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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수 두둑해야할 4월, 되레 9.9조 구멍…"출구 없는 재정 절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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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본사가 밀집한 서울 광화문 일대 전경. 연합뉴스

대기업 본사가 밀집한 서울 광화문 일대 전경. 연합뉴스

지난달 국세 수입(세수) 구멍이 더 커졌다. 4월은 연중 세금이 가장 많이 걷히는 달이지만, 기대에 못 미쳤다. 정부는 지난해 거둬들인 세입 중에서 필요한 지출을 하고 남은 '세계잉여금'과 각종 정부 기금 등에서 발생하는 여유 재원을 끌어다 써 세수 구멍을 최대한 메워보겠다는 계획이다.

31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4월 국세 수입 현황’에 따르면 올해 1~4월 국세 수입은 134조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국세 수입(167조9000억원) 대비 33조9000억원 덜 걷혔다. 역대 최대 감소 폭이다. 세수 진도율(국세 수입 목표 대비 실적)도 33.5%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정정훈 기재부 조세총괄정책관은 “전반적인 세수 상황이 쉽지 않다”며 “올해 세수 결손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통상 4월은 세수가 풍족한 달이다. 법인세 분납분, 부가가치세 중간분을 신고하는 달이어서다. 분석 범위를 4월로 좁혔을 때 더 비관적이다. 4월 국세 수입은 46조9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9조9000억원 덜 걷혔다. 역시 역대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전년 동기 대비 국세 수입 감소 폭은 1월 6조8000억원→2월 15조7000억원→3월 24조원→4월 33조 9000억원으로 매달 약 10조 원씩 불었다. 세수 진도율 차이도 1월 1.8%포인트에서 4월 8.9%포인트로 벌어졌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세금을 가장 많이 거뒀어야 할 시점마저 징수 실적이 부진했다”며 “5월 이후 연말까지 지난해와 같은 수준의 세금을 걷는다고 하더라도 올해 세수는 세입 예산(400조5000억원) 대비 38조5000억원 부족하다”고 분석했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구체적으로 ‘3대 세목’인 소득세·법인세·부가가치세 수입이 모두 쪼그라들었다. 12월 말 법인의 납부 성적이 반영되는 법인세는 4월까지 35조6000억원 걷혔다. 전년 동기(51조4000억원) 대비 15조8000억원(-30.8%) 줄었다. 3월까지 감소 폭(-21.9%)을 더 키웠다. 법인세 납부가 상반기에 집중되는 만큼 재정에 ‘경고등’이 켜졌다.

소득세 감소도 계속됐다. 4월까지 35조7000억원 걷혀 전년 동기(44조6000억원) 대비 8조9000억원 감소했다. 부동산 거래 부진에 따라 양도소득세가 감소한 영향을 받았다. 부가세도 4월까지 35조9000억원 걷혀 전년 동기(39조7000억원) 대비 3조8000억원 쪼그라들었다. 다만 4월만 봤을 때 부가세는 1년 전보다 1조8000억원 더 걷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완화로 소비가 늘면서다.

이밖에 개별소비세·종합부동산세·증권거래세·교통에너지환경세·관세 등 대부분 항목의 세수가 1년 전보다 감소했다. 특정 항목에서 세수 펑크가 발생한 게 아니라 경기가 전반적으로 둔화하면서 세수 감소로 이어졌다. 정정훈 정책관은 ”5월부터는 3~4월처럼 큰 폭의 세수 감소는 없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올해 세수 결손 규모가 얼마나 될지는 5월 종합소득세, 8월 부가세를 받아봐야 윤곽이 잡힐 것”이라고 말했다.

부진한 세수 흐름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가 쓸 카드도 마땅치 않다. 세금을 더 거두기 어렵다면 지출을 줄여야 하는데 가라앉은 경기를 부양하려면 재정을 풀어야 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그렇다고 나랏빚을 낼 생각도 없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지난 30일 기자간담회에서 “세수 상황이 더 안 좋아질 수 있지만,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은 전혀 검토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세수 부족 대책으로는 "세계잉여금과 기금 여유 재원 등을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세계잉여금은 지난해 정부가 쓰지않고 남겨둔 돈이다. 세계잉여금 6조원 중 세입으로 돌릴 수 있는 재원은 2조8000억원이다. 특별회계 잉여금(3조1000억원)은 활용 범위에 제한이 있다. 기금 여유 재원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다. 세수 부족을 막기에 역부족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추경은 안 되고, 증세는 할 수 없는 정부가 ‘상저하고(上低下高·상반기 경기 부진, 하반기 경기 상승)’ 전망과 ‘자연스러운 불용(不用·예산으로 편성했지만 쓰지 않음)’만 기대는 상황”이라며 “출구 없이 ‘재정 절벽’ 코너에 몰린 모양새”라고 진단했다. 김우철 교수는 “지출 구조조정, 불용 같은 ‘예산 다이어트’로는 한계가 있다. 비과세·감면 제도를 손질하고 에너지 요금을 인상하는 등 포퓰리즘 감세를 자제하는 ‘정공법’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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