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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집밥'보다 '외식'에 돈 더 썼다…달라진 한국인 밥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17일 서울 중구 명동거리 식당가 앞으로 관광객들이 지나가고 있다. 뉴스1

지난17일 서울 중구 명동거리 식당가 앞으로 관광객들이 지나가고 있다. 뉴스1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황금주(26)씨는 아침을 거의 안 먹는다. 점심은 한끼 8500원 정도인 회사 식당을 이용한다. 저녁 역시 약속이 없으면 편의점 음식으로 간단하게 때운다. 황씨는 “마트에 가서 장을 볼 때도 있는데 대부분 최소 2인 기준으로 판다. 재료 양이 많아 항상 남기는데 빨리 또 해먹지 않으면 모두 음식물 쓰레기”라며 “외식이 조금 더 비싸긴 하지만 밥할 체력을 아낄 수 있는 데다 맛도 보장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경기 용인에 사는 정지혜(44)씨도 집밥을 고집하지 않는다. 네 가족 끼니를 외식으로 해결하는 일이 예전보다 늘었다. “식재료 값이 올라도 너무 올랐다. 아주 비싼 메뉴가 아닌 이상 집에서 요리를 해서 먹는 것보다 동네 음식점에서 간단히 외식하는 게 비용면에서 오히려 쌀 때가 있다”고 했다.

올해 처음으로 가계의 외식 지출이 집밥 관련 지출을 넘어섰다. 집밥을 고집하던 ‘한국인의 밥상’이 달라졌다. 31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3월까지(1분기) 전국 1인 이상 가구는 한달 평균 38만3803원을 식사비(외식)로 썼다.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해 20.5% 늘면서 역대 최고액을 찍었다.

반대로 올 1분기 식료품과 비주류 음료 지출은 1년 전보다 2.9% 줄어든 월 37만6800만원이었다. 가계 지출 통계에서 식료품ㆍ비주류 음료는 곡물ㆍ고기ㆍ과일ㆍ채소와 각종 가공품을 포함한다. 집에서 밥이나 간식을 챙겨 먹을 때 필요한 지출을 주로 뜻한다. 올 1분기 집밥 관련 지출이 외식 지출(월 38만3803원)을 밑돌았는데, 2019년 관련 통계를 개편한 이후 처음(1분기 기준)이다. 통계 산정 방식이 일부 달랐던 2018년 이전에도 없었던 일이다. 코로나19 때 주춤했던 외식비 지출은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 폭발적으로 늘었고, 집밥 지출까지 추월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올 1분기 가계의 전체 소비지출이 전년 대비 11.5% 늘어난 가운데 식료품ㆍ비주류 음료 지출만 거꾸로 줄었다. 통계청이 소비지출 통계를 낼 때 조사하는 12개 항목 가운데 식료품 항목만 유일하게 감소했을 정도다. 그만큼 집밥 선호 현상이 예전보다 덜하단 의미다.

경기 분당에서 학원강사를 하는 윤석태(51)씨는 “집밥과 외식 빈도를 비율로 따지면 집밥은 10% 아래”라며 “집에서 재료 준비하고 음식 만드는 시간이 아깝다. 동료와 먹거나 학생들 밥 사주기도 좋아해서 외식비를 많이 쓰는 편”이라고 했다.

한국 가족 구성이 1인 가구와 맞벌이 중심으로 바뀌면서 외식 선호 현상이 뚜렷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통계청에 따르면 1인 가구 비율은 2021년 기준 33.4%로, 전체 가구 형태를 통틀어 가장 비중이 크다. 배우자가 있는(유배우자) 가구 중 맞벌이 가구가 차지하는 비율도 계속 늘고 있는데, 2021년 46.3%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식료품을 사서 집밥을 직접 해먹어 돈을 아낀다는 건 ‘규모의 경제’로 봤을 때 가구원이 2인 이상일 때나 효과가 있다”며 “지출 압박이 있더라도 1인 가구 입장에선 밖에서 사먹는 게 더 경제적일 수 있고 맞벌이도 시간 절약 면에서 마찬가지다. 앞으로 1인 가구 비율이 더 늘어나면 이런 경향도 한층 뚜렷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진석 통계청 가계수지동향과장은 “물가가 많이 오르다 보니 식료품을 사서 집에서 해먹나 밖에서 사먹나 큰 차이가 없다는 인식이 번지는 것도 외식비 지출 증가 요인 중 하나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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