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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의 노경은이 마운드에서 버티는 법

중앙일보

입력

SSG 노경은. 뉴스1

SSG 노경은. 뉴스1

1984년생 오른손 투수 노경은은 최근 몇 년 사이 야구를 그만 둘 뻔한 위기만 몇 차례 있었다. 먼저 2018년 말. 생애 처음으로 FA 자격을 얻었지만, 계속된 협상 결렬로 결국 미아가 됐다. FA 권리도 누리지 못한 채 내몰린 은퇴 기로. 노경은은 포기하지 않았다. 미국 마이너리그 진출을 위해 트라이아웃에 참가하는 한편, 전국 각지를 돌며 계속 몸을 만들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2019년 9월. 새로 취임한 롯데 자이언츠 성민규 단장이 노경은과 대화 창구를 열었고, 같은 해 11월 2년짜리 FA 계약을 맺었다.

원소속팀으로 돌아온 노경은은 2020년과 2021년 선발과 불펜을 오가는 전천후 투수로 뛰었다. 그러나 시련은 다시 찾아왔다. 2021년 말 롯데와 재계약이 불발됐다. 마운드에서 계속 자리를 잃어가던 30대 후반 베테랑 투수에게 날아온 방출 통보였다. 이제는 정말 야구를 그만둬야 하나 마음먹었던 순간. 예상치 못한 손길을 내민 곳이 있었다. SSG 랜더스였다. 노경은에게 입단 테스트를 제안했고, 강화 2군 구장에서 보름간 진행된 테스트를 통해 다시 유니폼을 입었다.

누구보다 힘들게 현역 생활을 연장한 노경은은 요새 제2의 전성기를 달리고 있다. 지난해 41경기에서 12승 5패 7홀드 평균자책점 3.05로 활약하며 SSG의 통합우승을 이끌더니 올 시즌에는 핵심 필승조로 뛰면서 20~30대 후배들 못지않은 실력을 뽐내고 있다. 최근 만난 노경은은 “모든 것이 내 공이라고 할 수 없다. 항상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숨은 곳에서 도와주는 트레이닝 코치와 트레이너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내가 어딘가 불편함을 느낄 때면 슬며시 다가와 치료를 해주는 세심함이 있어 힘 있는 공을 던질 수 있다”고 웃었다.

노경은은 올해 한국 나이로 마흔이다. 입단 동기들은 대부분 유니폼을 벗었고, 남은 선배들도 거의 없지만 여전히 위력적인 공을 던지고 있다. 시속 140㎞대 후반의 직구는 물론 슬라이더와 포크볼, 싱커, 커브 등 다양한 변화구의 구종을 섞으며 타자를 제압한다. 은퇴 위기로 내몰렸던 몇 년 전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란 말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이유다. 노경은은 “그때를 생각하면 야구의 소중함이 새삼 느껴진다. 또, 정말 힘들게 현역 생활을 연장하는 선수들의 마음도 늘 이해가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마흔 살 투수가 1군 마운드에서 살아남는 법은 무엇일까 비결을 묻자 “공부”라는 대답이 먼저 나왔다. 노경은은 “요새는 피칭 매커니즘과 관련된 정보가 정말 많지 않나. TV는 물론 유튜브에서도 관련 영상을 쉽게 찾을 수 있다”면서 “중요한 점은 결국 원리다. 몸통 꼬임부터 팔 스윙과 릴리스까지 어떤 원리로 공을 던지는지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SSG 노경은. 연합뉴스

SSG 노경은. 연합뉴스

노경은은 이처럼 다양한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선수다. 대표적인 것은 바로 채식 도전. 2020년 1월 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채식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육류와 어패류는 먹지 않고 달걀까지만 섭취하는 ‘락토오보 베지테리언’이 됐다. 운동선수가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위험한 시도이기도 했지만, 내장지방이 빠지고 몸이 가벼워지면서 오히려 체력이 좋아졌다. 1년 반 정도 채식을 했다는 노경은은 “채식을 해서 살은 붙었는데 근력이 조금 약해졌다. 그래서 근육을 다시 기르고 싶어서 식단을 바꿨다. 하지만 요새도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하루 이틀 정도 채소만 먹는다. 그러면 몸이 가벼워진다”고 설명했다.

올 시즌 벌써 12홀드를 쌓아 부문 1위를 달리고 있는 노경은은 “지금 우리는 위닝시리즈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 상위권을 유지하려면 결국 3연전마다 우위를 점해야 한다는 마음이다”면서 “몸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앞으로 몇 년은 더 던질 수 있다. 꼭, 야구를 오래 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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