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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1.3배인데 신호등 딱 3개…이디야조차 없는 '내륙의 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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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경북 영양군 일월면 용화광산 선광장 터 모습. 1939년 만들어 40여 년간 용화광산의 선광장으로 운영했던 곳이다. 지금은 옛 흔적만 남겨져 있고 바로 앞에 일월산자생화공원이 조성돼 있다. 김정석 기자

경북 영양군 일월면 용화광산 선광장 터 모습. 1939년 만들어 40여 년간 용화광산의 선광장으로 운영했던 곳이다. 지금은 옛 흔적만 남겨져 있고 바로 앞에 일월산자생화공원이 조성돼 있다. 김정석 기자

지난 8일 경북 영양군 일월면 용화2리. 인적을 찾아보기 힘든 깊은 산골 등성이에 누런 색깔의 거대 구조물이 눈에 띄었다. 고대 유적이나 군사 요새처럼 생긴 석재 구조물은 중간중간 동굴처럼 구멍이 뚫려 있었다. 적재 공간으로 보이는 이 구멍은 오랜 기간 사용을 하지 않아 곳곳에 균열이 생겼다.

이곳은 1939년 만든 뒤 40여년간 운영했던 용화광산의 선광장(選鑛場) 터다. 선광장이란 광석에서 가치가 낮거나 쓸모없는 것을 골라내는 일을 하는 곳이다. 용화광산에서는 금·은·구리·납 등 광물을 캐냈다. 용화광산 선광장은 15~28도 경사가 진 산자락을 따라 계단식으로 배치돼 있다. 국내에 남아 있는 유일한 근대 선광 시설이기도 하다.

사람 많아 ‘대티골’이라 불린 곳, 대부분 떠나

한때 용화광산 앞 마을 주민은 1200명에 달했다. 영양군 전체에서 광산업에 종사하는 인구까지 합치면 1만명 정도 됐다. 전국 각지에서 용화광산으로 몰려들었다.
용화광산이 있던 동네 이름도 ‘사람이 많고 큰 골짜기’라는 의미인 ‘대티골’이었다. 1940년대 발전소가 건설돼 경북에서 전기가 가장 먼저 들어온 곳도 영양이다. 해방 후에도 광산은 계속 운영했지만, 채산성 악화로 1976년 문을 닫았다.

경북 영양군 일월면 용화광산 선광장 터 모습. 1939년 만들어 40여 년간 용화광산 선광장으로 운영했던 곳이다. 김정석 기자

경북 영양군 일월면 용화광산 선광장 터 모습. 1939년 만들어 40여 년간 용화광산 선광장으로 운영했던 곳이다. 김정석 기자

30년 이상 용화2리에 산 김창훈(66) 이장은 “전국 각지에서 노동자들이 용화광산으로 몰려와 한때 북적였는데 광산이 문을 닫은 후 대부분 떠나 마을에는 현재 30여 명만 살고 있다”고 말했다.

70년대에만 해도 농업과 광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터전을 잡아 인구 7만여 명 규모였던 영양군은 이제 1만6000명 이하인 소도시로 쪼그라들었다. 인구 9000여 명인 울릉군을 제외하고 전국 228개 기초단체에서 가장 인구가 적다. 지난해 영양에서 태어난 출생아는 32명으로, 사망자(295명)의 10.8%수준이다. 경북 3대 오지로 꼽히는 BYC(봉화·영양·청송) 중 상황이 가장 나쁘다.

서울보다 1.3배 큰 곳에 인구 1만6000명 이하

서울시(605.24㎢)보다 1.3배 넓은 영양군(815.8㎢) 인구가 이렇게 적다 보니 낮에 면 소재지에서도 행인을 찾아보기 어렵다.

경북 영양군 입암면 면소재지에 사람이 없어 썰렁하다. 영양군에는 왕복 4차로 도로가 없고, 편도 1차로 또는 왕복 2차로 도로가 전부다. 김정석 기자

경북 영양군 입암면 면소재지에 사람이 없어 썰렁하다. 영양군에는 왕복 4차로 도로가 없고, 편도 1차로 또는 왕복 2차로 도로가 전부다. 김정석 기자

교통·의료·교육 등 인프라가 사라지고, 인프라가 부족하니 사람이 떠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다른 도시에서는 흔히 볼 수 있지만, 영양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도 꽤 있다. ▶소아과 병원 ▶4차로 도로 ▶4대 시중은행 ▶프랜차이즈 커피점 등이다.

영양읍에서 직장을 다니는 김민주(40)씨는 어린이날이었던 지난 5일 딸(3)과 병원 입원실에서 보냈다. 며칠 동안 호흡기 질환 증상을 보이던 딸이 이웃 지자체인 안동 시내 한 병원에 일주일간 입원했다.

김씨는 “영양군에는 소아과가 없어 아이가 아프면 안동까지 50㎞가 넘는 산길을 운전해서 가야 한다"며 "왕복 2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쉽게 병원에 가기 어렵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영양에 사는 신혼부부는 이런 일이 생기면 한 번쯤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해야 하나 생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북 영양군에는 철도와 고속도로가 없다. 영양군에서 가장 가까운 고속도로 나들목은 이웃 지자체인 청송군에 있는 동청송·영양나들목이다. 김정석 기자

경북 영양군에는 철도와 고속도로가 없다. 영양군에서 가장 가까운 고속도로 나들목은 이웃 지자체인 청송군에 있는 동청송·영양나들목이다. 김정석 기자

소아과 등 육아 인프라는 출산율과도 관련이 있다고 한다. 국무총리실 산하 육아정책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4월 기준 24개월 이하 영아 자녀가 있는 산모 608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거주지 인근 소아과 진료 서비스 수준이 높으면 산모 출산 의지가 강해지고 이사도 가지 않으려 한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구 감소→인프라 감소→인구 감소 악순환

교통 인프라가 열악한 점도 영양을 떠나는 큰 이유다. 영양군은 이른바 ‘교통 3무(無) 지역’으로 불린다. 철도와 고속도로, 왕복 4차로 도로가 없어서다. 영양군이 ‘내륙의 섬’이라는 오명을 쓴 이유다.

군청 소재지인 영양읍에서 가장 가까운 철도역은 자동차로 1시간가량 떨어져 있는 중앙선 안동역이다. 가장 가까운 고속도로 나들목(IC)은 이웃 지자체인 청송군에 있는 동청송·영양IC다. 워낙 교통량이 적다 보니 영양군 지역 전체를 통틀어 신호등은 3개뿐이다. 나머지는 신호등이 아닌 점멸등이다.

경북 영양군 입암면 흥구교차로 모습. 인구 1만6000명이 안 되는 소도시 영양군에는 흥구교차로를 포함한 교차로 3곳에만 신호등이 있다. 나머지는 신호등이 없거나 점멸등만 작동 중이다. 김정석 기자

경북 영양군 입암면 흥구교차로 모습. 인구 1만6000명이 안 되는 소도시 영양군에는 흥구교차로를 포함한 교차로 3곳에만 신호등이 있다. 나머지는 신호등이 없거나 점멸등만 작동 중이다. 김정석 기자

이밖에도 영양군에는 KB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 등 4대 시중은행 점포가 존재하지 않고, 이디야커피·스타벅스 등 국내 10대 커피 프랜차이즈(가맹점포 기준)가 없다. 영양군 관계자는 “인프라가 없는 상태에서 귀농·귀촌 정책을 펴기에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영양군은 지방소멸 위기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 기피하는 ‘님비(NIMBY·Not in my backyard)’ 시설인 양수발전소를 앞장서서 유치하려는 게 대표적이다. 양수발전소는 특정 시간대에 남는 전력으로 하부 댐의 물을 끌어올려 상부 댐에 저장한 후 전력공급이 부족한 시간에 공급한다.

님비시설 유치로 재기 노려

지난달 말 한국수력원자력이 영양군을 양수발전소 건설 후보지로 선정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영양군민은 유치 활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영양군은 한수원과 협력사 직원이 이주해 인구가 늘어나고, 150여 명이 일자리를 갖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 3일 경북 영양군 입암문화체육센터에서 양수발전소 유치 입암면민 결의대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영양군

지난 3일 경북 영양군 입암문화체육센터에서 양수발전소 유치 입암면민 결의대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영양군

역시 님비 시설로 꼽히는 교정시설 유치도 영양군 역점사업이다. 영양군은 2021년 3월부터 법무부와 관계기관을 수차례 방문해 시설 유치의 타당성을 알렸다. 영양군은 교정시설을 유치하면 인구가 1000명 정도 유입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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