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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신고 갔더니 "한번도 안해봐서요"…당황한 공무원의 고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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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지난 3일 충북 단양군 단양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제1회 '작은 학교들의 큰 운동회'. 이 운동회는 단양지역 10개 초등학교 가운데 학생이 50명 미만인 7개 초등학교가 참여했다. 7개 초등학교 학생들이 모두 모였지만 총인원은 228명에 불과했다.사진 단양교육지청

지난 3일 충북 단양군 단양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제1회 '작은 학교들의 큰 운동회'. 이 운동회는 단양지역 10개 초등학교 가운데 학생이 50명 미만인 7개 초등학교가 참여했다. 7개 초등학교 학생들이 모두 모였지만 총인원은 228명에 불과했다.사진 단양교육지청

‘응애’ 소리가 반가운 단양…축하 현수막 게시 

“죄송합니다. 출생신고 업무를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서요…. 나머지 직원도 아는 분이 없어요.”

충북 단양군에 사는 유모(32)씨는 지난해 1월 단성면사무소에 자녀 출생신고를 문의했다가 이같은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유씨에 따르면 업무 담당자는 관련 절차를 몰랐다. 출생신고 때 필요한 준비물과 작성 서류, 지원 혜택 등을 묻자 머뭇거렸다. 유씨는 “해당 직원은 출생아 수가 워낙 적다 보니 업무를 익힐 기회가 없었다고 고백했다”며 “오전 방문을 미루고, 오후에 면사무소에 들렀더니 직원 서너명이 나와 출생신고와 함께 양육수당, 첫 만남 이용권 등 각종 서류 작성을 도와줬다”고 말했다.

단성면사무소 관계자는 “수개월 동안 출생신고 처리를 한 건도 못하고 자리를 바꾸는 직원이 허다하다”며 “신생아 보는 게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라고 말했다. 실제 단성면에서는 올해 들어 지난 4월 말까지 신생아가 한 명도 태어나지 않았다. 지난해 2명, 2021년 3명이 태어났다. 단양군 8개 읍·면 중 단양·매포읍을 제외한 면 단위 마을은 한해 태어난 신생아가 2~4명 수준에 불과하다. 대강면과 영춘면·어상천면은 지난해 출생아 수가 0명이다.

김상규 매포읍 부읍장 지난 10일 읍사무소 앞에서 ‘아기 탄생 축하 행복 주머니'를 보여주고 있다. 이 주머니에는 매포읍 소재 기업이 마련한 70만원 상당 단양사랑상품권이 들어있다. 최종권 기자

김상규 매포읍 부읍장 지난 10일 읍사무소 앞에서 ‘아기 탄생 축하 행복 주머니'를 보여주고 있다. 이 주머니에는 매포읍 소재 기업이 마련한 70만원 상당 단양사랑상품권이 들어있다. 최종권 기자

영춘면 등 3개면 지난해 출생아 수 ‘0명’ 

지난 1월 영춘면에서는 2년 만에 아기가 태어나 온 마을이 축제 분위기였다. 지역 기관단체장들이 면사무소에 모여 아이 부모에게 꽃다발과 축하금을 줬다. 축하 현수막이 곳곳에 걸렸다. 이진희 영춘면 총무팀 주무관은 “출생신고를 하러 온 부모를 보고, 이 소식을 영친회 등 민간단체에 알렸다”며 “각 단체에서 모은 출산축하금 220만원을 드리고, ‘영춘면 보물 1호’라고 쓴 현수막 3장을 면 소재지와 마을 입구에 걸었다”고 말했다.

단양군은 충북에서 인구가 가장 적다. 2019년 8월 3만명이 붕괴한 뒤 꾸준히 줄어 지난 4월 기준 2만7685명이 산다. 지난 10일 찾은 매포읍 거리는 한산한 분위기였다. 시멘트 공장이 있어서 단양군에서 제법 유동인구가 많은 편에 속하지만, 전통시장을 비롯한 시내 상점에는 젊은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다. 매포읍에는 5000여 명이 산다.

장춘봉 매포읍청년회장은 “30여 년 전만 해도 매포읍은 2만~3만 명이 살았지만, 인구가 줄면서 지금은 오후 7~8시만되면 인적이 끊기다시피 한다”며 “단양은 관광지가 많아 놀러 오는 사람은 많은데 교육이나 의료시설이 열악해 정착하는 인구는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지난 10일 충북 단양군 매포읍 도로. 거리에 사람이 없어 썰렁하다. 최종권 기자

지난 10일 충북 단양군 매포읍 도로. 거리에 사람이 없어 썰렁하다. 최종권 기자

의료·교육 취약…7개 초교 합동 운동회도 

단양군은 2015년 하나 남았던 종합병원이 문을 닫으면서 응급환자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이 없다. 큰 병을 치료하려면 인근 제천이나 강원 원주로 나가야 한다. 산부인과가 없어서 외지에서 출산하고 돌아온다. 매포읍청년회는 출산율 높이기에 도움을 주려고 지난해부터 자체 회비로 출산 가정에 10만원 상당 상품권을 주고 있다. 장 회장은 “매포읍에서 신생아 옷을 살 곳이 마땅치 않아 농협상품권과 이마트 상품권을 선물로 주고 있다”며 “자녀 교육 때문에 제천에 집을 마련하고 출퇴근하는 주민이 늘고 있다”고 했다.

지난 3일 단양에선 소규모 초등학교 합동운동회가 열려 눈길을 끌었다. 단양지역 10개 학교 중 학생 50명 미만 7개 초교가 참여했다. 총인원은 228명에 불과했다. 학생 수가 적다 보니 신규 학원 설립도 뜸한 편이다. 최근 단양교육지원청은 5년 만에 피아노 학원 설립 인가를 내줬다. 김현지 단양교육지원청 주무관은 “너무 오랜만에 학원 설립 신청이 들어오는 바람에 인근 제천시교육청을 찾아가 법률상 요건 외 담당자가 확인해야 할 사항 등을 배워온 뒤에야 인가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지난 9일 충북 괴산군 불정면 목도시장. 사람 발길이 뜸해 적막감이 감돈다. 최종권 기자

지난 9일 충북 괴산군 불정면 목도시장. 사람 발길이 뜸해 적막감이 감돈다. 최종권 기자

텅 빈 목도시장, 시장길 240m에 손님 10명도 없어 

대표적인 인구 감소 지역인 충북 괴산에선 인구 유출과 고령화로 인한 상권 쇠퇴가 눈에 띄었다. 지난달 기준 괴산 인구는 3만6779명으로 5년 전(3만8500명)보다 4.5% 줄었다. 65세 이상 인구가 38.5%를 차지한다.

지난 9일 찾은 괴산 불정면 목도시장 안 점포는 한낮임에도 문 닫은 식당이 수두룩했다. ‘ㄱ’자 형태로 240여 m가량 이어진 길을 걷는 동안 마주친 손님이 10명이 채 되지 않았다. 노인 몇 명이 의자에 앉아 있거나, 종묘상에 들러 농약이나 모종을 사는 모습이 보였다. 한 종묘상은 “식당은 문 닫은 곳이 많다”고 했다.

칼국숫집을 운영하는 송모(70)씨는 “몇 년 전 면소재지에 있던 병원이 폐업하면서 약국도 덩달아 문을 닫았다”며 “괴산읍내로 진료를 떠나는 노인이 많아지면서 시장을 찾는 발길이 확 줄었다”고 했다. 송씨는 폐업을 고려 중이다. 그는 “오늘도 손님을 한 명도 받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12년간 불정면에서 장사하는 박모(69)씨는 “목도나루 인근에 캠핑장이 있어서 주말에 외지인이 많이 오지만, 음식을 다 싸 와서 시장엔 들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9일 충북 괴산군 불정면 목도시장. 항상 북적여야할 시장에 사람이 없어 썰렁하기만 하다. 최종권 기자

지난 9일 충북 괴산군 불정면 목도시장. 항상 북적여야할 시장에 사람이 없어 썰렁하기만 하다. 최종권 기자

외지인 유치에 112억 들여 임대주택 건립 

괴산군은 외지인 유치를 위해 지난해 112억원을 들여 불정면과 사리·감물·청천·장연면에 행복보금자리 주택을 조성했다. 취학 아동을 둔 세대가 괴산군으로 이사 오면 지난해 기준 연세 144만원(월세 12만원)을 받고 임대했다. 보증금은 없다. 보금자리 주택 조성으로 초등생 63명을 포함해 198명이 전입했다. 불정보건지소 뒤편에 있는 행복보금자리 주택에도 지난해 4월 10가구가 입주했다. 목도초 학교지키미로 일하는 이모(86)씨는 “취학 아동을 둔 가족이 입주하면서 학교 유지에 도움이 된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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