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질어질했다. 식전 댓바람부터 아들뻘, 잘 봐줘야 장조카 정도나 될 젊은 검사들에게 온종일 시달린 뒤끝이었다. 어슴푸레해진 3년 전 일을 기억해 내라며 다그치던 그들을 상대하다 보니 머리는 깨질 듯 아팠고, 몸은 물먹은 솜처럼 가라앉았다. 그래도 어느덧 해는 서녘으로 넘어가고, 취조도 종막을 향하고 있었다.
그의 앞에 진술 조서 뭉치가 놓였다. 일별한 뒤 지장만 찍으면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뭔가 미진한 듯 자꾸만 조서를 들춰 보더니 이윽고 펜을 요구했다. 그리고 조서 아래의 빈칸에 글을 끄적이기 시작했다. 긴 호흡으로 문장 하나를 적어 내려간 그는 그제야 손도장을 찍은 뒤 그곳을 벗어났다.
그는 당시 부총리 출신의 여당 국회의원이었다. 그리고 2023년 5월 현재 그의 이름 뒤에는 대한민국 의전서열 2위, ‘국회의장’이라는 직함이 붙어 있다. 그는 김진표였다.