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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소아과·외과 의사 미달에…'모교출신 쿼터제' 완화 추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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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의료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뉴스1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의료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뉴스1

교육부가 소아과·외과·산부인과 등 의사 미달 사태를 겪는 필수의료분야 공백을 메꾸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교수 임용 쿼터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교수 임용 쿼터제는 대학이 모교 출신들만 채용하려는 ‘순혈주의’를 막기 위해 특정 대학 출신이 신규 채용 인원의 3분의 2를 넘지 못하도록 한 제도다.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의사 모집이 어려운 필수의료분야에는 임용 쿼터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나왔다.

30일 교육계에 따르면 교육부는 ‘대학교원 채용의 특정대학 출신 비율 개선 방안’과 관련한 연구에 착수했다. 교육부는 “국립 의과대 소아청소년과, 외과, 산부인과 등 수련의 부족에 따라 특정대학 출신 비율 개선 요구가 지속되고 있다”며 “특정대학 출신 비율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점 및 제도 개선 필요성을 도출하고, 제도 개편 방향성을 제시할 것”이라고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임용 쿼터제 완화 범위를 의대 필수의료분야로 한정할 것인지, 전체 학과로 확대할지 등 다양한 안을 살펴보는 단계”라고 말했다.

“임용 쿼터제로 실력·의지 있는 모교 출신 교수 못 키워”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인력난에 시달리는 필수의료분야에선 임용 쿼터제가 완화되면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일 수 있다는 분위기다. 예를 들어 지금은 지방의 한 의대 외과에서 교수 3명을 모집할 경우, 1명 이상은 무조건 타 대학 출신으로 임용해야 한다. 모교 출신 교수만 2명 선발했다면, 다음 채용에서는 반드시 타 대학 출신을 선발해야 한다. 이 때문에 채용 인원이 적은 대학병원이나 교수 임용이 어려운 지방 의대·필수의료학과는 아예 신규 임용 공고조차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임용 쿼터제를 어기고 교수를 선발하면 교육부 감사를 통해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전남의 한 대학병원 외과 교수는 “특정학교 출신이 독점하는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쿼터제를 둔 것은 이해하지만, 지금은 이런 규제 때문에 오히려 실력과 의지가 있는 모교 출신 의사를 키우기 어렵다”며 “특히 지방대는 타교 출신이 교수로 오려고 하지도 않는데, 임용 쿼터제 때문에 모교 출신 교수조차 뽑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된다”고 했다. 서울의 한 소아과 교수는 “모교 대학병원 교수가 되지 못하면 다른 대학에 가느니 개업하겠다는 사람이 많다”며 “임용 쿼터제가 완화되면 익숙한 모교에 남고자 하는 인력이 더 늘어나고 인력이 부족한 학과도 전임의·전공의를 더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순혈주의 우려, 필수의료분야 외엔 신중하게 검토해야”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순혈주의 부활’과 같은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특히 의대는 모교 출신 교원 임용 비율이 다른 학과에 비해 높은 편이다. 교육부가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한양대 의과대학의 모교 출신 교원 비율은 63%로 전체 모교 출신 교원 비율(41%)보다 높다. 부산·경남·전북·전남·충남대 등도 의과대학의 모교 출신 교원 비율이 전체 대학 모교 출신 교원 비율보다 두 배가량 많다.

전북의 한 의대 교수는 “교수 경쟁이 다른 학과에 비해 덜 치열한 데다가, 인턴부터 시작해 오랜 시간 함께 일한 모교 출신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쿼터제가 사라지면 타교 출신 채용은 거의 없어질 것이고, ‘그들만의 리그’로 채용 분위기가 흘러가면 장기적으로 의료 경쟁력이 더 악화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필수의료 이외 분야까지 쿼터제를 완화하는 것은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의료계 “환경 개선 없이 필수의료 공백 메울 수 없어”

지난 25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들이 공공의대 신설과 의대 정원 확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5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들이 공공의대 신설과 의대 정원 확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교육부·복지부는 규제 완화와 함께 의대 정원 확대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계에선 필수의료분야 처우 개선 없이는 ‘백약이 무효’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젊은의사협의체 서연주 대표는 “필수의료분야는 다른 과와 급여는 물론 삶의 질 차이도 크고 심지어 소송 위험도 크다 보니 젊은 의사들이 들어오려 하지 않는다”며 “기본적인 환경을 개선하지 않고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은 왜곡된 시스템을 더 안 좋게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의대 정원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측은 “우리나라 의료공백의 핵심은 환자를 치료할 의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과 그나마 있는 의사 인력도 인기과 및 특정 지역에 쏠려있다는 점”이라며 “18년째 3058명으로 묶여 있는 의대 정원을 대폭 확충하고, 권역별 공공의대를 신설해 최소 1000명 이상 의대 정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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