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31일 오전 6시 29분경 평안북도 동창리 일대에서 발사한 우주발사체가 전라북도 군산 서쪽에 위치한 어청도 서방 200km 지점에 추락했다. 북한은 이례적으로 즉각 “신형위성운반로케트의 2계단 발동기가 추진력을 상실해 추락했다”며 실패 사실을 인정했다.
그런데 외교가에선 북한의 이날 발사 실패가 단순한 과학기술 분야의 시행착오 수준을 넘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심혈을 기울여 기획했던 일종의 ‘정치적 승부수’에 큰 상처를 내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북한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의 보도 형식으로 발사 실패를 인정하면서, 신형 발사체의 이름 ‘천리마(千里馬)-1형’과 군사정찰위성 ‘만리경(萬里鏡)-1형’의 이름을 함께 공개했다.
북한이 공개한 발사체 천리마의 사전적 의미는 “하루에 1000리를 달릴 수 있을 정도로 좋은 말”이다. 1000리는 약 392km다. 공교롭게 이날 북한의 천리마가 비행한 거리는 발사지인 동창리에서 추락 지점인 어청도까지의 대략적 직선거리(약 350㎞)와 거의 일치한다.
천리마는 기존의 위성 발사체인 ‘은하(1~3형)’와는 이름부터 다르다. 북한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재임 때인 1998년 ‘백두산’이란 이름의 로켓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위성발사체를 쏘아올렸다. 2006년부터는 ‘은하’라고 명명한 발사체를 쐈고, ‘은하 3호’의 발사는 김정은 집권 직후인 2012년 4월과 12월에 이뤄졌다. 가장 최근인 2016년 발사했던 발사체의 이름은 '광명성호'였다.
북한 김정은이 이번 발사체의 이름을 ‘천리마’로 변경한 것은 김정일 시대를 넘는 김정은 스스로의 업적을 부각하기 위한 포석일 수 있다. 북한은 이날 실패로 결론 난 발사체를 “신형위성운반로케트”라고 명명하며 “사용된 연료의 특성이 불안정하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신형 엔진을 썼음을 의미할 가능성이 크다. 새로운 체계의 기술에 새 이름을 붙여 김정은 스스로를 높이기 위한 의도가 담겼다는 의미다.
이날 처음 공개된 군사위성의 이름 ‘만리경’도 기존과는 다르다.
북한이 지금까지 시도했던 위성에는 각각 ‘광명성(光明星) 1~4호’라는 이름을 썼다. 광명성의 사전적 의미는 “환하게 빛나는 별”이지만, 북한은 김정일이 백두산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하며 광명성을 김정일을 상징하는 말로 둔갑시켰다. 북한은 이를 근거로 김정일의 생일(2월 16일)을 ‘광명성절’로, 북한 내부용 인트라넷망을 ‘광명망’으로 부르고 있다.
김정은이 이번 발사체에 탑재한 위성의 이름을 만리경으로 변경한 것도 김정일을 상징하는 위성의 이름을 의도적으로 버리고 새로운 체계의 군사위성을 궤도에 안착시키는 것을 자신의 과업으로 삼으려 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김정은의 의도와는 달리 발사체 천리마가 1000리 가량을 비행하다 추락했고, “1만리를 볼 수 있는 망원경”을 뜻하는 만리경 역시 우주에서 ‘눈’을 떠보지도 못하고 서해상에 수장됐다.
북한은 과거 새 위성의 이름 만리경과 관련 ‘달나라 만리경’이란 사상 교육용 만화영화를 제작해 북한 아동들에게 시청시킨 적도 있다. 1986년 제작된 해당 만화는 달에 사는 토끼가 약초를 구하러 지구에 왔다가 남북의 생활상을 비교하고는 생활 수준이 우월한 북한에 정착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에도 북한이 새 위성의 이름을 만리경으로 정하면서 자신들의 위성이 이미 발사에 성공한 한국의 '누리호'보다 우월하다는 의미를 담고자 했을 가능성도 있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김정은은 이번 위성 발사를 앞두고 딸을 대동해 여러 차례 현지 지도를 반복하고 로켓과 위성의 이름에도 의미 부여를 하는 등 사실상 ‘정치적 올인’을 해왔다”며 “결과적으로 정치적 승부수를 담은 위성 발사의 실패라는 사실 자체는 물론, 누리호 발사 성공 사실과도 비교되면서 김정은의 정치력과 리더십에 큰 훼손이 발생하게 된 상황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