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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 없고 선장만 있다…'나홀로 문어배'가 장악한 이 동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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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 1일 찾은 강원 고성군 현내면 대진항이 2t 미만 문어배로 가득차 있는 모습. 어민들이 줄어들면서 고성군 항구마다 '나 홀로 조업'이 가능한 문어배가 크게 늘었다. 박진호 기자

지난 1일 찾은 강원 고성군 현내면 대진항이 2t 미만 문어배로 가득차 있는 모습. 어민들이 줄어들면서 고성군 항구마다 '나 홀로 조업'이 가능한 문어배가 크게 늘었다. 박진호 기자

선원 구하기 '하늘의 별 따기' 어선 판매 

강원 고성군 현내면 대진항에서 어업을 해 온 박정일(68)씨는 지난달 중순 18년간 정 들었던 어선을 팔았다. 박씨의 어선은 3.67t급으로 최소 2명은 타야 조업이 가능하다. 그물 등 장비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함께 일하던 아내가 지난해 7월부터 아프기 시작하면서 출항할 수 없게 됐다.

생계를 위해 계속 배를 타고 싶었지만, 선원을 구하기 어려웠다. 또 3주에 한 번씩 도시에 있는 병원에 가야 해 어쩔 수 없이 배를 팔기로 했다. 지난해 7월 1억9000만원에 배를 내놨는데 9개월 동안이나 팔리지 않았다. 시세보다 2000만원을 낮췄더니 겨우 팔렸다.

그는 배를 팔고 나서 다른 배에서 선원으로 일하고 있다. 박씨는 “지역에 사람이 없다 보니 선원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며 “요즘 혼자서도 조업이 가능한 1t급 문어배만 선호하다 보니 배를 파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지난 1일 찾은 강원 고성군 현내면 대진항이 2t 미만 문어배로 가득차 있는 모습. 어민이 줄면서 고성군 항구마다 '나 홀로 조업'이 가능한 문어배가 크게 늘었다. 박진호 기자

지난 1일 찾은 강원 고성군 현내면 대진항이 2t 미만 문어배로 가득차 있는 모습. 어민이 줄면서 고성군 항구마다 '나 홀로 조업'이 가능한 문어배가 크게 늘었다. 박진호 기자

매년 '40명씩' 어민들 바다 떠나 

29일 고성군과 통계청 등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고성지역 어업종사자 수는 782명이다. 2010년 1171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10년 사이에 389명(33%)이나 줄었다. 매년 어민 40여명이 바다를 떠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선원을 구할 수 없다 보니 상당수 어민이 이른바 ‘나 홀로 조업’에 나서고 있다. 실제 이 시기 고성군 어선 수는 699척으로 총 어업종사자 수(782명)와 큰 차이가 없다. 배도 5t 미만 소형 선박이 578척이다. 여기에 고령화도 심각해 782명 중 64%(500명)가 60대 이상이다. 고성군 관계자는 "고령 어민이 위험을 무릅쓰고 나 홀로 조업을 하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5t급 어선으로 조업을 하던 김모(68)씨도 최근 나 홀로 조업을 위해 배를 바꿨다. 그는 올해 초 배를 팔고 1.6t급 문어배를 샀다. 오랜 기간 함께 합을 맞춰 온 선원이 건강상 이유로 그만둔 뒤 새로운 선원을 구하지 못해서다. 외국인 선원을 써볼까도 고민했지만, 인건비에 숙식까지 제공하려면 나가는 돈이 많아 포기했다.

김씨는 “선원이 있을 땐 몸이 아파도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하고 인건비 부담도 컸다”며 “문어배를 탄 뒤부터 혼자 조업을 하니 오전 4시에 나가 오전 10~11시 사이에 들어올 수 있고 몸이 아프면 쉴 수도 있어 마음이 편하다. 요즘 누가 힘든 뱃일을 하냐”고 말했다.

지난 1일 찾은 강원 고성군 현내면 인근 도로 변에 있는 상점. 금강산 관광 중단 이후 손님이 없어 문을 닫은 상태다. 박진호 기자

지난 1일 찾은 강원 고성군 현내면 인근 도로 변에 있는 상점. 금강산 관광 중단 이후 손님이 없어 문을 닫은 상태다. 박진호 기자

지난 1일 찾은 강원 고성군 현내면 인근 도로 변에 있는 상점. 금강산 관광 중단 이후 손님이 없어 문을 닫은 상태다. 박진호 기자

지난 1일 찾은 강원 고성군 현내면 인근 도로 변에 있는 상점. 금강산 관광 중단 이후 손님이 없어 문을 닫은 상태다. 박진호 기자

대진항 '나 홀로 문어배' 100척 넘어 

지난 1일 찾은 고성군 현내면 대진항엔 1.6~1.8t급 어선이 항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 배들은 모두 나 홀로 조업이 가능하다. 대진어촌계에 따르면 대진항에서 조업을 나가는 나 홀로 문어배는 100척이 넘는다. 진맹규(67) 대진어촌계장은 “10여년 전에는 40척 정도이던 문어배가 100척을 넘겼고 선원이 여럿 필요한 배는 절반 이하로 줄어 현재는 20척도 안 된다”고 말했다.

고성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거진항도 상황이 비슷하다. 거진어촌계에 따르면 거진항에서 조업을 나가는 문어배는 130척 정도다. 10년 전 50척 미만인 것과 비교하면 80척 이상 늘었다. 비슷한 기간 29t 이상급 오징어잡이 배는 60척에서 10척 수준으로 줄었다고 한다.

금강산 관광 중단 이후 폐허가 된 동해안 최북단 강원 고성군 현내면 명파리 마을. [중앙포토]

금강산 관광 중단 이후 폐허가 된 동해안 최북단 강원 고성군 현내면 명파리 마을. [중앙포토]

금강산 관광 중단도 인구 감소에 영향 

그나마 남아있는 대형 선박도 인구 감소와 고령화 영향으로 기존 절반도 안 되는 5~8명을 태우고 조업에 나서고 있다. 황동수(70) 거진어촌계장은 “젊은 사람은 지역을 떠나고 기존 어민은 나이가 들어 배를 탈 사람이 없다”며 “혼자 할 수 있는 건 문어배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어민뿐 아니라 고성군 전체 인구는 10년 사이 10% 이상이 줄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3년 말 기준 3만398명이던 이 지역 인구는 2018년 2만8144명으로 3만명대가 붕괴했다. 이후 점점 줄어 지난 4월 말 기준 2만7157명으로 3241명(10.7%)이 줄었다.

고성군 인구 감소는 금강산 관광 전면 중단 영향도 한몫했다.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당시 53ㆍ여ㆍ서울)씨가 북측 초병에게 총격을 받아 숨졌다. 정부는 다음날인 12일부터 금강산 관광을 전면 중단했다. 이후 고성군 최북단 마을부터 붕괴하기 시작했다. 고성군에 따르면 2008년 금강산 관광 중단 이후 2012년까지 5년간 고성군에서 휴ㆍ폐업한 업소는 386곳에 달했다.

금강산 관광 중단 이후 폐허가 된 동해안 최북단 강원 고성군 현내면 명파리 마을. [중앙포토]

금강산 관광 중단 이후 폐허가 된 동해안 최북단 강원 고성군 현내면 명파리 마을. [중앙포토]

"산업구조 패러다임 바꿔야" 
전문가들은 소멸 지역 문제점 중 하나로 산업 구조가 과거 방식에만 머물러 있어 신규 고용 창출 등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역 소멸을 해결하려면 기존 산업 구조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장희순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지역 소멸을 막으려면)농촌에 존재하는 모든 유·무형 자원을 바탕으로 농·어업과 특산품 제조가공(2차산업)·유통판매, 문화, 체험, 관광, 서비스(3차산업) 등을 연계한 6차 산업을 넘어야 길이 보일 것”이라며 “지역에 특화된 산업 규모를 대형화·집단화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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