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2등급이면, 일본 의대 간다"…새 루트 뚫는 '닥터 로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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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사는 김모(42)씨는 다음 달 전북 김제시로 이사를 한다. 초등 3, 5학년 자녀의 의대 진학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김씨는 “의대 진학에는 지방이 오히려 유리하다는 판단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이사할 곳 주변 고교의 의대 진학 실적이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호남권은 학생 수가 적은 반면 의대의 지역인재특별전형 선발 비율이 높다. ‘전략적’으로 접근했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의대 선호 현상이 부른 서울에서 지방으로의 역(逆)유학이 초등학생으로 확대되고 있다. 자녀를 의사로 만들기 위한 ‘닥터 로드’가 정부 정책, 학원가의 유행, 학부모들의 선택과 맞물리면서 더욱 고도화하고 있는 것이다.

 한 의과대학 학생들의 뒷모습. 의대 쏠림 현상으로 진학을 위한 루트가 지방과 해외로 다변화 하고 있다. 뉴스1

한 의과대학 학생들의 뒷모습. 의대 쏠림 현상으로 진학을 위한 루트가 지방과 해외로 다변화 하고 있다. 뉴스1

해외 의대 유학은 꾸준히 ‘개척’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헝가리 등의 의대 진학이 10여 년 전부터 관심을 모았고 최근엔 전문 용어로 한자를 쓰는 일본 의대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서울 강남의 한 해외 의대 컨설턴트는 “한국에서 의대에 갈 성적은 안 되더라도 평균 2등급 정도 성적으로 일본 국립 의대를 목표로 준비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미끄럼 방지 대학’이라 부르는 일본 사립대 의대와 치대, 약대 등을 같이 준비한다”고 덧붙였다.

해외 의대 진학을 홍보하는 게시글. 인터넷 캡처

해외 의대 진학을 홍보하는 게시글. 인터넷 캡처

‘역유학’ 연령, 초등학생으로 내려가

국내에서 관심을 모으는 닥터 로드는 지역인재특별전형이다. 우수 인재의 수도권 유출을 막기 위해 2015학년도에 지방 의대에 도입됐는데, 정원이 늘고 있어서다. 이전까지 ‘30% 이상 선발 권고’였던 게 올해부터는 ‘40% 이상 의무 선발’로 바뀌었다.

다만, 현재 중 2가 입시를 치르는 2028학년도부터는 ‘비수도권 중학교 및 해당 지역 고등학교 전 교육과정 이수·졸업자’로 자격 요건이 강화된다. 수도권 학생이 의대에 진학하려 지방 고교로 역유학을 왔다가 졸업 후엔 지방을 이탈하는 일을 막아야 할 지경에 이르러서다. 이에 일부 학부모들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 지방으로 거처를 옮기는 선택을 하고 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서울에서 충남 천안시 인근으로 이사를 계획한 초등생 학부모 이모씨는 “직장을 옮길 순 없어서 서울과 천안을 오가면서 생활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만기 유웨이 부사장은 “2028학년도 입시에선 지역인재전형 응시 요건이 엄격해지며 경쟁률이 낮아질 수 있다. 권역별 수험생 대비 지역인재전형 모집인원 비율이 높은 전북·광주 등 틈새를 공략하려는 학부모들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2024학년도 의약학계열(의예·치의예·한의예·약학) 선발 인원은 6117명으로, 전체 고 3학생(39만7848명)의 1.5%수준이다. 이 중 지역인재전형에서 1891명을 뽑는데 전북은 수험생(1만5373명) 중 의학계열 지역인재(수시모집) 모집 비율이 1.7%(268명)로 평균보다 높다. 종로학원에 따르면 2023학년도 정시모집 의약학 계열 지역인재전형 경쟁률은 5.03대 1로 일반 전형(8.46대1)에 비해 낮았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해외 의대, 필리핀·우즈벡에서 일본·호주로 변화

비교적 입학 경쟁이 덜한 해외 의대로 눈을 돌린 유학생들은 졸업 뒤 한국 의사 자격을 따는 걸 목표로 한다. 보건복지부가 인정하는 해외 의대를 졸업하고 예비시험 등을 통과하면 국내 의대 졸업생과 똑같이 국가고시를 볼 수 있는 자격을 준다.

그래픽=최종윤 기자

그래픽=최종윤 기자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20년까지 17년간 국내 의사·치과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한 외국 대학 졸업자는 365명이며, 미국(97명), 필리핀(68명), 헝가리(49명), 독일(33명), 일본(29명), 영국(22명) 등이 뒤를 이었다. 우즈베키스탄(12명), 우크라이나(2명)도 있었다. 그 사이 해외 닥터 로드는 정부의 규제에 따른 부침을 겪었다. 우즈베키스탄은 의대의 유급ㆍ제적이 거의 없고 외국인이 시험을 볼 때 현지 통역을 붙여주는 등의 한국 유학생 혜택이 장점으로 알려졌다. 헝가리 의대는 졸업이 어렵고 환자들과의 대화가 힘들다는 등의 애로사항이 부각되기도 했다.

유학업계 관계자는 “2000년 초반까지 느슨했던 해외 학위자에 대한 의사 국가고시 자격이 엄격해지고 학위 인정 대학이 대폭 줄었다. 한때 유행하던 필리핀, 우즈베키스탄 등 보다 선진국 위주의 유학을 선호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한때 닥터 로드로 각광 받았던 필리핀은 학위 인정 대학이 대폭 줄고 현지에서 외국인에게 의사 면허를 부여하지 않아 ‘필리핀 의대 학위→국내 의사’ 루트는 사실상 차단된 상태라는 게 유학업계의 설명이다.

30분에 50만원 해외 의대 컨설팅

한국과 의대 시스템이 비슷한 일본과 영어권 국가인 호주 등에 학부모들의 관심이 크다. 유학업체 세한아카데미 관계자는 “지난 20일 서울에서 일본 의대 진학 설명회를 했을 때 예약자가 60여명이었다. 일부 강남권 학교는 일본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의 수업을 빼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 해외 의대 진학 컨설턴트는 “1대 1 맞춤으로 어떤 해외 의대를 갈 수 있고, 어떤 방식으로 공부해야 하는지 알려주는데 비용은 30분 상담에 50만원까지 하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컨설턴트는 “부모가 운영하는 병원이나 치과를 자녀에게 물려주려고 해외 의대 진학을 노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엔 의대 유학에 대한 관심층이 더 넓어지고 있다는 게 학원가의 분석이다. 토다이어학원 관계자는 “보통 고1, 빠르면 중3 학생이 상담을 받는다. 전라도와 강원도 등 지역에서 오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세한아카데미 관계자는 “유학반 구성은 재수생, 대학생, 대학 졸업생, 공무원까지 다양하다. SKY(서울·고려·연세대) 출신 학생도 있다”고 말했다.

정원 확대로 역유학 관심 더 커질 듯

25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들이 공공의대 신설과 의대 정원 확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25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들이 공공의대 신설과 의대 정원 확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고 있어서 의대 진학에 대한 관심은 당분간 더 커질 것이라는 게 교육계의 전망이다. 종로학원이 실시한 초·중학생 학부모 설문조사에서 88.2%가 이과를 선호하고 전공 선호도 1위는 의학 계열이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의사가 다른 직업에 비해 압도적으로 정년, 수입 보장 측면에서 좋은 직업이라는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정원이 늘어도 쏠림 현상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며 “정원 확대는 이런 흐름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오현환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정책기획본부장은 “이공계 인력의 삶의 질이 높아지거나 경제적 보상이 커야 (의대 집중을 해소할)유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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