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윤석명의 퍼스펙티브

부채도 안 밝히는 국민연금, 개혁할 의지는 있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말만 무성한 연금개혁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전 한국연금학회 회장·리셋 코리아 연금분과장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전 한국연금학회 회장·리셋 코리아 연금분과장

국회 연금특별위원회가 2기 활동을 시작하며 연금 개혁 논의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국민연금재정계산위원회도 본격적인 재정 안정 방안 논의에 들어갔다. 연금 논의의 고삐를 당기고는 있으나, 찜찜한 구석도 많다. 특위가 개최했던 공청회, 납득하기가 어려운 국민연금 재정추계 내용에 대한 해석 때문이다.

세계은행 “향후 지급할 연금액 중 부족 액수 공개해야” 권고
한국은 2007년 수용했다가 이후 중단하며 연금개혁 헛돌아
국민·공무원·군인·사학연금 부채 합하면 GDP의 130% 넘어
보험료율도 25년 내내 제자리, 젊은 세대에 빚만 떠넘길 건가

국회 연금특별위원회 2기 스타트

윤석명의 퍼스펙티브

윤석명의 퍼스펙티브

기초연금과 퇴직연금 발전 방안, 국민연금 수익률 제고 방안이 지난 4월 말 개최된 특위 공청회 주제였다. 공청회 전에 이미 특위 경과보고서에 구체적인 재정 안정 방안 내용이 없어 맹탕이라는 비판을 받았었다. 공청회에서도 재정 안정 방안이 다루어지지 않다 보니, 보여주기식 특위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가장 중요한 기초 자료 없이는 제대로 된 공론화가 어렵다.

국민연금 재정추계위도 개혁 의지가 부족해 보인다. 거듭 공개를 요구했던 국민연금 미적립 부채는 재정추계전문위원회에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또 5년 뒤로 미루어졌다. 미적립 부채란 이미 지급하기로 약속한 연금액 중 부족한 액수를 의미한다. 특위가 사학연금 미적립 부채를 공개했는데도, 국민연금 미적립 부채 공개는 왜 어렵다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 여러 가지 미적립 부채 계산 방법이 있으며, 확정 부채가 아닌 미적립 부채를 공개하면 혼란만 초래할 수 있다는 주장이 이번에도 받아들여졌다. 이에 반발해 재정추계전문위 위원 한 명이 사퇴했다.

세계은행은 1994년 발간한 『노년 위기의 모면』에서 2차 대전 이후 신생국 대부분이 지속 불가능한 공적연금에만 의존하다 보니, 그대로 방치할 경우 국가적 재앙이 초래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세계은행 보고서가 공적연금 기능을 약화하고 사적연금을 활성화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국내 비판이 있음에도 이를 강조하는 이유는 서둘러 공적연금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이 타당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파탄이 날 일은 없으며, 나라가 존재하는 한 연금은 지급한다.” 그동안 정부와 국민연금공단이 국민을 안심시키려고 해 왔던 말이다. 30∼50년 뒤의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MZ 세대 등 미래 세대에게는 이러한 말들이 무책임하게만 보인다. 그래서 연금제도의 건강 상태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잣대가 필요하다. 다양한 잣대를 활용한 검증 과정을 거쳐야만 객관성이 확보될 수 있다.

소득대체율 올리면 재정 안정 불가능

필자는 세계은행과 하버드대가 1999년 하버드대에서 공동 개최한 연금개혁 논의에 한국 측 참가자로 참여했었다. 당시 세계은행은 공적연금에 미적립 부채 개념을 적용해 지속 가능성을 평가하라고 권고했다. 이런 영향이었는지 2007년 국민연금 개혁에서는 미적립 부채 개념을 활용했다. 그런데 이후 한국에서 미적립 부채 개념이 부정당하고 있다. 지난 16년 동안 연금 개혁을 하지 못했던 배경이 이러한 우리 사회 분위기에서 기인했다고 보다 보니, 미적립 부채를 공개하라고 거듭 요구하는 것이다.

2018년 국민연금발전위원회와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에서는 공적연금 강화란 명목으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올리면서 국민연금 보험료를 동시에 인상할 경우 재정 안정이 가능하다는 주장이 득세했다. 현재 가동 중인 국회 연금 특위에서도 유사한 주장이 나온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안철수 국회의원실에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로 10%포인트 올리고 보험료를 단 3년 만에 12%까지 3%포인트를 올려도 국민연금 누적 적자는 대폭 늘어난다. 국민연금 기금 소진 연도는 2055년에서 2058년으로 3년이 연기되나, 국민연금이 채택하고 있는 70년의 재정 평가 기간 말인 2093년에 가면 국민연금 누적 적자가 1404조4000억원(2023년 불변가격)이나 증가한다. 문재인 정부 5년을 거쳐서 지금까지도 기금 소진 시점 몇 년 연장하는 것을 재정안정방안이라면서 국민과 정치인을 호도하고 있다. 실상은 천문학적 규모의 연금 부채를 후세대에 전가하는 방안인데도 말이다. 이러한 주장의 민낯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잣대가 미적립 부채 개념이다.

미적립 부채 규모를 제대로 알아야 세대 간 공평하면서도 지속이 가능한 연금 개혁이 가능하다. 누적된 부채 규모도 모르면서, 어찌 세대 간 형평과 공정성을 말할 수 있겠는가. “연금 수급자와 오랜 기간 가입한 자들의 고통 분담 없이, 젊은 층과 미래세대 부담만 가중하는 제도 개편안을 어떻게 개혁안으로 부를 수 있겠나”라는 젊은 층의 불만을 경청해야 한다.

중병 걸린 공적연금 건강 상태

우리 공적연금 건강 상태는 흔히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나쁘다. 최근 공개된 사학연금 미적립 부채는 170조원에 달한다. 33만명 가입자 1인당 5억원의 빚이 있다는 뜻이다. 사학연금이 기금 운영 평가에서 탁월한 평가를 받았음에도, 사학연금의 미적립 부채는 계속해서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필자가 거듭 공개를 요구하는 국민·사학연금 미적립 부채, 공무원·군인연금 충당부채까지 합하면 최소 GDP의 130%를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부분의 주요 선진국은 부과 방식으로 재원 조달 방식을 전환했다. 제도 개혁 필요성이 있기는 하나,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개혁할 필요가 있다. 기금 수익률을 1%포인트 높이면 기금 소진 시점이 5년 연장되어, 2060년까지 소진 시점을 늦출 수 있다.” 이는 지난 3월 말 발표된 제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 보도자료에서 인용한 내용이다. 서울 출생률이 0.59로 급락했고, 연금 받을 인구가 가장 빠르게 늘어날 국가에서의 상황 인식치고는 너무나 안이해 보인다.

지난 1월 중간발표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연금 개혁을 실기하여, 동일한 수준의 재정 안정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추가로 보험료를 2%포인트 더 부담해야 한다고 했었다. 그런데 확정된 추계 결과를 발표하면서는 이처럼 위기의식이 없는 보도자료를 배포한 것이다. 이번에도 제대로 개혁하지 못한다면 더 악화한 여러 요인으로 인해 동일한 수준의 재정 안정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추가로 3%포인트 정도를 더 부담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개혁하지 못해 발생한 2%포인트에 3%포인트를 더하면 5%포인트를 더 부담해야 한다. 지난 25년 동안 보험료율을 단 1%포인트도 올리지 못했던 나라가 우리이기에, 너무나 안이한 접근이라 할 수 있다.

핀란드의 공적 연금 통합 운영

지난 25∼26일 아시아·태평양 지역 연금 전문가 회의가 개최되었다. 먼저 OECD 사무국이 회원국들이 운영 중인 자동안정장치 내용을 발표했다. 이후 독일·핀란드·일본에서 운영 중인 자동안정장치 내용도 발표되었다. 이들의 자동안정장치 운영 현황을 듣고 있노라니 숨이 막혀왔다. 가급적 빨리 자동안정장치를 도입해야 할 나라가 우리인데도, 국회와 정부 어디서도 자동안정장치 필요성을 언급하지 않아서다.

OECD 연금 전문가 회의에 참석했던 이스모 리스쿠 핀란드 연금센터 기획국장의 발표가 주목받았다. 연금 운영 환경이 우리보다 훨씬 우호적임에도 핀란드 소득 비례 국민연금의 보험료율은 24.4%이고, 공적연금은 통합 운영되고 있다. 우리에게 있는 퇴직연금(국민연금 가입자), 퇴직수당(공무원연금 가입자) 혜택은 없다고 했다. 보험료 외에 연금 재정에 투입되는 세금까지 고려하면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의 실제 부담률이 월급 대비 28% 수준이라고 한다. 이미 도입된 준자동안정장치 작동이 멈춰질 경우, 즉 연금 수급 연령을 63세로 고정할 경우 보험료율이 47%까지 인상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다.

개인별 연금 현황 보여주는 통계 절실

우리보다 훨씬 많이 부담하고 있음에도, 연간 연금 지급률 기준으로 핀란드 공무원연금 가입자는 우리보다 훨씬 적게 받는다. 국민연금액에 부과하는 핀란드의 높은 연금소득세를 고려하면 퇴직연금 혜택이 가능한 우리나라 국민연금 가입자(퇴직연금 가입 대상자 중 실제 가입한 53%의 근로자)의 노후 소득 보장 수준은 핀란드보다 더 높다고 봐야 한다.

외국의 현황이 이러함에도 그동안 사실에 기반한 논의를 소홀히 해왔다. 특정 정권의 입맛에 따라 연금 논의 방향이 결정되어 오다 보니, 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쳤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우리는 한여름에 열심히 일하는 개미를 비웃는 베짱이가 득세하는 형국이다. 제대로 된 공론화를 위한 기초 자료 확보 차원에서 ‘포괄적 연금 통계’ 생산 시기를 서둘러야 한다. 누가 어떤 제도에 어떻게 가입하고 있는지, 개인연금을 포함하여 개인별 연금 가입 현황을 정확하게 보여줄 수 있는 연금 통계를 생산해 내야 한다. 제대로 된 통계가 있어야 바람직한 연금 개혁이 가능할 수 있어서다. 통계청을 통계처로 격상하자는 류근관 전 통계청장의 주장을 실행에 옮겨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전 한국연금학회 회장·리셋 코리아 연금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