국제 공조를 통해 이뤄진다.

31일 제주에서 열린 확산방지구상(PSI) 해양차단훈련에서 해군 특전단 특임대와 국군화생방사령부의 특임대가 의심선뱍을 수색하는 모습. 해군.

31일 제주에서 열린 확산방지구상(PSI) 해양차단훈련에서 해군 특전단 특임대와 국군화생방사령부의 특임대가 의심선뱍을 수색하는 모습. 해군.

다만 예상치 못한 기상 악화로 인해 이는 약식으로 축소됐고, 한ㆍ미ㆍ일ㆍ호 함정은 이날 오전 6시부터 약 1시간동안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기반을 둔 지휘소훈련(CPX), 전술 기동, 통신 훈련 등을 실시한 뒤 본국으로 돌아갔다.

PSI는 WMD 불법 확산 방지를 위해 106개국이 참여하는 협의체로 전날인 30일부터 나흘 동안 PSI 20주년 고위급 회의가 제주에서 열렸다. PSI 고위급 제주 회의는 아시아에선 최초다.

31일 제주에서 열린 확산방지구상(PSI) 해양차단훈련에서 국군화생방사령부의 특임대가 의심 선박에서 의심 물질을 확보하는 모습. 해군.

31일 제주에서 열린 확산방지구상(PSI) 해양차단훈련에서 국군화생방사령부의 특임대가 의심 선박에서 의심 물질을 확보하는 모습. 해군.

美 "北, 안보리 결의 위반"

이날 훈련 참관을 위해 마라도함에 올랐던 미국 대표단의 일원인 곤잘로 수아레스 미 국무부 국제안보·비확산국 부차관보는 취재진과 만나 "오늘 아침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는 유엔 안보리 결의를 또 다시 위반한 것으로 우리는 북한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어 "미사일 혹은 위성을 탑재한 우주발사체 발사 등 북한의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를 모든 국가가 규탄하기를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곤잘로 수아레스 미국 국무부 국제안보·비확산국 부차관보가 31일 오전 마라도함에서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연합뉴스.

곤잘로 수아레스 미국 국무부 국제안보·비확산국 부차관보가 31일 오전 마라도함에서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역내는 물론이고 전 세계의 안보를 위협하는 북한의 확산 행위에 맞서기 위해 우방국과 힘을 합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이번 '미국이 추가 독자 제재를 단행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검토하고 있는 제재 옵션을 미리 밝히지는 않겠다"며 말을 아꼈다.

수아레스 부차관보는 또 '북한이 정찰위성에 필요한 물자를 어디에서 구하고 있나'라는 질문에는 "자세한 것까지 말할 수는 없지만, WMD 생산에 필요한 기술을 생산하는 모든 국가는 해당 기술이 확산자(proliferator)의 손에 들어가지 않도록 수출 통제에 유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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