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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부산의 기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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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원석 기자 중앙일보 기자
장원석 증권부 기자

장원석 증권부 기자

‘기세(氣勢)’는 기운차게 뻗치는 모양이나 상태를 뜻한다. 스포츠에서 경기 흐름을 설명할 때 자주 쓰인다. 이 단어가 올해는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응원 문구가 됐다. 이런저런 설명 없이 백지 위에 큼지막하게 쓴 ‘기세’ 두 글자를 관중석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출발점은 구단 유튜브에 올라온 한 영상이었다. “마운드에서 어쩔 수 없는 긴장감을 어떻게 이겨내느냐”는 한 신인 투수의 질문에 베테랑 투수 김상수는 “기세”라고 간단히 답했다. 이어 “홈런 맞는다고 안 죽는다. 두려워하지 말고 즐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이언츠는 야구를 ‘잘’하는 팀이 아니다. 10개 구단 중 우승한 지 가장 오래된 팀이지만 이름 자체가 비효율 야구를 뜻하기도 한다. 오죽하면 ‘홈런 치고 부산갈매기 한 번 부른 뒤 역전당하는 야구’라는 말이 있을까. 그랬던 자이언츠가 올해는 강팀 SSG·LG와 1위 경쟁을 하고 있다. 6월이 됐으니 봄에만 잘한다는 ‘봄데’란 조롱도 이번엔 안 통한다.

뜯어보면 더 신기하다. 팀 타율은 중간이고, 홈런은 가장 적은데 득점권 타율이 2위다. 기회 때 집중했다는 의미다. 실책 역시 10개 구단 중 가장 적다. 화끈하지만 이기는 야구와 거리가 멀었던 팀이 이례적인 효율 야구를 선보이고 있다. 적어도 현재까진 그렇다.

자이언츠의 최근 5년 성적은 7위-10위-7위-8위-8위였다. 올 시즌을 앞두고 이대호라는 수퍼스타가 은퇴했지만, 그의 대체재는 없었다. 대신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핵심 포지션을 보강했고, 다른 팀이 재계약을 꺼린 노장 선수를 대거 영입해 빈틈을 메웠다. 오히려 이게 한두 명의 스타만이 아니라 대체로 잘하는 팀으로 변신하는 계기가 됐다.

자이언츠의 성적이 좋으니 ‘구도(球都)’ 부산도 들썩이는 모양이다. 부산은 올해 야구보다 중요한 결전을 앞두고 있다. 오는 11월 2030년 세계박람회(엑스포) 개최지가 결정되는데 사실상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와 2파전이다. 사우디의 막강한 자본력을 고려하면 쉽지 않은 승부였지만, 많이 추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객관적인 전력이 앞서는 팀과 싸울 때 필요한 건 기세, 상대가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것도 기세다. 엑스포 유치전에서도 역전승이 나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