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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하이엔드] 엔데믹 시대, 명품은 여전히 잘 팔릴 것인가...럭셔리 시장의 미래 전망

중앙일보

입력

“팬데믹 호재가 끝났다.” 실질적인 엔데믹 시대에 들어서며 소비재 업계엔 이 말과 함께 비상 알람이 켜졌다. 코로나 19로 결핍된 일상을 보상받고 싶은 마음에 발현됐던 ‘보복소비’가 사그라지면서 기업 매출이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에서다. 한 국내 대형 가전업체 임원은 “올해 1월부터 회사 분위기가 좋지 않다”며 “보복소비가 끝난 것에 위기의식을 가지고 비상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 오래”라고 전했다.

명품업계 호재 됐던 팬데믹

26년만에 '세계 최고의 부자'로 재등극한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 사진 연합뉴스

26년만에 '세계 최고의 부자'로 재등극한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 사진 연합뉴스

지난 2년간 팬데믹은 명품업계에도 호재로 작용했다. 미국 컨설팅회사 베인앤컴퍼니에 따르면, 코로나 19의 확산 기간 세계 럭셔리 산업은 V자형 반등을 누렸다. 2021년 럭셔리 시장 규모는 3010억 달러(약 411조8300억원) 규모로, 2019년 팬더믹 이전 수준보다 7%가 상승한 수치다. 한국은 더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 전체 명품 시장 규모는 21조100억원으로 2018년 대비 30% 성장했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도 ‘한국인의 1인당 명품 소비 지출은 325달러(약 42만원)로 세계 1위’라고 발표했다. 거대 시장 미국은 280달러(약 37만원), 중국은 55달러(약 7만3000원)였다.
올해 루이비통모에헤네시그룹(LVMH)을 소유한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26년 만에 세계 최고 부호의 자리에 다시 올랐다. 미국 포브스가 발표한 ‘2023 억만장자 순위’에서 아르노 회장은 2110억 달러(약 280조원)의 재산으로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1800억 달러),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1140억 달러)는 3위로 내려갔다. 아르노 회장의 LVMH 그룹은 루이 비통, 디올, 불가리, 펜디, 티파니, 태그호이어 등 패션·시계부터 모에헤네시, 돔 페리뇽 등 주류까지 하이엔드&럭셔리 브랜드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럭셔리 제국’이다. 지난해만 해도 아르노 회장의 재산은 일론 머스크와 베이조스에 한참 못 미쳤지만, 명품에 대한 높은 인기에 LVMH 주가가 60% 넘게 급등한 반면 테슬라·아마존 주가는 하락해 순위가 뒤바뀌었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지난 이야기. 길어지고 있는 전쟁과 세계적인 경기 침체 주의보에 앞으로도 명품의 인기가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어중간한 럭셔리는 위험하다

“걱정하지 않는다.” 명품에 대한 인기가 계속될지를 묻는 말에 올해 만난 럭셔리 브랜드의 글로벌 CEO 등 임원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답했다. 럭셔리의 소비층은 지금의 경기 침체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영국 매체 비즈니스 오브 패션(BOF) 역시 “럭셔리 소비는 악화하는 경제 상황과 무관한 것으로 보인다”며 “여행, 행사 및 사교 활동이 다시 시작되며 소비하고자 하는 욕구를 부채질하고 있다. 이것은 팬데믹 시기에 왔던 보복소비 뒤의 ‘숙취(Hangover)’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베인앤컴퍼니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중국에서 코로나 19 규제가 다시 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1분기 매출은 팬데믹 이전 수준보다 17~19% 증가했다.
하지만 여기엔 조건이 따라붙는다. 명품 시장 안에서도 양극화가 뚜렷하게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모든 명품이 다 잘되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경제 위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 소비층이 고객이 되는 하이엔드급 브랜드는 영향을 받지 않지만, MZ세대를 포함한 명품에 갓 눈뜨기 시작한 소비층을 고객으로 뒀던 브랜드는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름을 밝히기 꺼린 한 브랜드 관계자는 “가격대가 낮은 제품의 경우, 올 초에 걸어놨던 예약이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고 전했다.

마크 뉴슨과 그가 디자인한 루이 비통의 '호기심의 트렁크'. 루이 비통의 크렁크를 재해석해 거실 오브제 겸 가구로 만들었다. 사진 루이 비통

마크 뉴슨과 그가 디자인한 루이 비통의 '호기심의 트렁크'. 루이 비통의 크렁크를 재해석해 거실 오브제 겸 가구로 만들었다. 사진 루이 비통

하이 주얼리와 라이프스타일로의 영역 확장

반면 수천만원이 넘는 하이엔드급 제품은 흔들림이 없다. 국내에 들어오는 수 자체가 적고, 눈높이가 높아진 기존 명품 소비층이 이를 문제 없이 소화해내 준다. 오히려 ‘더 좋은 물건’을 찾는 고객을 위해 종전 한국에선 판매하지 않았던 최상위 라인 제품이나 세계에 1개만 존재하는 등 희소성 있는 상품을 국내에 들여올 수 있느냐 없느냐가 관건이 됐다. 국내에서 수억원에 이르는 하이 주얼리 이벤트가 활발해진 것도 같은 이유다.
한국 소비자가 고가 상품을 소비하게 되면서 브랜드들은 가구, 테이블웨어 같은 라이프스타일 상품군으로 카테고리 확장을 진행하고 있다. 루이 비통이 지난해 6월 송은 미술관에서 보여준 ‘오브제 노마드’ 전시는 한국에 본격적으로 라이프스타일 명품 시장이 열렸음을 알리는 선포식 같았다. 가구의 가격은 의자 하나에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을 웃돈다. 진정한 하이엔드 라이프스타일을 누릴 수 있는 사람만이 소비할 수 있는 품목인 셈이다. ‘홈’ 카테고리를 가지고 있던 에르메스와 함께 로로피아나, 베르사체도 이 트렌드에 발 맞춰 한국에서의 마케팅에 시동을 걸고 있다.

한국, 위상이 달라졌다

경복궁에서 열린 구찌의 패션쇼. 사진 사진공동취재단

경복궁에서 열린 구찌의 패션쇼. 사진 사진공동취재단

세계 명품 시장에서 한국의 위상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지난 4월 말 열린 루이 비통의 잠수교 패션쇼나 2년이란 시간을 공들여 경복궁에서 열린 구찌의 크루즈 컬렉션 쇼만 봐도 알 수 있다. 이제 한국에선 ‘해외 명품이 쇼를 한다’는 것만으로는 뉴스거리도 안된다. 제아무리 유명한 명품이라도 어디서, 어떻게, 얼마나 잘하느냐가 중요해졌다.
결국 브랜드는 두 가지 갈림길에 섰다. 상품을 더 고급화할 것인지, 가격을 낮춘 제품으로 대중화할 것인지다. 비즈니스 측면으로 보자면 후자처럼 시장 규모를 키우는 접근성 좋은 ‘스타 아이템’을 가져가는 게 맞지만, 무릇 ‘명품’이라면 장인정신에 입각해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은 물건을 만들어가는 전자의 방향을 선택해야 한다. 최근엔 진정한 명품을 찾자는 움직임에 조용히 자기의 자리를 지키며 브랜드 철학을 지켜가는 럭셔리 브랜드를 일컫는 ‘조용한 럭셔리(Quiet Luxury)’란 말도 등장했다. 몇 년 전까지 합리적인 가격대의 명품을 칭할 때 사용했던 '어포더블(affordable)'이란 말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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