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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 시동 잠그고 신상 공개…이런 법, 전문가 갸우뚱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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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4월 26일 오전 서울 마포구 마포경찰서에서 열린 '민생해결사 국민의힘이 간다, 음주운전 방지 현장 방문'에서 음주운전 방지 장치 시연을 하고 있다. 뉴시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4월 26일 오전 서울 마포구 마포경찰서에서 열린 '민생해결사 국민의힘이 간다, 음주운전 방지 현장 방문'에서 음주운전 방지 장치 시연을 하고 있다. 뉴시스

여야가 음주운전 방지 법안을 잇따라 쏟아내고 있다. 지난달 8일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에서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사망한 배승아(9)양 사건으로 여론의 관심이 커지자 정치권이 나선 것이다.

대표적인 게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의 민생 1호 법안인 음주 시동잠금장치법안(도로교통법 개정안)이다. 김 대표는 법안 발의에 앞서 직접 서울 마포경찰서를 방문해 시동잠금장치를 시연하는 등 공을 들여왔다. 지난 24일 행정안전위원회 소위원회는 김 대표 법안뿐 아니라 비슷한 내용의 법안 7개를 함께 심의했다.

음주운전 재범자 차량에 형광색의 특수번호판을 부착하자는 법안도 등장했다. 최연숙 국민의힘 의원은 음주운전으로 운전면허 취소·정지 처분을 2회 이상 받은 사람의 차량에 형광색 등 눈으로 확연히 식별 가능한 색을 칠한 특수번호판을 부착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냈다. 취소·정지 횟수에 따라 최소 6개월에서 최대 4년 동안 특수번호판을 달게 해 현재 40%대에 달하고 있는 음주운전 재범률을 획기적으로 낮추겠다는 것이다.

지난 3일에는 스쿨존에서 음주운전 인명사고 발생 시 가해자 신상을 공개하는 특정강력범죄특례법 개정안(윤창현 국민의힘 의원 대표발의)도 국회에 제출됐다. 현재 성 범죄자나 고액 체납자의 신상을 공개하듯이 음주운전 범죄자에게도 일종의 명예형을 가하는 내용이다. 2019년 9월 스쿨존 교통사고로 사망한 김민식(당시 9세)군 사고 이후 같은 해 12월 스쿨존 교통사고를 가중 처벌하는 ‘민식이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는데, 여기에 더해 음주운전 인명사고일 경우 신상정보까지 공개하자는 취지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음주운전을 죄악시하는 국민 여론에 따라 국회에서 강경 법안이 속출하고 있지만 일부 전문가는 현행법의 테두리 내에서 처벌을 강화하는 게 우선이라고 진단했다.

원혜욱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범죄 행위를 하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는 다는 인식이 확립돼야 하는데, 음주운전은 그렇지 않다”며 “성범죄의 경우 음주를 감경 사유에서 배제한 것과 같이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망 사고의 경우 감경 사유를 엄격히 적용하는 방안이 고려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경일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도 “단속을 강화하고 사고 시 강력한 처벌을 가하는 것이 새로운 법안을 발의하는 것에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이런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관리·감독 등을 위한 예산 문제가 뒤따른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음주 시동잠금장치법의 경우 운영 예산 마련이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저소득층 운전자에 대해서만 시동잠금장치 설치비용을 지원해 줄 경우 향후 5년간 52억~105억의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실제 국민권익위원회가 2021년에 이어 지난 2일에도 경찰청에 시동잠금장치 도입을 권고했지만 경찰청은 예산 확보 문제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임채홍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시동잠금장치법은 시동잠금장치 표준화가 선행돼야 하고, 실제 수집되는 데이터를 관리할 서버와 관리·감독에 나서는 공적 기관이 마련돼야 운영 가능하다”며 “이를 위해선 예산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김정화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도 “시동잠금장치의 장착과 제거, 유지보수 업무를 수행할 기관·업체 등을 지정·관리하기 위한 추가 행정력이 편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8년 11월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음주운전자의 처벌을 강화하는 이른바 ‘윤창호법’이 통과될 당시 이용주 당시 민주평화당 의원이 본회의 전 의원들에게 나눠준 쪽지. 임현동 기자

2018년 11월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음주운전자의 처벌을 강화하는 이른바 ‘윤창호법’이 통과될 당시 이용주 당시 민주평화당 의원이 본회의 전 의원들에게 나눠준 쪽지. 임현동 기자

음주운전이 지탄 대상은 맞지만 다른 범죄에 비해 과도한 처벌이 가해져 형평성을 잃을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원혜욱 교수는 “음주운전 방지법이 가해자에 대한 주홍글씨로 작용하지 않도록 개인의 기본권이나 인권 침해 여부를 법안 논의 과정에서 세심히 살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채홍 수석연구원도 “단순히 가해자에 대한 망신주기로 법안 논의가 흘러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일각에선 2회 이상 음주운전자를 가중 처벌하도록 한 ‘윤창호법’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정을 받은 것처럼 현재 쏟아지는 음주운전 방지법이 자칫 졸속 입법으로 흐를 가능성도 경계한다. 익명을 요청한 전문가는 현재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음주운전 방지법에 대해 “정치적 쇼에 불과하다”며 “사실상 통과가 어려운 것을 알고 있음에도 총선을 앞두고 국민적 호응을 이끌어 내기 위한 것 같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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