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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없어 빵 팔던 소년, 푸틴과 나란히…'경제 재앙' 앞둔 술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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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EPA=연합뉴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EPA=연합뉴스

28일(현지시간) 치러진 튀르키예 대선 결선투표에서 승리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69) 대통령은 흔히 ‘21세기 술탄’으로 불린다. 지난 14일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에 실패하면서 20년 만의 실각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결선에서 52.2% 득표로 저력을 확인시켰다. '튀르키예의 간디'로 불린 야권 후보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공화인민당(CHP) 대표(47.8%)를 제친 것을 두고 "에르도안은 무적의 아우라로, 튀르키예 국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이후 가장 중요한 지도자가 됐다"(더타임스오브이스라엘)는 평가가 나온다.

거리서 음료 팔던 소년, '21세기 술탄'으로 자수성가

에르도안의 시작은 초라했다. 흑해 해안경비대 소속이던 그의 아버지는 다섯 자녀를 이끌고 이스탄불로 상경할 만큼 교육열이 높았지만 좀처럼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다. 소년 에르도안은 거리에서 빵과 레모네이드를 팔며 생활비를 보태야 했다. 그러나 야심만은 가득했다. 10대 후반부터 이슬람주의 정당인 민족구원당에서 활동하며 정치에 눈을 떴고, 이스탄불 마르마라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이후 준프로 축구단에서 선수로 뛰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정계에 입문한 것은 이슬람주의 성향의 복지당에 합류해 1994년 이스탄불 시장(1994~1998)으로 선출되면서다. 튀르키예에서 세속주의에 대한 반감이 움트며 복지당의 인기가 높아지던 무렵이었다. 에르도안은 여기에 더해 일자리를 늘리고 시(市)의 고질적인 재정난을 해소하며 전국구 스타로 떠올랐다.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의 승리를 축하하는 그의 지지자들. AFP=연합뉴스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의 승리를 축하하는 그의 지지자들. AFP=연합뉴스

2001년, 에르도안은 온건 이슬람주의를 표방하는 정의개발당(AKP)을 창당했다. AKP는 이듬해 열린 총선에서 압승했고 그는 2003년 내각제 실권자인 총리로 취임한다. 이 시기 에르도안은 인프라 프로젝트를 추진해 경제성장을 이끌며 수백만 명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해 '경제총리'로 승승장구했다. 그의 취임 이후 10년간 이 나라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4.5%를 기록할 정도였다. BBC는 "당시 에르도안은 사형제를 폐지하고 쿠르드족과 평화 협상에 나서는 등 서구에서도 '개혁가'라는 찬사를 받았다"고 전했다.

에르도안의 진짜 야망은 2007년 국민투표로 헌법을 개정해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하면서 드러났다. 튀르키예는 의원내각제와 내각을 견제하는 대통령제를 병행하고 있었는데, 대통령 간선제를 직선제로 바꾼 것이다. 총리를 네 번 연속 할 수 없다는 AKP 당규 때문에 총리에서 대통령으로 '갈아타고자' 하는 계획이었다. 2014년 튀르키예 사상 첫 대통령 직접 선거에서 대권을 거머쥔 그는 이후 반대파를 집요하게 숙청하고 언론을 장악하는 등 철권 야욕을 드러냈다. 2016년 에르도안 정부에 불만을 품은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자, 이를 핑계 삼아 거침없이 반대파를 탄압했다. 에르도안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등과 함께 국제사회에서 '스트롱맨'으로 꼽힌 것도 이즈음이다.

튀르키예 가지안테프 지역에서 에르도안의 승리를 축하하는 지지자들. UPI=연합뉴스

튀르키예 가지안테프 지역에서 에르도안의 승리를 축하하는 지지자들. UPI=연합뉴스

2017년 에르도안은 총리직을 폐지하는 등 내각제를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로 바꾸는 개헌을 밀어붙인다. 자신이 최장 2033년까지 집권할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이번 재선 도전에 성공하며 그는 이제 30년 집권, 사실상 종신 집권을 내다보게 됐다.

'경제 위기' 해결 급선무, "민주주의 위기" 우려↑

이번 승리로 최장 2033년까지 집권 길이 열린 에르도안에게 가장 큰 숙제는 경제다. FT는 "튀르키예는 높은 인플레이션과 급격히 줄고 있는 외화보유고 등으로 위기에 처했다"며 "경제 위기 해결이 급선무"라고 짚었다. 워싱턴포스트(WP) 역시 "주거비용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끼니를 해결하는 데도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돈을 지불하는 상황"이라며 "에르도안은 경제를 '재앙'에서 벗어나게 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이번 선거에서 확인된 것도 또 하나의 변수다. 2018년 대선 당시 야당 후보(무하렘 인제) 득표율이 31%에 그쳤던 것과 달리, 이번 선거에서는 클르츠다로을루의 득표율이 49%에 달하는 등 튀르키예 사회 분열이 가속화하는 추세다. 미국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에르도안은 지금까지 선거에서와는 달리 매우 어렵게 승리했다"며 "사회 분열이 심해질 것"이라 진단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이로 인해 "튀르키예의 민주주의가 크게 약화할 것"(타임지)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에르도안이 그간 반대파를 억압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유지해온 탓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에르도안은 전례 없는 수준의 '1인 통치'를 하고 있다"며 "언론 대부분이 정부 통제를 받는 상황에서 시민의 자유가 더욱 억압당할 것"이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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