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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인데 누군 터지고 누군 욕먹고…지자체 'B급감성'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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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경기도 광주시는 지난 3월 17일 유튜브에 ‘우리 아들이랑 헤어져요 (feat. 오렌지 주스)’ 영상을 올렸다. 막장 드라마의 장면을 차용해 광주시의 자전거 보험을 홍보한 이 영상은 조회수 3만4536회를 기록했다. 사진 광주시 유튜브 캡처

경기도 광주시는 지난 3월 17일 유튜브에 ‘우리 아들이랑 헤어져요 (feat. 오렌지 주스)’ 영상을 올렸다. 막장 드라마의 장면을 차용해 광주시의 자전거 보험을 홍보한 이 영상은 조회수 3만4536회를 기록했다. 사진 광주시 유튜브 캡처

“우리 아들이랑 헤어져요.”
중년여성이 돈 봉투를 건네자 마주 앉은 젊은 여성은 “제 사랑은 돈으로 살 수 없다”고 맞받아친다. 아들 A씨가 이들을 말려보지만 “빠져있어”란 엄마의 한마디에 주춤한다. 그 순간 “내가 A씨의 친엄마”라고 주장하는 또 다른 중년 여성이 등장하면서 난데없는 ‘아들 쟁탈전’이 벌어진다. 혼란을 견디지 못하고 카페를 박차고 나간 A씨는 달려오는 자전거와 충돌한 뒤 쓰러진다. 그러자 마이크를 손에 쥔 리포터가 등장하며 상황이 마무리된다. “걱정하지 말라. 광주시민은 누구나 자전거 보험에 자동으로 가입된다.”

‘막장 드라마’를 연상케 하는 이 에피소드는 경기도 광주시가 3월 17일 유튜브에 게시한 영상 ‘우리 아들이랑 헤어져요(feat. 오렌지 주스)’ 속 장면이다. 30초 분량의 이 쇼츠(shorts) 영상은 조회 수 3만4536회(5월 28일 기준) 기록했다. “자전거 보험 하나는 머리에 남을 것 같다” 등 호응 댓글도 이어졌다. 광주시 유튜브 담당자는 “외주업체와 논의해 광주시와 자전거 보험을 인식시키는 데 중점을 두고 만들었다. 예산은 100만 원 정도 들었다”고 말했다.

경기도 광주시가 지난 3월 17일 유튜브에 게시한 영상 ‘우리 아들이랑 헤어져요 (feat. 오렌지 주스)’ 속 장면. 사진 광주시 유튜브 캡처

경기도 광주시가 지난 3월 17일 유튜브에 게시한 영상 ‘우리 아들이랑 헤어져요 (feat. 오렌지 주스)’ 속 장면. 사진 광주시 유튜브 캡처

지방자치단체의 유튜브 활용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정책 브리핑 위주였던 과거와 달리 웹드라마 방식을 차용한 ‘B급 감성’ 콘텐트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투입 예산도 늘고 있다.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실이 전국 지자체로부터 제출받은 자료(5월 기준)에 따르면 서울 등 8개 지자체가 올해 ‘유튜브 영상 제작 및 채널운영’ 부문 예산을 늘렸다. 충북도는 올해 초 처음으로 유튜브 홍보 부문 예산을 신설했다. 지난해 수준을 유지하거나(전북도 등 3곳) 소폭 줄인(세종시 등 6곳) 지자체도 추가 계약 여부에 따라 투입 예산이 늘어날 여지가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 영상제작업체 관계자는 “기존엔 사기업 의뢰가 많았는데 최근엔 지자체 요청이 느는 추세”라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러나 정작 지자체 담당자들 사이에선 이런 분위기를 조심스러워하는 기류도 읽힌다. 조회 수가 늘어나는 효과는 있지만, “세금 쓰면서 무리한 시도를 계속해야 하냐”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아서다.

전북도는 지난 2월 2023 아시아태평양 마스터스 대회를 홍보하기 위해 웹드라마 형식으로 홍보영상을 만들어 게재했다. 그러나 영상 속 40대 남성이 대회에 나간 뒤 10살 어린 여성을 만난다는 내용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결국 전북도는 반나절 만에 영상을 내렸다. 현재는 해당 부분이 삭제된 수정본이 올라와 있다. 사진 전북도 유튜브 캡처

전북도는 지난 2월 2023 아시아태평양 마스터스 대회를 홍보하기 위해 웹드라마 형식으로 홍보영상을 만들어 게재했다. 그러나 영상 속 40대 남성이 대회에 나간 뒤 10살 어린 여성을 만난다는 내용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결국 전북도는 반나절 만에 영상을 내렸다. 현재는 해당 부분이 삭제된 수정본이 올라와 있다. 사진 전북도 유튜브 캡처

특히 애써 만든 영상이 논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부담이다. 2월 전북도는 2023 아시아태평양 마스터스 대회를 홍보하기 위해 1000만원을 들여 웹드라마 형식으로 홍보영상을 만들어 게재했다. 그러나 40대 남성이 대회에 나간 뒤 10살 어린 여성을 만난다는 내용을 두고 논란이 일어 반나절 만에 영상을 내렸다. 전북도 관계자는 “20·30세대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드라마 형식으로 만들었는데 자극적이란 의견과 괜찮다는 의견이 댓글에서 엇갈려서 수정했다. 논란 이후 영상 제작이 위축된 면이 있다”고 말했다.

다년간 홍보를 담당한 한 지자체 관계자는 “지자체의 유튜브 활성화 정책은 대부분 인플루언서급 콘텐트를 기대하는 민원, 실적 압박, 지자체장의 의지 등 타의에서 시작했다”며 “논란이 거듭될수록 담당자들은 무던한 기존 방식으로 회귀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충주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김선태 주무관은 “공공성을 띈 유튜브를 운영하다 보면 공익성과 조회 수 사이에서 항상 고민한다”며 “조회 수를 높이는 게 중요하지만, 논의를 통해 위험 요소를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세금이 투입되는 만큼 공공성이란 가치를 우선시하되 콘텐트를 차별화하는 방향으로 조율해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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