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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불이 사랑에 빠지는 세계 그려낸 픽사…"韓부모님께 배운 다양성의 가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디즈니·픽사 장편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의 피터 손(왼쪽) 감독과 이채연 애니메이터가 30일 서울 용산CGV에서 열린 내한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스1

디즈니·픽사 장편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의 피터 손(왼쪽) 감독과 이채연 애니메이터가 30일 서울 용산CGV에서 열린 내한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스1

“저희 어머니, 아버지는 영화 제작 기간 중에 돌아가셨지만, 제가 자라면서 그분들께 배운 모든 것이 여기에 들어있습니다. 한국에서 이 영화를 공유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엘리멘탈’(6월 14일 개봉)을 연출한 피터 손(한국명 손태윤) 감독은 30일 내한한 자리에서 자신의 부모님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한인 이민 2세인 그는 ‘굿 다이노’(2016)를 연출하며 디즈니·픽사 사상 최초의 동양계 감독 자리에 오른 데 이어, 7년 만에 자신의 두 번째 연출작을 들고 고국을 찾았다. 이날 서울 용산구 한 극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는 손 감독과 함께 작품에 참여한 이채연 애니메이터도 함께 자리했다.

영화 '엘리멘탈' 스틸컷.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영화 '엘리멘탈' 스틸컷.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픽사의 27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인 ‘엘리멘탈’은 세상을 구성하는 4원소, 물·불·흙·공기가 함께 사는 도시가 있다는 상상에서 출발하는 작품이다. 장난감(‘토이 스토리’)부터 머릿속 감정들(‘인사이드 아웃’)까지 살아 움직이게 했던 픽사가 이번엔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 원소들의 세계를 창조해낸 것이다. 4원소가 모여 사는 ‘엘리멘트 시티’에서 불답게 열정적이고 다혈질인 ‘앰버’가 물답게 유연하고 감성적인 ‘웨이드’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성장해가는 이야기가 풍성한 비주얼로 펼쳐진다.

픽사 최초 韓 감독, 이번엔 물·불·흙 살아 숨쉬는 세계 창조

영화 '엘리멘탈' 스틸컷.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영화 '엘리멘탈' 스틸컷.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피터 손 감독은 원소들이 사는 세계를 애니메이션화 하게 된 계기로 화학 수업 시간에 본 '주기율표'를 꼽았다. 그는 "주기율표의 한칸 한칸이 여러 가족들이 사는 아파트처럼 보였다"고 돌이켰다.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피터 손 감독은 원소들이 사는 세계를 애니메이션화 하게 된 계기로 화학 수업 시간에 본 '주기율표'를 꼽았다. 그는 "주기율표의 한칸 한칸이 여러 가족들이 사는 아파트처럼 보였다"고 돌이켰다.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기발한 착상만큼이나 4원소들의 속성을 형상화한 디테일 하나하나가 영화를 보는 내내 눈을 즐겁게 한다. 예컨대 ‘흙’들은 ‘물’과 만나면 머리에서 나뭇가지가 자라나고, 겨드랑이에서 꽃을 피워내기도 한다. ‘불’ 캐릭터들은 숯을 간식처럼 먹으면서 몸집을 유지하고, 손으로 모래를 녹여 유리를 만들거나 쇠를 자유자재로 녹일 수도 있다. 물·불·공기는 형체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만큼, 건물 사이 비좁은 틈이나 벽돌 사이로 추격전을 벌이는 것도 엘리멘트 시티에선 가능한 풍경이다.

‘엘리멘탈’에서 3D 애니메이션을 담당한 이 애니메이터는 “이 작품에서는 원소들의 움직임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며 “모든 원소들이 가만히 멈춰있지 않고 항상 움직이는 상태여야 하는 설정이 가장 난관이었다”고 말했다. “불이 일렁거리는 모습이나 항상 공중에 둥둥 떠 있는 공기의 속성을 어떻게 더 매력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연구가 많이 필요했어요. 물 캐릭터들의 경우 물 풍선이 참고자료였는데, 그렇다고 젤리나 탱탱볼처럼 보이지 않도록 해야 했고요.”

영화 '엘리멘탈' 스틸컷.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영화 '엘리멘탈' 스틸컷.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픽사의 영화들이 대부분 그렇듯, ‘엘리멘탈’ 역시 이런 재기발랄한 상상의 세계를 쫓아가다 보면 어느새 현실에도 고스란히 적용되는 뭉클한 메시지가 마음을 건드린다. 인간 세계와 마찬가지로, 엘리멘트 시티에도 4원소들 간 차별과 배제가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주인공 ‘앰버’로 대표되는 불 종족은 모든 걸 불태워버릴 수 있는 특성 탓에, 다른 원소들로부터 떨어져 ‘파이어 타운’이라는 자신들만의 외딴 마을을 이뤄 살아간다. 마치 같은 미국에 살아도 코리아타운, 차이나타운 등에 모여 사는 이민자들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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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설정은 미국 뉴욕에서 이민 2세로 자란 손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가 대폭 녹아든 부분이다. 손 감독은 “뉴욕에서 자라면서 외국인 혐오와 인종차별을 경험한 기억을 갖고 있다”며 “이민자 구역을 나타내는 ‘파이어 타운’을 통해 어떻게 다양한 공동체가 서로의 차이점을 극복하며 이해할 수 있는지를 담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서로 절대 섞일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불(앰버)과 물(웨이드)이 서로 공존할 방법을 찾아내는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법 같은 순간이다.

영화 '엘리멘탈' 스틸컷.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영화 '엘리멘탈' 스틸컷.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앰버의 부모님이 딸을 위해 고국을 떠나 엘리멘트 시티로 이주한 점, 이주 후 식료품점을 운영하며 헌신적으로 생계를 꾸려간 점 등도 실제 손 감독의 부모님을 모델로 한 설정이다. 그는 “1960년대 말 미국으로 이주한 부모님의 이야기를 들은 픽사의 동료들이 ‘그게 바로 네가 영화로 만들어야 할 이야기야!’라고 말해준 것에서 이 작품이 시작됐다”며 “부모님은 영어를 잘 못하셨지만, 식료품점에 오는 다양한 배경의 손님들을 이해하고 도우려고 노력했다. 그들에게 배운 다양성의 가치를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영화는 부모의 희생에 감사하면서도 그로 인한 부담감 때문에 진정한 자아를 찾지 못한 자녀 세대의 모습 등, 굳이 이민자가 아니더라도 공감할 수 있는 주제들도 풀어낸다. 손 감독은 자신의 부모님도 처음엔 애니메이션의 길을 걷는 걸 반대했던 일화를 들려주기도 했다. 그는 “미국에서의 테스트 상영 당시 이민자의 이야기를 아버지와 딸의 관계로 녹여낸 것이 감동적이라는 피드백이 많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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